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까지 ‘빡세게’ 산다고?”
최유나 변호사(39)의 이야기를 듣다 저도 모르게 이런 본심이 튀어나왔습니다. 13년 차 변호사, 드라마 작가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 그의 하루는 48시간인 걸까요.
남다른 에너지를 가진 ‘최변’을 소개하겠습니다. 27살에 변호사가 된 그는 입사 2년 만에 직원 넷을 둔 이혼팀장이 됐고, 같은 해 대한변호사협회로부터 ‘이혼 전문’ 변호사로 인정받습니다. 한 해 100건 넘는 이혼 사건을 처리하며 쌓은 내공으로 10컷짜리 인스타툰(메리지 레드)을 그려 구독자만 25만 명을 넘겼고요. 작법 교육을 받은 적도 없는데 처음 쓴 드라마 ‘굿파트너’는 최고시청률 17%를 훌쩍 넘겨 ‘스타 작가’ 타이틀까지 쥐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하루 종일 집에서 비보잉 무대를 선보인다는 9살, 38개월 두 아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내년이면 마흔 살이 되는 그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이뤄낸 성취는 타고난 재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업계의 관성을 따르기보다는 자기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선택을 해왔고 스스로 내린 선택에 후회하지 않으려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브렉퍼스트〉가 ‘최변’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13년 차 이혼 전문 변호사이자 두 아들의 엄마, 웹툰 ‘메리지 레드’와 드라마 ‘굿파트너’의 작가 최유나. 대체 어떻게 다 해내는 것이냐는 감탄 섞인 질문에 “주변 워킹맘들 보면 다 저처럼 하루 꽉 채워서 산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솔직히 기자님도 그렇지 않으냐”고 되물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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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이 전제되지 않는 관계는 썩는다고 생각해요”
지금이야 이혼 남녀의 연애를 장려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을 정도로 이혼에 대한 시선이 달라졌지만, 그가 변호사로 첫발을 뗐던 2012년만 해도 법조계에서 이혼 사건은 기피 분야였습니다. 남들 이혼시켜 돈 번다는 부정적인 인식에 수임료도 많지 않은 데다가 위로와 상담 같은 감정 소모적인 일이 따른다고요. 이 때문에 “죽어도 이혼 사건은 못 한다”는 변호사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대학생 때부터 이혼 전문 변호사를 꿈꿨습니다. 재판연구원 시험 대상자가 될 정도로 성적이 좋았던 그였기에 로스쿨 동기들도 ‘굳이 이혼 전문을?’ 이런 반응이었고요. 어머니도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힘들게 공부해서 남들 이혼시키는 일을 해야겠냐”고요.
모두가 기피했던 ‘이혼 전문 변호사’로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지금 법무법인 태성의 이혼가사센터 대표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그가 팀장급 변호사가 된 것은 벌써 10여 년 전 일이다. 27살에 입사한 첫 로펌에서 2년 만에 부하 직원 넷을 둔 이혼팀장 직급을 달았다. 최유나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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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순탄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이혼은커녕 결혼도 하지 않은 27살 여성 변호사가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변호사 바꿔달라”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50, 60대 남성 변호사가 이야기하면 단박에 수긍하던 의뢰인도 그의 말엔 의심부터 하고 봤습니다.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경험 많은 다른 변호사님들이 한두 마디 할 때 저는 열 마디, 스무 마디 설명했어요. (의뢰인이 저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를 가지고) 남탓하기 시작하면 성장할 수 없고 그 일을 계속하기도 힘들어요.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해결되는 일도 있고요. 나의 문제로 돌리면 난관도 성장의 발판이 된다고 생각해요.”
