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가 판다]대법원 "가족이 거주하는 곳이 항구적 거주지다"...'완구왕 사건'과 판박이 논쟁
고 구본무 LG선대 회장의 맏사위 윤관 블루런벤처스(BRV) 대표가 강남세무서장을 상대로 제기한 '종합소득세 부과처분 취소청구' 소송의 6차 변론기일이 열린 28일 오후 4시. 서울행정법원 지하2층 B204호 정문의 오른쪽 벽에 걸린 재판 일정 사이니지에 갑자기 붉은 글씨로 '비공개 재판'이라는 글씨가 올라왔다.
앞서 오후 3시 30분에 시작한 재판이 끝난 후 원고와 피고의 법률대리인과 관련자들이 나가고 다음 재판을 참관하기 위해 기자들이 법정에 들어서려고 하자 법정 경위는 "'비공개 재판'으로 전환하니 법률 대리인을 제외하고 기자들의 출입은 금지된다"고 공지했다.
원고 측 법률대리인이 몇주전 비공개 재판을 요청했고, 달리 공개여부를 밝히지 않던 서울행정법원 제5부(부장판사 김순열 김웅수 손지연)가 이날 오전 원고 측 요청을 받아들여 비공개로 전환하기로 결정한데 따른 조치였다.
양측 법률대리인만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6차 변론은 공방이 이어지면서 당초 예정된 시간인 30분의 2배가 되는 1시간 가량이 지난 오후 5시경 끝났다.
법정을 나서는 원고(윤관 대표) 대리인인 김앤장법률사무소의 변호사들에게 "비공개 요청을 한 이유가 무엇이냐", "윤관 대표의 사생활 관련한 내용들 때문이냐"고 질문했으나 아무런 답없이 빠르게 법원을 빠져나갔다.
뒤이어 법정에서 나온 피고(강남세무서장)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가온의 강남규 대표변호사는 비공개 재판의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원고 측의 요청을 재판부가 받아들인 것"이라며 "오늘 오전에 결정됐다"고 했다.
재판의 쟁점에 대한 질의에 강 대표변호사는 "이전 재판 때와 마찬가지로 항구적 거주지가 어디냐가 쟁점이었고, 이와 관련해 윤 대표의 BRV코리아에서의 역할과 이번 재판과 판박이인 '완구왕' 재판에 대해 많이 얘기했다"고 말했다.
윤 대표 측이 자신은 BRV코리아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주장한데 대해 피고 측은 "명함에 'BRV코리아 대표 윤관'이라고 찍힌 것을 갖고 다녔고, 부인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소유의 건물 4층에 본인의 BRV코리아 사무실을 갖고 있으며, 거기서 대표 일정을 관리해온 것이 확인된다"고 말했다.
이어 "윤 대표 본인이 직원들의 연월차 휴가를 승인도 하고, 연봉협상도 했으며 내부 인테리어에 대한 승인도 하는 등 BRV코리아에서의 활동이 모두 확인되고 있다"며 "대부분의 해외출장에 BRV코리아 직원이 계속 동행한 것만 봐도 BRV코리아는 윤 대표와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원고 측은 윤 대표가 항구적 거주지가 미국이기 때문에 '국내 거주자'가 아니고 따라서 국내에 종합소득세를 낼 의무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피고 측은 항구적 거주지의 핵심 요소로 우리 대법원은 '가족이 있는 곳이 항구적 거주지'라고 판결했다며 '완구왕 사건'의 예를 들어 윤 대표의 가족이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만큼 그 또한 '국내 거주자'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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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구왕 사건이 뭐길래?...항구적 거주지가 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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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구왕 사건'은 미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봉제인형 '비니 베이비'를 수출해 막대한 수입을 올린 A 완구업체 P 대표(피고)가 2000~2008년 홍콩법인 소득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BVI) 등에 세운 페이퍼컴퍼니로 빼돌려 1136억 원의 소득신고를 누락하고, 437억여 원의 종합소득세를 포탈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조세포탈) 등의 혐의를 다툰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2014년 6월 P 대표에게 징역 3년과 벌금 250억 원을 선고했다. 이유는 P 대표와 그의 부인이 2001~2002년 국내에 156~332일까지 거주해 납세의무가 발생했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P대표의 가족이 1993~1999년 미국에 거주하고 국내에는 체류한 사실이 전혀 없고, 일부 기간 국내에 거주하더라도 '가족이 있는 곳이 항구적 거주지'라는 입장에 따라 P대표의 항구적 거주지는 미국이라며 무죄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가족이 미국에 있으면서 한국에서 사업을 한 P대표의 항구적 거주지는 미국이라는 이 판결은 가족이 한국에 거주하고 있으면서 미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윤대표와는 위치만 바뀐 똑같은 경우다.
