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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부의 사다리에 오르다…북한 자본가 돈주① [곽인옥 교수의 평양 시장경제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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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고난의 행군 시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처참한 상황에 처했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주민들은 국가 주도의 계획 경제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북한에 자생적인 시장 경제가 싹트기 시작했다. 장마당과 상점, 고급 식당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돈을 굴리는 돈주(錢主)는 부를 축적하고, 새로운 형태의 뇌물 구조가 뿌리내렸다. 국제사회의 엄격한 경제제재를 받는 북한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사회주의 사상도 계획 경제도 아니고, 자생적인 시장경제다. 그러나 대다수 북한 주민은 여전히 살벌한 독재 체제의 굴레와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필자는 북한의 심장으로 불리는 평양의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10년간 조사를 해왔다. 탈북자 100여명을 상대로 장기간 심층면접을 하고, 각종 자료 수집을 통해 평양의 시장경제 작동 시스템을 분석했다. 폐쇄적인 북한 내부를 자세히 연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북한의 통계자료와 탈북자들의 증언 역시 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조사한 북한 사회와 경제의 현실을 공유함으로써 북한 주민들이 처한 현실과 고통을 함께 느끼고 새롭게 다가올 한반도의 미래를 고민해 보자는 취지에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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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돈주 : 부의 축척

1990년대 중반,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기를 통해 공식 경제 시스템의 붕괴를 겪었다. 이후 시장 경제의 싹이 트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돈주’라 불리는 신흥 자본가들이 등장했다. 돈주들은 북한의 비공식 경제를 이끌며 주민들의 생계를 지원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돈주들은 주로 장마당(시장) 거래, 밀수, 사금융 등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 이들은 북한 내외부와의 교류를 통해 물품을 조달하고, 이를 시장에 유통하며 경제 활동을 했다. 특히, 외화 획득이 가능한 상품을 거래하거나 중국과의 밀무역을 하며 상당한 부를 쌓았다. 돈주들은 단순한 상인 이상의 역할을 하며, 공장 운영이나 농장 경영에도 관여하여 북한 경제에 실질적인 기여를 해왔다.

2. 돈주 사례을 통한 정경유착 분석

[정경유착(1) : 중앙당 비호를 받는 100억원대 대돈주]

북한에서 세대주는 직장에 다녀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보통 북한에서는 세대주인 남편은 직장생활을 해야 한다. 그러나 아내는 부양의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시장 활동에 참여 할 수 있다. 남편은 모 연구소에서 중간 간부로 일했지만, 어려운 집안 살림을 책임지기 위해서 시장에서 장사를 했고 자금의 회전이 빨라 수익이 지속적으로 나는 담배도매장사에 발을 들어 놓은 여성이 있다.

장사 출발선에서 200~300달러를 가지고 담배 장사를 했기 때문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악착같이 저축했다. 그녀의 외모는 30대에도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키가 크고 피부가 옥처럼 하얗고 부티가 났으며, 머리 회전이 빠르고 논리적인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평양시 룡성구역에 있는 담배공장에서 담배를 받아다가 평양시 장마당이나 친척이 살고 있는 함흥에 담배 도매 장사를 했다. 그때에는 룡성구역 공장 골목길에서 담배 장사들이 가득하여 안전원에게 단속되어 쫓겨 도망 다니곤 했다.

불심검문을 하는 안전원에게 집에서 단속을 당하게 됐는데 장사 밑천을 다 빼앗기게 되는 순간에 조용히 둘이서 방에 들어가 통 크게 가지고 있던 돈의 절반인 10만달러를 주면서 위기를 극복하게 됐다. 사실 안전원에게 단속되어 목숨이 풍전등화에 달린 상황에서 보안원이 원한다면 기본적으로 몸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중앙당 구루빠, 보안원 구루빠, 보위부 구루빠 등 대대적인 비사회주의 검열을 할 때 돈 냄새를 맡고 표적이 되어, 한 달 동안 안전원에서 조사를 받게 됐다. 10장 분량으로 날마다 비사회주의에 대한 행위를 조사를 받게 됐고, 큰돈의 출처를 위해서 중앙검찰소까지 올라가 조사를 강하게 받게 됐다.

논리정연한 조사서를 바탕으로 빈틈없는 배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간파한 중앙검찰소 검사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챈 후 그녀를 도와주면 덕을 보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어 무혐의로 내보냈다.