경험은 부족해도 친절한 변호사가 되기로 했습니다. 틈나는 대로 의뢰인과 ‘밀착 소통’하면서 신뢰를 쌓았고요. 부족한 경험을 메우기 위해 닥치는 대로 사건을 맡았습니다. 보통 변호사들이 한 해에 30건, 많으면 70~80건의 사건을 담당하는데 그는 2년간 200건 넘게 처리했습니다. 덕분에 “이혼 사건 하나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대표 변호사로서 직원들과 회의하는 모습. 최유나 변호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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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에게 “소송하지 말라”는 이상한 변호사
이혼 전문 변호사로 산 지 13년 차. 2000쌍이 넘는 부부가 그의 상담실을 찾았습니다. 한때는 가장 친밀했을 부부가, 파탄에 이르는 갈등을 겪고 서로에 대한 증오와 분노에 휩싸인 채로요. 배우자를 망가뜨릴 심정으로, 잘잘못을 판결문에 기재할 목적으로 소송을 원했습니다. 그런 의뢰인을 만나면 꼭 하는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변호사만 돈 벌어줘서 뭐 할 거예요? 소송하시면 변호사만 돈 벌어요.” |
그는 인천에서 처음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2012년 만해도 인천은 조이혼율(인구 1000명당 이혼 건수) 1위였다. 그가 다녔던 로펌은 법원 앞 1층에 있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이혼 사건을 담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고 했다. 최유나 변호사 인스타그램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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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소송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혼하려는 이유가 배우자의 외도, 폭행 등 민법상 이혼 사유에 해당하면 소송을 통해 판결문에 기재하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위자료를 지급받을 수 있고요. 자신에게 이혼의 유책사유가 있지 않다는 점을 누군가에게 밝혀야 할 때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모든 이혼에 소송이 필요한 건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합의를 이끌어내도 변호사는 돈을 벌어요. 소송까지 가면 더 큰 돈을 벌 수 있지만, 소송하고 돈을 받으면 ‘내가 뭘 하고 있지’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감정적으로 격앙된 의뢰인에게 충분히 설명해 드리고 합의를 이끌어냈을 때 오는 쾌감이 금전적인 것보다 클 때가 있어요. 냉정하게 말씀드리면 상담하러 오시는 분 중에 소송이 필요한 케이스는 10건 중 1건이고 9건은 합의하는 게 맞습니다.”
번아웃으로 인한 우울감을 극복하기 위해 그리기 시작한 웹툰 ‘메리지 레드’. 이혼 전문 변호사인 본인을 주인공으로 다양한 이혼 사례를 풀어낸다. 최유나 인스타그램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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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엔 ‘새로운 일 벌이기’로 답한다
낮에는 변호사, 밤에는 엄마로 정신없이 살던 어느 날 번아웃이 찾아왔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번아웃이 오면 휴식을 택하잖아요. 그런데 그는 또 남과 다른(?) 선택을 합니다. 인스타그램에 웹툰 ‘메리지 레드’를 연재하기 시작한 겁니다.
우울감을 극복하게 해준 ‘메리지 레드’는 이혼전문 변호사의 일상과 다양한 이혼 사례를 다룬 웹툰. 연재 당시 구독자 25만 명을 넘겼고, 큰 화제가 됐습니다. 메리지 레드로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며 제작사 PD가 찾아왔습니다. 드라마 ‘굿파트너’의 시작이었습니다.
“‘혹시 대본을 써볼 수 있겠냐’고 하셨는데 저도, PD님도 정말 ‘혹시’ 였어요. 드라마를 써본 적은 없었거든요. 2~3년은 ‘혹시’하는 마음으로 습작을 했어요. 제작사도 저도 시간이 필요했거든요. 제작사는 제게 믿고 맡겨도 되겠단 생각이 들어야 했고, ‘나는 대본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깨닫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웹툰 ‘메리지 레드’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굿파트너’의 출연 배우들. 드라마 작법 교육도 받아본 적 없지만 그는 제작사와 계약도 하지 않은 상태로 2~3년을 습작했고, 6년 만에 16부작 드라마를 써낸다. SBS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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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업은 변호사에 어린 아들까지 키우는 워킹맘이었습니다. 하루를 꽉 채워 일하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노트북 앞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대본을 집필할 무렵에는 둘째 아이까지 임신했지만, 만삭인 배에 노트북을 올려두고 글을 썼을 정도로 그는 누구보다 ‘굿파트너’에 진심이었습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지?’ 같은 생각은 진짜 많이 했어요.(웃음) 막연한 꿈과 동경 때문이었나 봐요. 메리지 레드가 잘 되는 걸 봤잖아요. 글 쓰는 사람들은 공감할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내가 쓴 글을 보고 좋아하고 울고 웃으면 그 이상의 행복이 없거든요. 글 쓰는 방에서 아파트 거실에 켜진 불빛들이 보였어요. 저기 사는 사람들이 내가 쓴 드라마를 보면 나는 얼마나 더 행복해질까. 그 욕심이 제 발목을 잡고 놓지 않았어요.”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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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보다 OO이 더 중요한 드라마 작가
작가적 욕망 때문에 시작한 드라마 집필이지만 변호사로서 하고 싶은 말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다룬 건 ‘자(子)의 복리’였습니다. 양육권을 지정하게 될 때,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 심리적·정신적·신체적으로 안정적이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지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굿파트너’에는 양육권을 둘러싼 에피소드가 여럿 등장합니다. 2화에선 외도한 남편에게 두 아이의 양육권을 주고 20억 원의 재산분할을 받는 ‘비양육 엄마’가 등장합니다.
“경제적인 이유 혹은 다른 이유로 비양육권자가 되는 엄마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인터넷 댓글을 보면 ‘아이를 엄마가 키우지 않으니까 잘못이 있을 것이다’ ‘엄마 유책으로 이혼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기정사실처럼 하거든요. 이혼 전문 변호사로서 이걸 깨주고 싶었어요. 비양육 엄마를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아이의 행복 때문에요.”
