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선포한 계엄령이 국회에 의해 해제된 4일 새벽 시민들이 국회 앞에 모여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채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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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을 해제하라”는 구호는 이윽고 “윤석열을 체포하라”로 바뀌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갑작스런 계엄 선포 뒤 2시간33분 동안 마음을 졸이며 국회로 모여든 시민들은 ‘계엄이 해제됐다’는 소식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4일 새벽 1시 국회 본회의장에서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이 가결됐다는 소식은 국회 앞을 가득 메운 시민들 사이에도 전해졌다. “해제됐대요.” 서로에게 소식을 전하는 시민들 만면에 안도감이 가득했다. 이들은 애타게 “계엄 해제”를 요구하던 목소리를 “백프로 탄핵 사유다” “윤석열을 몰아내자” “윤석열을 탄핵하라”로 바꿔 외쳤다. 낯선 헬기 소리가 요란했던 국회 앞 소음은 이윽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대한민국 헌법1조)는 노랫 소리로 뒤덮였다.
교과서에나 본 ‘계엄’이라는 단어를 현실에서 접한 청년들은 한밤의 혼란스러운 상황에 한층 더 분노했다. 김아무개(20)씨는 “계엄은 정당한 절차를 무시한 헌정 유린으로 알고 있다. 이런 국가적 사안에 대해 가만히 있지 말라고 배웠다. 싸우라고 배웠다”며 “해제됐다고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대통령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 좀 더 자리를 지키며 두고보려고 한다”고 했다. 친구와 함께 나온 이예은(29)씨도 “원래 정치는 피곤하기만 하고 갈등 조장하는 걸로만 느껴져서 관심을 끄고 있었는데, 유튜브에서 펼쳐지는 모습을 보고 이건 너무 도가 지나친다, 아니다라는 생각에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국회로 진입하는 계엄군과 헬리곱터, 서울 도심에 들어선 장갑차 등 대통령에 의해 펼쳐진 초유의 폭력적인 풍경에 참담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아무개(40)씨는 “이것은 범죄다. 체포 대상”이라며 “군대는 국민을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인데 군인으로 국민을 위협하고 협박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서울대에 교환학생으로 와 있다는 우고 산토스(20)는 “대통령이 자기 권력 잃는 걸 피하기 위해 스스로 구실을 만든 것”이라며 “이렇게 잘 발전한 나라에서 계엄령을 선포한다는 건 정말 불명예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월남전 참전용사인 국가유공자 김진훈(76)씨는 ‘반국가세력’을 들먹이며 계엄을 시도한 대통령을 꾸짖었다. 김씨는 “지금 반국가 세력이 어딨나. 북한이 지금 쳐들어온다고 했느냐”며 “국민들이 다 들고 일어나야 한다. 특히 젊은 세대가 들고 일어나야 한다. 대장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라고 했다.
이날 계엄 해제 뒤 주요 시민단체들도 성명을 내어 환영과 함께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을 강하게 물었다. 군인권센터는 “평화로운 일상을 깨고 무장 병력이 국회에 난입했다. 윤석열의 친위쿠데타”라며 “싸워야 한다. 안심하기엔 아직 권력이 윤석열의 손에 있다. 오늘 밤 깨어있어 달라”고 했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은 “다행히 국회의원들이 경찰과 군대를 뚫고 들어가 국회를 열었고, 국회의원 190명 전원 찬성으로 계엄해제안을 가결시켰다. 야당만이 아니라 여당 의원까지도 계엄이 위헌적이라는 것에 동의한 것”이라며 “이제 남은 것은 대통령의 계엄 해제와 윤석열 대통령의 사퇴다. 스스로 내려오는 것이 가장 평화로운 방법일 것”이라고 했다.
계엄이 해제된 뒤 국회에 진입했던 군인들은 시민들 쪽으로 철수했다. 새벽 국회로 모여드는 시민들은 지속해서 늘어났다.
고나린 기자 me@hani.co.kr 김채운 기자 cwk@hani.co.kr 정봉비 기자 bee@hani.co.kr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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