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 청산가리 탄 막걸리 마시게 해 아내이자 친모 살해
무기징역·징역 20년 확정…"위법 수사" 인정돼 재심 개시
범행동기 진술 받은 수사관 증인 채택 놓고 입장 엇갈려
박준영 변호사 "'조직 논리' 검찰에 실망, 무죄 입증할 것"
[광주=뉴시스] 박기웅 기자 = 2009년 전남 순천의 한 마을에서 발생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 부녀의 재심 첫 재판이 열린 3일 오후 부녀의 법률 대리인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가 재판을 마친 뒤 광주고등법원 앞에서 기자들을 만나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2024.12.03. pboxer@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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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2009년 전남 순천의 한 마을에서 발생한 이른바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으로 중형이 확정됐던 부녀(父女)에 대해 15년 만에 재심 재판이 열렸다. 검사는 여전히 이들 부녀의 유죄를 주장했고 법률대리인 측은 위법 수사에 대한 입증을 자신하며 법정 공방을 예고했다.
광주고법 제2형사부(고법판사 이의영·김정민·남요섭)는 3일 201호 법정에서 살인과 존속살해 혐의로 기소돼 각기 무기징역과 징역 20년의 형이 확정됐던 백모(74)씨와 백씨의 딸(40)에 대한 재심 첫 재판을 열었다.
백씨는 2009년 7월6일 순천에서 청산가리를 넣은 막걸리를 아내 최모(당시 59세)씨와 최씨의 지인에게 마시게 해 2명을 숨지게 하고 함께 마신 주민 2명에게 중상을 입힌 혐의로 딸과 함께 기소됐다.
당시 검찰은 부적절한 관계를 맺던 백씨 부녀가 갈등을 빚던 아내이자 친모인 최씨를 살해했다고 봤다.
1심은 백씨 부녀가 아내이자 친모인 최씨를 살해한 혐의 등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지만 2심은 원심을 깨고 중형을 선고했다.
2심은 백씨 부녀와 최씨의 갈등을 살인 동기로 볼 수 있고 청산가리 보관 등 범행 내용·역할 분담에 대한 진술이 일치한다고 봤다. 아버지 백씨에게는 무기징역이, 딸에게는 징역 20년을 선고됐다. 2012년 3월 대법원은 2심 선고대로 이들에 대한 유죄를 확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최종 확정 판결 이후에도 막걸리 용량이 구입처로 지목된 식당에서 주로 취급하지 않았던 점, 막걸리 공급 장부 사본이 위조된 점, 청산가리 입수 시기·경위와 감정 결과가 명확치 않았던 점 등으로 논란이 일었다.
백씨 부녀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유죄 확정 10여년 만인 지난 2022년 재심을 청구, 올해 9월 대법원에서 재심 절차 개시가 최종 확정됐다.
이에 따라 사건 발생 15년여 만에 광주고법에서 다시 백씨 부녀에 대한 재판이 열리게 됐다. 백씨 부녀는 재심 결정 이후 형 집행정지로 출소한 상태로 재심 재판을 받는다.
이날 재심 재판에서 검사 측은 "백씨 부녀의 자백 뿐만 아니라 정황을 비춰봐도 유죄가 인정된다"며 유죄 주장을 되풀이했다.
【순천=뉴시스】김석훈 기자 = 2009년 7월16일 오후 광주지법 순천지원 형사1부(재판장 홍준호)가 순천막걸리 살인사건의 현장검증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재판부와 검찰, 변호인이 피의자 A씨가 진술한 청산가리 막걸리가 처음에 놓여 있었던 곳을 바라보고 있다. kim@newsis.com |
반면 백씨 부녀의 법률 대리인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는 "백씨 부녀에게는 문맹, 경계성 지능 장애 등이 있다. 이처럼 형사사법 절차에서 약자인 점을 악용해 검사·수사관이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중대한 위법까지 저질러 허위 자백을 끌어냈다. 하지도 않은 진술을 적극적 진술로 기록하고 유리한 무죄 증거는 감췄다. 무죄를 입증할 만한 명백한 새로운 증거가 인정돼 재심 개시가 확정된 점 등도 살펴봐야 한다"고 맞섰다.
구체적으로 백씨가 범행 전(막걸리 생산일 7월2일~사건 당일) 화물차를 몰아 시장 식당에 들러 막걸리를 사 왔다는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점, 범행 증거로 확보한 플라스틱 수저에서 청산가리가 검출되지 않자 증거로 제출하지 않은 점, 청산가리 입수 경위를 충분히 검증하지 않은 점 등을 무죄 주장 이유로 들었다. 또 당시 검사가 '백씨가 오이농사에 쓰이는 청산가리를 보관하고 있었다'는 주장 역시 허위라고 반박했다.
검사와 박 변호사 모두 당시 허위 조서 작성과 강압 조사 의혹을 받는 당시 수사 검사와 수사관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데 이견이 없었다.
다만 당시 살해 범행의 동기로 꼽힌 부녀 사이의 성관계 관련 진술 조사에 참여한 수사관들에 대한 증인 채택 여부를 놓고는 검찰이 반대했다.
검찰은 이미 관련 법정진술이 확보돼있다고 했으나 박 변호사 측은 "위증이다"며 추가 증인 신문이 필요하다고 맞섰다.
재판부는 양측의 증인 신청서 내용과 취지 등을 검토해 추후 증인 채택 여부를 정하기로 했다.
우선 박 변호사 측이 신청한 백씨 부녀의 조사 당시 영상을 감정한 범죄심리학 교수, 화학과 교수 등을 증인으로 불러 신문키로 했다.
박 변호사 측은 화학과 교수를 통해 범행에 쓰인 청산가리가 오이농사에 적합하지 않고 보관 기간에 따른 상태 변화가 공소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점 등을 집중 입증하겠다는 계획이다.
백씨 부녀의 재심 사건 다음 재판은 내년 2월11일 오후 4시10분 열린다.
재심 재판을 나온 백씨 부녀는 "지금은 할 말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부녀의 법률 대리인인 박 변호사는 재판 직후 취재진과 만나 "검찰이 여전히 수사로 인해 고통 받았던 이들에 대한 공감은 안중에 없이 조직 논리를 대변하려는 듯 해 실망이 크다"면서 "치료감호소에서의 감정 결과를 봐도 백씨 부녀가 약자라는 점은 넉넉히 인정된다. 경찰과 달리 검찰 수사 단계에서 약자라는 점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선은 백씨 부녀에 대한 무죄 입증에만 최선을 다하겠다. 당시 수사 과정에서도 의심스러운 제삼자가 있었지만 백씨 부녀가 이렇게 억울한 일을 당한 마당에 함부로 단정할 수는 없다. 무죄 판결이 내려진 이후 진범이 누군지 밝혀내는 일은 경찰과 검찰이 해야 할 일이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wisdom2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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