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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국회냐 당사냐…650m 길 하나 사이로 정치 운명 갈린 친윤·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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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다음 날인 4일 새벽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국회 본회의장을 나와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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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냐 당사냐.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하기까지 약 150분 동안 국민의힘 의원들이 맞닥뜨린 선택의 기로다.

서울 여의도 국회 의사당과 국회대로 건너편에 있는 국민의힘 당사는 직선거리로 650m 떨어져 있다. 도보로 10분, 차량으론 2분 거리다. 당시 긴박했던 상황에서 국회로 향했느냐, 아니면 당사에 머물렀느냐에 따라 정치적 운명이 갈리게 됐다. 한동훈 대표와 국회로 향한 친한계 의원들은 본회의장에서 결의안 표결에 참여했지만, 추경호 원내대표의 막판 공지에 따라 당사로 간 친윤계 의원들은 표결에 불참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학과 교수는 “계엄 사태를 계기로 친한계의 입지가 더 커지고, 친윤계는 당분간 위축되는 등 여당 권력 지형이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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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기자


이날 밤, 여당은 갈팡질팡했다. 3일 계엄 선포 뒤인 오후 11시 3분 추경호 원내대표는 비상 의원총회를 소집하면서 장소를 국회로 공지했다. 그러나 국회 출입 봉쇄 소문이 돌자 10분 뒤 당사로 바꿨다. 곧 한동훈 대표와 친한계 의원 16명 안팎, 추경호 원내대표와 원내지도부 인사 등이 당사 3층에 모여들었다. 여기서 “국회 봉쇄 상황이니 당사에 머물자”는 추 원내대표와 “국회로 이동하자”는 한 대표의 입장이 엇갈렸다고 한다. 결국 한 대표는 오후 11시 35분쯤 “걸어서라도 국회 갑시다”며 당사를 빠져나왔고, 추 원내대표와 원내지도부도 국회로 뒤따랐다. 추 원내대표는 이때 집결 장소를 국회로 재공지했다.

한 대표와 친한계 의원들은 곧장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갔지만, 추 원내대표 등은 원내대표실로 이동했다. 이후 추 원내대표는 자정을 넘긴 0시 6분쯤 소집 장소를 당사로 재공지했고, 이후 여의도에 도착한 여당 의원들은 모두 당사로 집결했다. 그 사이 새벽 1시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야당 의원 172명, 여당 의원 18명이 참석한 가운데 비상계엄 해제 결의 요구안 표결이 이뤄졌다. 출입구 봉쇄로 국회에 머물던 추 원내대표와 원내지도부 인사들은 표결에 불참했다. 김종혁 최고위원은 “한 대표가 추 원내대표에게 본회의장에 와 달라고 했는데 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추 원내대표는 취재진에게 “(의원들이) 국회에 도저히 진입이 안 돼 당사에 모여 있었다”며 “표결은 제 판단으로 불참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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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3일 저녁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밤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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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게 150분 안에 벌어졌지만, 정치적 후폭풍은 적지 않을 전망이다.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각계의 비난 여론이 들끓는 상황에서, 비상계엄 해제 표결에 누가 참석했고 누가 불참했느냐에 따라 여론의 시선이 극과 극이기 때문이다.

지난 7월 한 대표 취임 이후 좀처럼 내부 반경을 못 넓히던 친한계는 표결 참여를 고리로 반전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4일 한 대표와 친한계는 내각 총사퇴, 김용현 국방부 장관 해임, 윤 대통령 탈당 등을 주장하며 이슈를 주도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야당의 탄핵 공세 등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친한계가 장기적으로 여권 내 구심점을 형성할 가능성이 있다. 어쨌든 비상계엄에 반대한 명분을 쥐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명 안팎인 친한계가 존재감을 과시하며 몸집을 불릴 가능성도 거론된다. 실제로 그간 윤 대통령에게 호의적이던 일부 영남 의원 사이에서도 기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한 TK(대구·경북) 지역 의원은 “탄핵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비상계엄은 윤 대통령의 되돌릴 수 없는 자충수”라며 “만약 본회의장에 집결하라고 공지했다면 담을 넘어서라도 비상계엄 해제에 표를 보탰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3선 의원도 “중립 성향 의원들이 결국 친윤계보다는 친한계로 쏠리지 않겠나”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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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의원총회에 참석해 회의 시작을 기다리며 시계를 보고 있다. 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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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윤계는 난데없는 ‘계엄 유탄’을 맞고 정치적 치명상을 입었단 평가다. 친윤계는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과 별개로 여당 주류였고, 당정 관계의 중재자로 존재감을 과시해왔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주도한 계엄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친윤계도 코너에 몰렸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이제 보수진영에서 ‘친윤’이라는 단어는 의미를 상실했다”고 진단했다. 범친윤계로 통하는 한 의원은 “향후 정국에서 목소리를 낼 명분이 사라졌다. 이제 어디 가서 ‘나 친윤계’라고 말할 수 있겠나”고 반문했다.

친한계 일부는 친윤계인 추 원내대표 책임론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친한계 김상욱 의원은 4일 “의도는 알 수 없지만 (집결 장소 공지에) 혼선을 줘 표결을 방해한 결과가 됐다”며 “추 원내대표는 국회에 있으면서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국민이 용서할 수 없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다른 친한계 의원은 “야당은 국회 봉쇄를 못 뚫어서 172명이 본회의장에 들어왔겠나”라며 “당내에선 친윤계가 의도적으로 여당 의원들이 표결하지 못하도록 유도했다는 의심까지 나온다”고 했다.

손국희ㆍ이창훈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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