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마저 정겨운 덕구 온천을 저는 최근에야 알게 됐습니다. 틈만 나면 일본 전역의 온천들을 찾아다녔지만 정작 한국 온천엔 거의 가본 적이 없거든요. ‘온천 소믈리에’를 연재하면서 “한국에도 좋은 온천이 많다”는 제보를 여러 번 받았어요. 정말 그렇다고? 호기심 발동해 한국의 온천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죠.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한국에는 383개의 온천지구가 있다고 합니다. 3000여개인 일본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생각보다 꽤 많습니다. 온천수를 활용한 목욕탕이나 숙박업소 등 온천 시설은 총 551개라고 해요. 온양 온천지구, 수안보 온천지구처럼 여러 개의 목욕탕과 호텔이 몰려있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하나의 목욕탕=하나의 온천지구’로 집계되는 상황입니다.
일본의 온천수는 지하수가 마그마에 의해 데워지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은 대부분 고대 화산 활동으로 인해 형성된 지하 화강암 사이에서 온천수가 생성돼요. 당연히 광물 성분 등의 함량이 크게 높지 않은 ‘순한 온천’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온천법에선 성분 등에 크게 관계없이 ‘지하로부터 용출되는 섭씨 25도 이상의 온수로 그 성분이 인체에 해롭지 아니한 것’을 폭넓게 온천수로 인정해주고 있어요.
그래서 어디를 가야 하느냐, 저도 고심을 많이 했습니다. 각 온천지의 특징을 살펴본 후, ‘한국 온천 초보 소믈리에’로서 꼭 들러야 할 곳 세 곳을 (맘대로) 골랐습니다. 국내 수백 개 온천 중 물 좋고 시설 좋은 곳을 정부가 콕 집어 지정한 ‘국민보양온천’도 있는데요. 전국에 딱 9곳 뿐입니다. 저처럼 한국 온천이 낯선 이들이라면 일단 그곳부터 공략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충남 아산에 있는 '파라다이스스파 도고'에서 온천욕을 즐기는 사람들. 사진 파라다이스 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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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으러 간다? ‘인스타 핫플’이 된 온천
온천을 즐기는 방법에 일본식과 유럽식이 있다는 건 들어보셨을 겁니다. 일본 온천은 대부분 물의 온도가 높아 옷을 다 벗고 입욕하는 곳이 대부분이죠. 반면 유럽의 온천들은 물 온도가 낮고, 수영복을 입고 들어가 즐기는 게 일반적이라고 해요. 한국 온천은 두 가지가 섞여있어요. 일제 시대 일본에 의해 개발된 경우가 많아 초기에는 목욕탕 형태로 발전했지만 최근에는 온수 풀에서 수영복을 입고 물놀이를 즐기는 워터파크 형태가 인기에요. 인스타용 사진을 찍으러 온천을 찾는 젊은이들이나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 방문객이 대다수를 차지하죠.
앞서 말씀드린 국민보양온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제도는 2009년 시작됐는데 전국 온천 중 물 온도가 35도 이상이거나, 물이 25도 이상이면서 유황·탄산 등 인체에 유익한 성분을 리터 당 1000mg 이상 함유한 경우를 지정 대상으로 해요. 일단 온천수의 질이 좋은 것은 기본이고 거기에 주변 환경이나 시설을 종합적으로 평가합니다. 그러다 보니 호텔 등 숙박 시설에 워터파크 등의 레저 시설까지 갖춘 곳이 주로 선정됐습니다.
그러나 온천 소믈리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의 질! 그래서 ‘물이 좋은 한국 온천은 어디인가’를 수소문해 충남 아산에 있는 온양 온천과 도고 온천, 그리고 경북 울진에 있는 덕구 온천에 다녀왔습니다. 온양 온천을 고른 이유는 한국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온천이기 때문이고요. 도고 온천은 제가 좋아하는 유황 온천에, 2009년 국내 최초로 국민보양온천에 지정됐다는 이유가 컸죠. 덕구 온천은 온천 마니아 사이에 소문이 자자한 곳이더라고요.
■ 서울 시내에도 온천이 있다!
충북 충주에 있는 수안보 온천.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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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국 온천을 이용한 사람의 수는 누적 4712만명이라고 합니다. 대략 국민 1명이 한번쯤은 온천을 방문했다는 것이죠. 전국 383개의 온천 중 가장 인기가 많은 온천 지구는 충남 덕산 온천이라고 해요. 연간 이용객이 342만명에 달합니다. 다음으로는 경남 부곡 온천이 291만명으로 2위, 충남 온양 온천이 237만명으로 3위입니다.
