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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소용돌이 정치에 흔들리는 사법부 [한국의 창(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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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후에도 정치화 여전한 사법부
동일 사안·상이 판결, 국민 승복 어려워
사법부는 정의의 저울추를 바로 세워야
한국일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25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위증교사 혐의 재판 1심 선고 무죄 판결을 받은 후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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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대선에서 패배한 트럼프 지지자들이 미국 민주주의의 상징인 의사당에 난입했다. 특검은 대선 결과 불복 및 백악관 기밀문서유출 혐의로 트럼프를 기소했으나, 2024년 미 법무부는 트럼프 당선 후 기소 취소를 단행했다. 배심에서 전원 일치로 유죄평결을 받은 성인물 여배우 입막음, 조지아주 선거외압 의혹에 대해 재판중지도 요청했다. 미국 헌법에는 한국 헌법과 달리 대통령의 형사상 특권 규정이 없지만, 관례상 대통령 재직 중 재판은 중단된다. 대선 승리로 사법 면책이 현실화된다. 정치가 사법을 압도한 사례다.

한국에서도 정치와 사법의 갈등이 촉발된다. 1994년 취임 직후 김영삼 대통령이 김덕주 대법원장의 접견을 거부하자, 그는 결국 사직했다. 그는 1979년 당시 김영삼 신민당 총재에 대한 ‘직무집행정지가처분신청’ 인용 결정 당시 서울민사지방법원장이었다. 권위주의 시대에 사법이 정치화된 전형적인 사례다.

2017년 문재인 정부는 초임 지방법원장 김명수를 대법원장으로 발탁하였다. 이후 소위 사법부 적폐청산 과정에서 사상 최초로 직전 대법원장이 구속되었다. 뿐만 아니라 대법관들과 고위 법관들이 기소되거나 탄핵소추되었다. 후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법관들이 무죄판결을 받았다. 민주화 이후에도 정치화된 사법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다섯 개의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다. 공직선거법 사건에서 1심은 실형을 선고했지만, 위증교사 사건에서 1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보통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양극단의 판결에 따라 희비가 교차한다. '기교사법'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반면에 정치검찰의 수사·기소권 남용이라고 비난한다. 향후 사법부의 최종 판단에 따라 제1야당 대표이자 유력 대권후보의 정치적 명운이 좌우된다. 미래 권력의 향배가 사법에 의해 좌우되는 양상이다.

방송통신위원회의 2인 체제에 대하여 서울행정법원은 위법으로, 서울남부지법은 합법으로 결정했다. 국가기관의 정상적 작동이 멈춰 섰다. 같은 사안에서 전혀 다른 판단은 사법 불신을 자초한다. 대법원은 급속 심리로 하루빨리 결론을 내려야 한다. 심지어 동일한 사안에서 두 개의 최고사법기관인 헌재와 대법원 판례도 몇 차례나 상이하게 내려진 바 있다. 사법부의 자성과 더불어 지혜로운 작동이 요망된다. 그간 비슷한 사안에서 양형이 들쭉날쭉하여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비난이 이어진다. 특히 정치적 사건에서는 유권무죄, 무권유죄 논란이 계속되면서 재판 불신이 증폭된다. 대법원에 설치된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도 별다른 기능을 못 한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안착을 위해 정치권과 사법부 모두 성찰할 때다. 정치권은 정치문제를 사법의 장으로 내몰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결하는 성찰이 필요하다. 사법부도 정치권에 휘둘리지 않도록 스스로 독립을 지켜나가야 한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헌법 제103조)." 법관의 법 해석은 주관적·자의적이어서는 안 되고 객관적·체계적이어야 한다. 법관은 자신의 개인적인 주관적 법 감정이 아니라 법관으로서의 '합리적 양심'에 따라 재판에 임해야 한다. 대통령이나 국회와 달리 국민적 정당성을 직접 부여받지 않은 사법부는 오롯이 정의로운 판결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할 때다.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법부는 "각자에게 그의 것을" 부여하는 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옷깃을 여미고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정의의 저울추가 평형을 잃어서는 아니 된다. 정치권과 언론도 각자의 이해에 따라 판결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사법부의 안정과 독립을 위해 자제하고 승복하자.
한국일보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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