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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윤고은의 모서리를 접는 마음] 새해에 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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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윤고은 소설가


올해의 첫 번째 크리스마스 트리는 동네 고깃집에서 봤다. 나는 매해의 첫 트리를 기억하는 사람, 동시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제철인 시기를 살면서도 벌써 소등 이후를 떠올리는 사람이다.

해가 바뀌고 화려한 불빛이 하나둘 꺼지면 그제야 우리에게 민낯 같은 일상이 닥친다. 캐롤을 듣고 덕담을 주고받느라 잠시 미뤄두었던 무상함과 피로감이 하필이면 새해 초에 밀려오는 이유다.

중앙일보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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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이 아직 새것 같았던 그때, 그러니까 2023년의 마지막 날을 떠올려본다. 이른 아침 산책길에 즉흥적으로 광역버스에 올라타서는, 서울 명동이며 종로며…. 오후가 되면 불빛과 열기로 달아오를 거리를 미리 걸었다.

그러다 어느 식당에서 “내가 낼게!” “아니야! 사장님, 이걸로 결제해 주세요!” 하는 정겨운 실랑이를 보기도 했다. 국밥집 사장님은 두 개의 신용카드 중 하나를 받아들면서, 선택되지 못한 분에게 “새해에 내세요!” 하셨는데, 그 말이 어찌나 상큼하게 들렸는지!

그날은 12월 31일이었으니 바로 내일부터가 새해인 셈이었는데, 그 새해는 잘 살아내야 하는 부담스러운 시험이 아니라 살포시 곁에 두고 가는 다정한 선물 같았다. 낙엽처럼 수북이 쌓인 날들 위로 저벅저벅 걸어가다 마침내 한 해의 끝에 닿았지만, 새해가 시작되기도 전에 지쳐버린 사람에게 필요한 응원의 방식이었다.

그래서 국밥집 손님 둘은 올해에도 만나 밥을 나눴을까? 이번에는 다른 분이 계산했을까? 그 근처를 지나칠 때마다 생각한다. 물론 올해 만나지 못했다면 새해에 하면 된다. 살아있는 한 우리의 날들은 매일 새것처럼 온다. 우리의 하루하루는 소등하듯이 단번에 멈추는 것이 아니다. 무겁다면 한없이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인데 이것을 거창한 다짐이나 성찰의 필터를 걷어내고, 경쾌한 덕담으로 전해준 말이 국밥집에서 만난 “새해에 내세요”다.

윤고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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