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유죄로 판단해 금고형…항소심은 "사고 예측 어려웠다"
2심 재판부 "자주 운전하던 차 아니어서 사이드브레이크 문제 알지못해"
차량 기어 |
(인천=연합뉴스) 손현규 기자 = 2022년 11월 A(44)씨는 인천에 있는 거래처 마트에 물품을 배달하기 위해 1.2t 화물차를 몰았다. 화물칸에는 1t가량의 각종 물건이 가득 실려 있었다.
거래처 앞에 도착한 그는 배송할 물건을 어디에 내려놓을지 마트 직원과 잠시 대화를 나눈 뒤 곧바로 차량을 멈춰 세웠다.
A씨가 화물차를 댄 마트 앞은 주변에 가게들이 나란히 있는 좁은 이면도로로 6도가량 기울어진 비탈길이었다. 그는 차량 앞쪽이 비탈길을 내려가는 방향으로 주차하고서 주차 제동장치(사이드브레이크)도 채웠다.
그러나 운전석에서 내린 순간 갑자기 차량이 덜컹하면서 길 아래쪽으로 미끄러져 내려가기 시작했다.
화물차는 A씨가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왼쪽으로 틀어놓은 핸들 방향대로 저절로 움직였다.
그 사이 화물차는 바로 앞에 있던 B(76)씨를 덮쳤고, 다른 상가 물품을 들이받고서야 멈췄다.
인근에 있다가 놀란 행인들이 달라붙어 차량을 밀어냈다. 차량 바퀴에 깔린 B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골반이 부러지는 등 전치 16주의 중상을 입었다.
사고 후 A씨의 화물차를 살펴본 정비사는 "사이드브레이크 케이블이 닳아 늘어난 상태"라며 "이 경우 변속기(기어)를 '후진'(R)으로 해 두지 않고 경사진 곳에 주차하면 사이드브레이크가 풀려 차량이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A씨가 경사진 내리막길에 화물차를 주차하면서도 미끄럼 사고를 방지할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그 증거로 A씨가 수동변속기를 후진에 두지 않았고, 차량 바퀴에 고임목 등을 설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상 혐의로 기소된 A씨는 지난해 10월 1심 재판에서 금고 10개월을 선고받았다.
당시 1심 판사는 "일반적으로 내리막길에서 기어를 후진으로 두면 차량이 미끄러질 가능성이 작다"며 "사고 당시 차량 바퀴도 (뒤가 아닌) 앞 방향으로 회전한 사실 등을 고려하면 기어를 후진에 두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는 또 "만약 피고인이 기어를 후진에 두고 사이드브레이크를 채웠다고 해도 고임목을 바퀴에 대지 않은 사실은 명백하다"며 "피고인은 마트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해 고임목을 설치할 수 있었는데도 미끄럼 사고를 예방할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A씨는 "무죄인데 억울하다"며 항소했고, 검찰은 "금고 10개월은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며 맞항소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사고를 예상하기 어려웠다며 1심 판결과는 완전히 다른 판단을 했다.
인천지법 형사항소2-1부(이수환 부장판사)는 A씨에게 금고 10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고 29일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기어를 후진에 둬도 차량이 앞으로 미끄러진 상황을 경험했다'는 주장이 나온 적도 있다"며 "차량 바퀴가 앞으로 회전한 사실만으로 기어가 후진에 놓여있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고 차량은 회사 소유로 피고인이 평소에 (자주) 운전하던 차량은 아니었다"며 "사이드브레이크 케이블이 마모돼 늘어난 사실도 전혀 알지 못해 미끄럼 사고를 예견하기는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항소심 재판부는 또 "(화물차에서 내린) 피고인의 양발이 땅에 닿자마자 사이드브레이크가 풀려 차량이 미끄러졌다"며 "그 시간 간격이 매우 짧아 고임목을 설치할 충분한 여유도 없었다"고 판단했다.
s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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