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에 입사해 39세에 CTO 오른 겔싱어
절대강자 '인텔' 영광 되살리려고 했지만…
파운드리 재진출 선언이 패착으로 결론
비용 많이 드는 턴어라운드 전략의 한계
인텔은 2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내고 겔싱어 CEO가 지난 1일부로 사임했다고 밝혔다. 회사를 임시로 이끌 공동 CEO에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데이비드 진스너 부사장과 클라이언트컴퓨팅그룹(CCG) 등을 이끄는 미셸 존스턴 홀트하우스 사장이 임명됐다.
지난 6월 4일 대만에서 열린 컴퓨텍스 2024 기조연설에서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웨이퍼 샘플을 들고 있다. (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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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에 입사해 39세에 CTO 오른 겔싱어…절대강자였던 인텔
겔싱어 CEO는 이날 성명에서 “씁쓸하다(bittersweet)”고 했다. 그는 “현재 시장에 인텔을 맞추기 위해 힘들지만 필요한 결정을 내렸고, 올해는 우리 모두에게 도전적인 한 해였다”고 회고했다.
겔싱어 전 CEO는 인텔에서 입지전적 인물이다. 학창 시절 수학과 과학 성적이 뛰어났던 겔싱어는 대학에도 진학하지 않은 18세 때인 1979년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인텔에서 386 프로세서를 개발하면서 앤디 그로브 전 인텔 CEO의 관심을 받았다. 그는 “나의 경력을 결정지은 순간”이라고 회상한 바 있다. 겔싱어는 이후 수십 년간 그로브와 함께 ‘무어의 법칙’(반도체의 성능이 18개월마다 두 배씩 증가한다는 법칙)으로 유명한 고든 무어 인텔 창업자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겔싱어는 인텔의 486프로세서 개발에 참여한 뒤 2001년 39세의 나이로 인텔의 첫 최고기술책임자(CTO)에 올랐다. 2009년 수석부사장에 오르며 차기 CEO로 거론됐지만 회사를 떠나 클라우드컴퓨팅 기업 EMC, VM웨어 등에서 인생 제2막을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인텔은 절대강자였다. 대부분 PC에 인텔의 중앙처리장치(CPU)가 담겼고, ‘인텔 인사이드’라는 홍보 문구는 회사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반도체 설계·생산·판매를 아우르는 ‘종합 반도체 기업(IDM)’ 대표주자였다.
하지만 변화보다 안주를 택했다. 2000년대 들어 빠르게 성장한 모바일 및 인공지능(AI) 칩 생산에서 뒤처지면서 경쟁력이 약화됐다. 주력인 CPU 부문에서도 경쟁사인 AMD에 추격을 허용했고,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와 설계 경쟁에서 대만 TSMC, 삼성전자, 엔비디아 등에 뒤처지면서 ‘반도체 황제’ 타이틀은 점차 사라졌다. 2010년대 인텔을 이끈 재무·기획통 CEO들이 무리한 원가 절감과 기술자 홀대를 한 게 대표적인 패착이었다.
지난 2006년 3월 7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2006 인텔 개발자 포럼에서 인텔의 디지털 엔터프라이즈 그룹 수석 부사장인 팻 겔싱어가 듀얼 코어 차세대 칩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AFP) |
야심 차게 파운드리 재진출 선언…비용 많이 드는 턴어라운드 전략
위기에 빠진 인텔은 2021년 2월 그를 다시 불러들여 CEO로 임명해 회사 재건에 나섰다. 겔싱어는 취임 이후 한 달 만인 그해 3월 파운드리에 다시 진출하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대만, 한국에 뺏긴 반도체 공급망을 되찾고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퀄컴 등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의 최첨단 칩 생산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21세기의 석유’ ‘전략무기’로 불리는 반도체의 경쟁력을 키우고 싶은 미국 정부의 든든한 지원도 있었다.
하지만 야심 찬 계획과 달리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는 TSMC와 삼성전자에도 턱이 높은 1나노대 반도체를 2027년에 양산하겠다는 장밋빛 계획을 내놨지만, 내부 역량이 따라주지 못했다. 이미 핵심 인력은 경쟁사에 다 빠져나갔고, 기술 격차는 더 벌어졌다. TSMC의 2나노 생산설비의 수율은 30%인 반면 인텔이 내세운 18A 공정은 10%도 되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빅테크들이 인텔에 칩 생산을 맡길 리가 없었다.
파운드리 재건은 비용이 많이 드는 턴어라운드 전략이다. 투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돈을 벌 수 없자 재무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인텔은 100억 달러(14조여원) 비용 절감을 위한 대대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고, 전체 직원의 15%인 1만5000명을 정리 해고했다. 또 2024 회계연도 4분기에는 배당금을 지급하지 않고 연간 자본 지출도 20% 이상 줄이기로 했다. 오하이오주 공장건설 계획도 절반으로 축소했고, 독일에서 진행 중이던 300억유로(44조원) 규모의 공장 프로젝트도 보류했다. 급기야 칩 경쟁자인 퀄컴이 인수 대상으로까지 거론하면서 겔싱어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가 CEO로 재직한 기간 인텔의 매출은 3분의 1 가까이 감소했고, 주가는 61% 하락했다.
29년간 인텔 이사회 이사를 역임했던 데이비드 요피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지난 2년간 매출 감소와 비용 급증에서 알 수 있듯이 겔싱어는 너무 오래 걸리는 성장 전략에 전념했다”며 “세상은 변했고, 인텔은 이제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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