강 대표 변호사는 "윤 대표의 가족은 과세대상 기간 동안 미국을 하루도 방문하지 않고, 대부분을 국내에 체류하고 있었다"며 "'완구왕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족이 거주한 곳이 항구적 거주지라는 대법원의 판례로 볼 때 윤 대표의 항구적 거주지는 가족이 있는 한국이며 당연히 한국에서 세금을 내야 한다"고 했다. 완구왕 사건 당시 '가족이 있는 곳이 항구적 거주지'라고 주장했던 법률대리인이 이제는 그 때와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게 피고 측 대리인의 설명이다.
원고 측은 "윤 대표 뿐만 아니라 부인인 구 대표도 소득이 많아 각자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상황이라 생활을 같이 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미국에 집이 있어 항구적 거주지라고 주장하지만 과세기간(2016~2020년) 중 미국 체류 일수가 연간 18~33일에 불과해 항구적 거주지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강 대표변호사는 또 "BRV코리아 관계자들의 진술서에는 윤 대표가 국내에 체류할 때는 한남동 집에서 머물고, 미국에서는 호텔을 잡아줬다고 돼 있다"며 미국 거주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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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억 수익 에코프로메티리얼즈, 메지온, 고려아연 이익에 대한 세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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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 BRV 대표/사진=머니투데이DB, 신세계 |
이번 마지막 변론에서는 또 최근 고수익을 올린 에코프로머티리얼즈나 미공개정보를 이용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논란이 일고 있는 메지온 및 고려아연 주식 매각을 통한 이득에 대해서도 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강 대표변호사는 "재판부에 BRV가 투자한 에코프로머티리얼즈의 시세차익만 1조원이 넘고 여기에 성과급만도 6000억원이 넘을 것이라는 보도가 있고, 메지온과 고려아연의 시세차익, 쓱닷컴 이자수익 등이 어마어마한데 이런 수익에 세금을 물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변론했다"고 말했다.
그는 "윤 대표가 미국에서는 과테말라인이나 일본 거주자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홍콩 등 다른 나라 거주자라면서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 재판의 선고는 내년 2월 6일 오전 9시 20분 서울행정법원 지하2층 B204호 법정에서 진행된다.
한편, 서울지방국세청은 2020~2021년 윤 대표를 상대로 개인통합조사를 진행해 2016~2020년(5년간) 배당소득 221억원의 종합소득세 신고를 누락했다고 보고, 해당 정황을 강남세무서에 통보했다. 처분청인 강남세무서는 2021년 12월 윤 대표에게 같은 기간 귀속 종합소득세 123억 7000여만원을 고지했으나, 윤 대표는 이에 불복해 같은해 12월 29일 조세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했다.
하지만 2022년 12월 조세심판원은 심판청구를 기각했고, 윤 대표는 이에 불복해 강남세무서장을 상대로 '종합소득세 부과처분 취소청구 소송을 제기해 이날 여섯번째 변론기일이 서울행정법원에서 진행됐다. 미국 시민권자인 윤 대표가 우리 소득세법상 '국내 거주자'로 분류되면 내국인과 동일한 납세의무를 진다.
소득세법 제1조의 2에는 외국인의 경우 국내에 거소지(상당기간에 걸쳐 거주하는 장소)를 두고, 183일 이상 국내에 거주한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한국에서의 거주자로 본다. 거주자로 인정되면 국내 원천소득 뿐만 아니라 이자·배당소득 등 모든 소득에 대해 종합소득세 신고를 해야하고, 그에 따른 세금을 내야 한다.
특히 윤 대표는 에코프로머티리얼즈의 상장을 통해 자신이 운용하는 펀드(약 930억원 투자)에서 상당한 규모의 시세차익을 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2차례의 블록딜을 통해 투자금의 약 5배인 4500여억원어치를 이미 팔았다. 높은 수익으로 인해 윤 대표 자신도 성공보수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종소세 재판에서 윤대표가 패소해 국내 거주자로 인정될 경우 수백억 이상의 세금을 더 내야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hunt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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