이후에 그녀는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서 중앙검찰소 검사들에게 식사대접을 하고, 그중에서 실권이 있는 검사과장에게 뇌물도 주고, 자주 만나서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비호를 받아 견고한 후원자로 만들었다.

담배 도매 장사가 1,000명 정도 시작했는데 보안원에게 단속되어 잡혀서 몰수를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평양에서 추방을 당했지만 지속적으로 간부들에게 뇌물을 준 10%인 100여명이 현재까지 살아남았으며 그중에서 10명은 신흥 대돈주로서 성장하게 됐다.

그녀는 시당간부, 국가보위부, 사회안전부, 중앙검찰소 간부까지 뇌물을 주면서 돈주로 성장하게 됐고, 아름다운 몸을 가진 여성이라는 기본적인 무기도 잘 활용했다.

그녀는 북한에서 가장 권력의 꼭대기에 있는 중앙당 직원까지 올라가게 됐다. 중앙당 재정경리부 산하 대성담배공장에서는 고난의 행군시기 가동이 멈추었을 때 비밀조직으로 돈주들을 모아 20명이 50만 달러씩 자금을 합작 투자하여 공장을 운영하게 됐다.

싱가포르에서 일체 크라벤 담배를 만드는 재료를 수입하여 담배를 생산하여 10%는 공장지분으로 주고, 90%는 20명의 이사들이 똑같이 분배하여 자체 창고로 이전하여 평양 및 각 지방에 도매를 하면서 막대한 돈을 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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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벤 담배는 고급담배로서 중독성이 강하여 반드시 다시 찾게 되어 있어서 북한에서 간부들이나 중상류층이 많이 피우는 담배이며, 북한사회에서 크라벤 담배는 뇌물대용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수요가 많은 것이 장점이다.

중앙당은 북한에서 가장 높은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 많은 돈주들이 중앙당 직원이 되는 것을 원하고 바란다. 아무리 돈주라도 중앙당 재정경리부의 간부를 직접 만날 수는 없고, 덕망이 높은 거간꾼을 통하여 20만달러 정도의 뇌물을 올려보내면 재정경리부 산하 무역회사 직원으로 신분증이 나오게 되는데 중앙당 재정경리부 산하 00무역회사 부과장으로 적을 걸어 두고, 1년에 1만달러씩 회사에 돈을 주면 중앙당 간부로서 특권을 누리며 사업을 할 수 있다.

거간꾼을 통하여 신분증이 중앙당으로부터 내려오면 물류창고를 가지고 있는 회사 사무실을 만들고, 같이 일을 할 수 있는 비서들을 채용하는데 주로 1비서(총괄업무), 2비서(국내업무), 3비서(해외업무), 4비서(회계, 부기업무), 5비서(법률업무)로 회사를 다시 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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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되면 중앙당이라는 방탄모를 쓰고 안전하게 사업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중앙당 직원으로서 특권을 누리며 이사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2000년대에는 10만달러 뇌물을 내야했고, 2010년이후에는 100만달러까지 높아졌다.

신흥 재벌로 성장한 그녀는 위상이 높아지면서 남편이 불편하게 느껴지자 높아진 위상과 권력을 동원하여 남편을 해외로 발령을 내고, 몇 년 후에는 이혼을 하게 됐다.

비밀리 운영되는 이사회의 총회는 1년에 한 번씩 이사가 운영하는 원산에 있는 무역회사 지사에서 모이는데, 이때에는 모든 이사들이 한 곳에 모이게 되는데 각 각 비서들을 대동하여 휴가 차 오는 경우가 있다.

회의 이외에는 술을 마시면서 마약과 안마를 하며 카드게임을 하는데 같이 온 수행원들과 쾌락적인 파티도 겸한다. 이사회 회의 진행은 선출된 제1비서, 제2비서, 제3비서 등 각 분야별로 사업 및 중요 안건들을 제시하고 특히 중앙당 재정경리부장은 많은 뇌물을 받기 위해서 이사회 인원을 늘리려고 하는데 이에 반대하여 한계선을 정해 놓고 60명 이상은 절대 넘지 않도록 결의를 하고, 만약 더 이상 넘었을 때는 이러한 조직을 세상에 폭로하겠다고 위협하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이사회의 멤버들은 100억원을 가지고 있는 100인 클럽 멤버도 다수 포함되어 있으며 여성의 비율은 주로 70~80%이고 나이는 60대로서 아직은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정경유착(2) : 안전부 록산회사 비호를 받는 차사업소 지사장]

회창군이 고향인 한 여성은 무능력한 남편을 만나 가난하게 살았지만 가부장적인 남편의 잦은 폭력에 이혼을 하게 됐다. 여성은 얼굴이 그리 곱지는 않지만 호탕한 배짱과 지혜로운 사업수완을 가지고 있었다.