‘양육권을 가진 부모는 이혼에 유책이 없을 것이다’라는 편견이 만연해지면, 양육권을 지정할 때 아이가 아닌 부부의 입장을 먼저 고려하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걱정했습니다. 실제로 이혼에 유책이 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양육권을 가져가려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상대의 유책성을 입증하려고 양육권을 가져오는 건 아이에게 정말 최악이거든요. 양육권은 오직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의 행복을 위한 방식으로 고려되어야 합니다.”
‘굿파트너’의 주인공 차은경(장나라)의 딸 재희(유나)는 아빠의 외도로 부모의 이혼을 겪게 된다. 부모의 양육권 분쟁을 앞두고 13년간 주양육자였던 아빠에 대한 미움과 그리움을 동시에 겪으며 이혼 사건의 당사자인 아이가 느낄 심정을 연기했다. SBS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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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이혼 부부의 아이는 ‘사건 본인’으로 불립니다. 아이를 제삼자가 아닌 이혼 사건의 당사자로 대해야 한다는 건데요. ‘굿파트너’ 주인공 차은경(장나라)의 이혼을 다루는 부분에서, 부모의 이혼을 겪는 ‘사건 본인’ 아이의 입장이 자세하게 소개됩니다. 치열한 양육권 분쟁 중 차은경의 초등학생 딸 재희(유나)가 아빠가 보고 싶다며 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빠의 외도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해당 에피소드가 방영되고 악플이 많이 달렸습니다. 주인공에 감정을 이입해서 보는 시청자로선 외도한 아빠를 그리워하는 딸이 괘씸했을 겁니다.
“드라마의 재미만 생각한다면, 딸이 엄마 편에 서서 아빠에게 정서적인 처벌을 줬을 것이고 그러면 ‘사이다’스럽고 재미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미성년자 아이들은 명확히 판단을 내리기 힘든 존재거든요. ‘아빠(엄마)가 잘못했으니까 다신 안 볼거야’ 이런 아이들, 거의 없어요. 아이들은 양육자 모두에게 애착을 가졌기 때문에 잘못한 부모라도 보고 싶을 수 있어요. 아이 입장을 생각해주길 바라는 변호사로서의 욕심이 투영된 에피소드였습니다.”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결심하는 차은경의 이야기는 여러 이혼 사건이 옴니버스로 전개되는 드라마에서 중심 서사로 작용했습니다. 그런데 차은경의 이혼은 드라마 중반부에서 합의로 마무리되고 이후엔 ‘돌싱 차은경’의 새로운 시작을 그려내는 데에 집중합니다. 주인공이 감정적 클라이맥스를 겪는 상황을 드라마 후반부에 배치하는 기존의 작법에서 벗어나는 전개였죠. 이 때문인지 차은경이 합의로 이혼을 마무리하는 10화 이후 시청률은 내림세를 타기도 했습니다.
‘굿파트너’의 무대가 되는 법무법인 대성 촬영 현장에 찾아간 최유나 변호사. 당시 대본 집필 중이라 노트북을 들고 촬영 현장을 찾았다. 최유나 변호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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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적인 드라마의 플롯은 아니지만 다시 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예요. 저는 작가이기 전에 변호사잖아요. 이혼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차은경이 홀로서기 하는 과정을 통해 이혼을 생각하고 있거나 이혼을 하신 분들이 용기를 얻길 바랐습니다.”
‘이혼 전문 변호사가 쓰는 이혼 드라마’이기에 작가보다는 변호사의 역할에 집중한 겁니다. 이번엔 작가가 아닌 변호사 최유나에게 대놓고 물었습니다. ‘굿파트너’라는 작품을 통해 ‘최변’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이었냐고요.
“‘주변은 다 잘 사는데 나만 힘들다. 이혼하고 행복을 찾고 싶다’면서 저를 찾아오시거든요. 근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관계의 본질이 갈등인데.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어요. 다만 부부라는 존재는 너무 밀접해서 갈등의 빈도가 많은 거고요. ‘모든 부부가 크고 작은 갈등을 안고 살아간다. 당신만 이런 일을 겪는 게 아니니 쉽게 이혼을 결정하기보다는 심사숙고하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굿파트너’를 쓸 때도 변호사라는 정체성을 놓지 않았던 그는 “이혼 전문 변호사가 천직”이라고 말한다. 그는 “변호사로서 삶을 충실하게 살다 보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 이혼에 대한 이야기라면 다른 사람보다 잘 쓸 수 있다는 생각에 드라마를 쓴 것이다. 차기작은 내게 사치스러운 단어이고 원래 살았던 대로 변호사 생활을 열심히 하다 보면 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지 않을까. 그런 다음 작품을 써보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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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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