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계엄군이 국회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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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주요 외신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해제, 국회의 해제 요구 결의안 가결 상황 등을 지난밤 가장 중요한 기사로 꼽았다. 그러나 이번 계엄의 배경에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어리둥절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예산 싸움, 야당과의 대립으로는 45년 만에 선포된 비상계엄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BBC 등은 국회 앞에 모여 무장한 계엄군 앞을 맨몸으로 막아선 시민들에 초점을 맞췄다. 지난밤 긴박했던 상황을 정리해봤다.
4일 오전 3시 9분. 윤석열 대통령은 두 시간 전에 국회가 가결한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그때는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구독자 전용 뉴스레터인 '오프 더 차트(Off the charts)'가 이메일 보관함에 도착한 시간이기도 하다. 오프 더 차트의 이번주 제목은 '헛수고(All for naught)'다.
이코노미스트의 비주얼 데이터 담당기자인 로저먼드 피어스는 첫번째 사진으로 나사(NASA)가 제작한 불 꺼진 한반도 지도를 골랐다. 한반도의 북쪽에는 어둠이, 남쪽에는 밝은 빛이 대조되는 유명한 사진이다. 로저먼드 기자는 "이곳의 부재不在를 돋보이게 표현하려면 다른 곳의 존재와 대조하는 게 도움을 준다"며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무언가를 만들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3일 밤 10시 25분 45년 만에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유를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총을 든 군인들이 국회로 진입했다. 시민들이 맨몸으로 계엄군과 맞서 시간을 벌었다. 그 덕에 국회의원 190명이 모여 전원 찬성으로 계엄 해제 결의안을 가결하는 데 성공했다.
4일 오전 4시 26분 윤석열 대통령이 미리 녹화해둔 대국민 담화 영상에서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를 수용해 계엄을 해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반국가 세력'을 0으로 만들겠다며 국회로 진군했던 6시간은, 오히려 불 꺼진 한반도 지도처럼 민주주의의 부재를 도드라지게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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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들도 어리둥절하긴 마찬가지였다. 워싱턴포스트는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했다가 해제했다. 왜일까?'라는 기사에서 "처음에는 윤 대통령과 군대가 계엄을 해제하라는 국회 표결을 받아들일지 불투명했다"며 "이례적인 계엄 선포가 많은 한국 국민을 분노하게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미국의 동맹 중 하나인 한국이 모범적이지 못한 민주주의 원칙을 드러냈다"고 꼬집었다. 로이터는 "한국의 금융·외환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한국이 향후 다자외교 체제에 동참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외신들은 계엄령의 배경을 해석하려고 시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의 짧았던 계엄령'이라는 기사에서 "예산 싸움이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고, 국회를 제한하며, 군대를 거리로 내던지는 계엄령을 정당화할 순 없다"며 "윤 대통령의 계엄령과 같은 한국 혼란의 징후가 오히려 북한 독재자 김정은의 무모한 군사행동을 자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AP통신도 시드니 사일러 전 미 국가정보위원회 북한 담당관의 발언을 인용해 "(계엄 선포 배경은) 야당이 장악한 의회를 향해 불만을 표출한 상징적인 조치"라며 "윤 대통령은 탄핵 가능성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신문들도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해제를 1면 톱기사로 중요하게 다뤘다. 아사히신문은 '한국 대통령 비상계엄 선언'이라는 기사에서 "1961년 군사 쿠데타 때 계엄령을 선포했고, 1980년대 초반까지는 계엄을 자주 선포했었다"고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한국 계엄령 선언'이라는 기사에서 "야당과 대립이 격화한 것"이라며 정치활동 금지 등을 담은 계엄사령부 포고령을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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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에 맨몸으로 맞선 서울 시민들에 집중한 건 영국 BBC였다. 에이미 워커 BBC 기자는 '대통령이 군대 철수를 발표하자 환호하는 서울 시민들'이라는 기사에서 새벽 4시 26분 국회 정문 앞 전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계엄 해제 발표 소식이 전해지자 추위를 견디며 철야 농성을 이어가던 시위대는 환호하기 시작했다 … 누군가 북을 두드리자 사람들은 '우리가 승리했다!'고 외치기도 했다."
프랑스 통신사 AFP는 오슬로대학 한국학과 블라디미르 티호노프의 발언을 인용해 계엄 사태 이후를 전망했다. "계엄을 실시하려던 윤 대통령의 움직임은 역사를 되돌리려는 시도다. 나는 한국의 시민사회가 윤 대통령을 더 이상 합법적인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정연 더스크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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