남성은 출근해도 할 일이 없는 공장기업소 노동자로서 앞날이 전혀 보이지 않아 공장에 8.3돈을 내고 장사를 했다. 장사를 떠난 아내는 돌아오지 않아 자연스럽게 이혼을 하고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고난의 행군시기이후 회창군에는 개인들이 금을 채굴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났는데 고향이 회창군인 여성은 마을에 인맥이 있는 광부로부터 금을 조금씩 조금씩 모아서 평성에 있는 금을 중개하는 공장기업소 노동자인 남성에게 금을 전달하면서 수익을 내고 있었다. 여성과 남성은 신뢰가운데 금 모으는 장사를 오래 하면서 정이 들어서 남자가 8살 연하이지만 재혼을 하여 다시 가정을 꾸리게 됐다.

아내는 수완이 좋고 아주 말을 청산유수같이 잘해서 어떤 사람도 꼬여 넘어가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2000년에 들어와 장사 출발선에서 2000달러를 가지고 평성에서 “노랭이” 금장사(돈장사도 겸함) 밑에서 금 모으기 사업을 시작했다.

이 부부가 크게 목돈을 모으는 계기가 된 것은 공항 비행장에 있는 비행기에서 백금을 절취하여 중국으로 밀수하면서다. 금 장사는 큰돈을 벌지만 북한에서 불법이기 때문에 항상 불안하고 검열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면서 합법적인 사업을 원했다.

북한에서는 식량 및 생활필수품들이 중국 단둥-신의주 루트를 통하여 평성으로 물품이 모여들고 또다시 전국적으로 유통되면서 신의주-평성 구간을 오가는 차사업소를 꾸리는 것이 수익이 많이 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녀는 젊었을 때 무역회사 부기원을 하면서 무역회사 사장과 친밀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가지면서 자금을 관리하였으며, 비사회주의 검열과정에서 안전성 지도원과 지속적으로 뇌물을 주면서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가 안전성 산하 록산회사가 자금을 투자하여 사업할 돈주을 물색하고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되어 금장사로 돈을 많이 번 그녀는 차사업소 외화벌이회사를 만들게 되었다.

록산회사에 1년에 와크비 명목으로 지불해야 할 돈은 100만 5000달러였다. 또한 차사업소 부지는 멈춰선 공장기업소를 찾아서 마련하였고, 한 달에 공장기업소에 2,000달러 내는 조건으로 인민위원회에서 사용허가권을 받게 됐다.

운행할 버스 및 트럭, 자동차는 중국으로부터 동풍호 8톤 2대와 봉고차 1대, 그리고 버스 12대를 순차적으로 구입하여 안전성 외화벌이 차량번호를 붙이고 운행을 준비했다. 7명의 사무직원과 15명의 운전사를 채용하고 안전성산하 록산회사 외화벌이회사를 개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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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성에서 신의주까지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주로 도매장사를 하는 상인과 도매물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평성과 신의주까지 도로 사정상 7~8시간이 걸리고, 인민무력부 초소, 사회안전성 초소, 국가보위부 초소 등 여러 개의 초소를 걸쳐야 가능하기 때문에 이 곳 초소 간부들에게 뇌물을 지속적으로 주면서 10여 년을 운행하면서 수많은 돈을 벌게 됐다.

사실 이 부부는 이러한 차사업소 사업보다는 트럭을 통하여 광석 및 희토류, 금, 은, 동, 니켈 등 밀수품이 더 큰 수익을 내는 품목이었다.

결과적으로 사회안전부의 비호를 받으며 차사업소를 운영하였지만 비사회주의 검열이 중앙검찰소에서 나와서 비법, 밀수품 유통 죄로 몰수를 당하게 됐다.

북한 사람들이 이를 보고, 중앙당 비호를 받으면 방탄모를 썼다고 표현하고, 그 다음으로 중앙검찰소 비호를 받으면 철모를 썼다고 말하며, 사회안전성 비호를 받으면 플라스틱모를 썼다고 비유를 하는데, 북한에서 최고의 권력인 중앙당 방탄모를 쓰지 않으면 이렇게 비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한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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