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계엄령이 해제된 뒤 백악관의 첫 입장은 “사전에 통지받지 못했다”는 당혹감 섞인 반응이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아프리카 앙골라 방문 중 한국의 계엄령 사태를 보고받았다. 이후 미국은 각 급에서 한국 정부를 향해 ‘계엄을 해제하라’는 국회 결의를 준수하라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인도·태평양 업무 총괄인 커트 캠벨 부장관도 “중대한 우려(grave concern)를 갖고 한국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며 “법치에 부합하는 해결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날 새벽 4시27분쯤 윤 대통령이 계엄을 공식 해제하자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은 “윤 대통령이 우려스러운 계엄령 선포에 대해 방향을 바꿔 국회의 표결을 존중한 데 대해 안도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한국의 국내 상황과 관련해 ‘우려스럽다’는 표현을 여러 차례 반복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었다는 분석이다. 이는 북핵 대응을 위한 한·미 연합훈련의 차질로 이어졌다. 미 국방부가 먼저 4일부터 이틀 동안 미국 워싱턴에서 진행하려던 한·미 제4차 핵협의그룹(NCG) 회의와 제1차 NCG 도상연습(TTX)이 연기됐다고 밝혔다.
NCG는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대북 억지력 강화와 관련해 일군 가장 큰 외교적 성과로 꼽히는데, 바이든 행정부 교체 전 ‘피날레’ 격으로 진행하려던 해당 회의도 취소한 것이다. 미 국방부는 연기하는 이유조차 대지 않았다.
관련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미국이 계엄령 소식을 접하고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며 “다양한 경로로 한국에 경위와 향후 상황 전개에 대해 문의했는데, 제대로 된 대응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답답한 상황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토로했다.
미국으로선 한반도의 소요 사태는 곧 직접적 국가 안보 위협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크다. 북한뿐 아니라 중국의 예기치 못한 대응도 고려해야 하고, 이제는 북한과 사실상 조약 동맹을 맺은 러시아가 개입에 나설 가능성까지 따져야 하는 상황이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4일 오후 윤 대통령의 계엄령 해제와 관련해 “중요한 조치”라고 평가하는 입장을 냈다.
이번 계엄 사태가 윤석열 정부가 쌓아온 외교적 자산을 상당 부분 훼손했다는 우려도 크다. 곧 들어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한국에 대한 ‘첫인상’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지적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아직 입장을 내지 않았지만 측근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소셜미디어 엑스를 통해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세계 각국 정상이 트럼프 당선인과 앞다퉈 만나려 시도하고 주요국은 모두 전방위적인 대미 로비와 새로운 네트워크 발굴에 힘을 쏟을 때 한국의 외교만 제로베이스로 돌아가 모든 게 멈춘 격”이라고 지적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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