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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광화문]K뷰티 빅사이클의 완성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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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인 고물가, 고금리 시대에 뚜렷해진 소비 패턴을 꼽자면 '가성비'와 '온라인'이다. 못사는 나라만이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가성비 소비는 대세다. 월마트, 코스트코, TJX 같은 미국의 가성비 유통 채널은 고물가 시대에도 높은 성과를 내고 있다. '온라인 소비'도 결국 가성비와 연결된다. 온라인은 판매자에겐 유통비용을 줄여 가격을 낮추는 수단인 동시에 소비자에겐 같은 제품이라도 더 싸게 파는 곳을 찾는 가격 발견의 통로다.

가성비 소비 트랜드의 최대 수혜를 본 산업으로 'K뷰티'(한국 화장품)를 빼놓을 수 없다. K뷰티 인기의 배경엔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한가지로 설명하라면 단연 '저렴하면서 품질이 좋기' 때문이다. 최근의 K뷰티 인기를 중저가 제품들이 이끌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마존에서 판매 순위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K뷰티는 대부분 중소 인디 브랜드다.

K뷰티의 글로벌 인기가 얼마나 가겠느냐고 의심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지금은 많은 전문가들이 'K뷰티의 두번째 빅사이클은 이제 시작'이라고 이야기한다.

10여년전 1차 K뷰티 인기는 특정 브랜드와 특정 상품이 이끌었지만 지금은 광범위한 인디브랜드들이 주도하고 있다. 지역도 중국에 편중됐던 당시와 다르다. 한국 화장품의 최대 수출국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다. 일본에선 프랑스산보다 한국산 화장품을 더 많이 수입한다. 독일에선 K뷰티를 표방하는 현지 브랜드까지 등장했다. K뷰티의 인기는 썬케어와 기초 화장품은 물론이고 인종이 달라 불가능하다고 봤던 색조 화장품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무엇보다 소득불평등의 심화는 가성비 제품의 수요를 지속적으로 늘려줄 토양이다. 한때는 한국도 로레알, 시세이도 같은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의 탄생을 탐냈지만 지금의 K뷰티의 인기를 지속시킬 핵심 동력은 결국 '가성비'다.

가성비 있는 K뷰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원천은 제조력에 있다. 대부분의 인디브랜드 제품은 자체 생산이 아니라 ODM(제조업자개발생산) 회사들에서 위탁 생산한다. 전세계 3대 화장품 ODM 기업 중 2곳(한국콜마, 코스맥스)이 한국에 있다. 반도체 산업의 대만 TSMC 같은 파운드리 업체가 코스맥스와 한국콜마다. 누구라도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만 있다면 원하는 화장품을 이곳에서 만들 수 있다. 품질은 로레알 등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도 위탁할 만큼 세계적인 수준이다.

K뷰티의 빅사이클을 위한 판이 깔렸지만 장기적인 대세로 굳히기 위해선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잖다. 이경수 코스맥스 회장은 화장품 전문 인재 양성을 줄기차게 외치고 있다. 그는 "변방이었던 한국 화장품이 세계 문화의 중심지에서 놀랄만한 문화사를 만들고 있지만 정작 수도권 대학에 전문인력을 양성할 관련 학과가 하나도 없다"고 한탄한다. 실제로 지난해 화장품 수출액은 약 85억 달러로 국가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제약·바이오 수출액을 넘어서지만 전국에 약대는 37개, 화장품 관련 단과대는 0개다. 학과만 3개 존재할 뿐이다.

짝퉁 K뷰티 상품은 넘쳐난다. 동남아 시장에선 어색한 한글로 표기된 모양만 K뷰티 화장품이 버젓이 팔리고 있다.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이커머스엔 인기 K뷰티를 카피한 제품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들의 저급한 품질은 K뷰티의 이미지를 좀먹고 있다. 이탈리아의 세계적 화장품 ODM인 인터코스의 한국법인 인터코스코리아는 한국콜마 직원을 영입해 썬케어 기술을 빼돌렸다. 썬케어 기술은 한국콜마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소송 끝에 인터코스코리아의 기술 탈취가 법원에서 최종 인정됐지만 이 회사가 받은 죗값은 고작 벌금 500만원이었다.

K뷰티의 인기를 장기적으로 이끌어 갈 디테일이 아쉽다. 저렴한 가성비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K뷰티 산업을 '저렴하게' 대우해선 빅사이클을 완성할 수 없다.

김진형 산업2부장 jh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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