최근 가장 뜨고 있는 곳은 충북 충주의 수안보 온천이에요. 2022년에 102만명이 찾아와 8위였는데, 지난해에는 192만명이 방문해 인기 4위의 온천지로 떠올랐죠. 주변 온천 애호가들에게 물어보니 수안보 온천 마을은 시설도 다양하지만 아기자기한 온천 상가가 조성돼있어 온천 여행 기분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하더라고요. 최근엔 1박에 100만원이 넘는 고급 온천 호텔도 수안보에 들어섰습니다.
온천수를 이용한 목욕탕이나 숙박업소가 가장 많은 곳은 경북(94곳), 경남(70곳), 부산(63곳) 순이고, 온천 이용자수도 경북이 901만명, 부산이 712만명, 충남 708만명 순으로 많아요. 한국의 온천 48.7%는 30도 미만의 저온형 온천인데, 물이 가장 뜨거운 온천은 경남 부곡 온천으로 원천 온도가 78도에 달합니다.
놀라운 건 서울에도 온천이 8곳이나 있다는 사실! 관악구에 있는 ‘봉일 스파랜드’, 광진구의 ‘우리유황온천’ 등이 대표적인 도심 온천으로 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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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선 타고 가 봤다, 온양 온천
온양 온천은 알려진 대로 ‘수도권에서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있는 온천’입니다. 그래서 도전해보았어요. 서울 지하철 1호선 신도림역에서 병점행 전철을 타면 ‘온양온천역’까지 2시간 6분 걸립니다. 주말이라 처음엔 전철이 꽉 차 있었는데 수원을 지나니 한산해지더라고요. 창밖 풍경도 감상하고 음악도 들었는데 가도 가도 도착을 안 해...들고 간 얇은 소설 한 권을 가는 길에 다 읽었습니다.
온양온천관광호텔 대온천탕 내부. 사설은 다소 낡았습니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
온양 온천은 현존하는 문헌 기록 상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이에요. 삼국 시대부터 이용됐다고 하니 역사가 거의 2000년에 이릅니다. 뜨거운 물이 나온다고 해서 백제 시대엔 탕정군, 고려 시대에는 온수군, 조선시대에는 온창으로 불리다가 1442년 세종대왕이 다녀간 후 온양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해요. 세종에 이어 현종, 숙종, 영조, 정조 등 여러 임금이 온양에 있는 행궁을 찾아 휴양이나 병 치료를 위해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온양 외에 한국에서 역사가 긴 온천을 꼽으라면 수안보 온천, 부산 동래 온천, 경북 울진 백암 온천, 대전 유성 온천 등이 꼽혀요.
하지만 지금의 온양 온천에선 왕의 휴양지에 걸맞는 화려함은 찾아볼 수 없어요. 온양온천역에 내리니 ‘여기 맞나’ 싶게 흔한 지방 소도시 역과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역 바로 앞에 있는 온양온천전통시장을 중심으로 호텔과 목욕탕들이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온천 마을의 흥취 같은 것엔 별로 관심 없는, 어떤 무심함이 오히려 인상적이더라고요.
온양관광호텔 대온천탕 건물, 페인트를 다시 칠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영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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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괜찮습니다. ‘물만 좋으면 OK’라는 게 저의 원칙. 온양 온천에서는 원탕인 ‘신천탕’이라는 목욕탕과 온양관광호텔의 대온천탕이 제일 물이 좋다고 알려져 있어요. 역에서 가까운 신천탕에 가보니 주말이라 그런지 입구부터 사람들이 바글바글, 그래서 더 넓은 탕이 있다는 온양관광호텔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온양온천수는 높은 알칼리성(PH 9.15)에 온도 37~54도의 고온천으로 분류됩니다. 특히 극소량의 라듐이 함유된 온천으로 피로 회복에 좋다고 알려져 있어요. 온양관광호텔의 대온천탕은 딱 큰 동네 목욕탕 분위기, 듣던 대로 나이 지긋한 손님이 대부분이더라고요. 시설은 낡았지만 넓은 탕에서 솟아오르는 온천수는 꽤 맘에 들었습니다. 무색투명한데 몸에 착 감기듯 부드러워요. 충격적이었던 것은 욕탕에 두 개나 붙어있던 ‘취침 금지’ 안내판. 목욕하다 잠드는 어르신들이 많은가? 했는데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그니 잠이 솔솔 밀려오는 이 느낌, 바로 납득하고 말았습니다.
온양 온천에는 과거 온천 유적지 등이 여럿 남아있어 온천욕 후에 돌아보면 좋다고 합니다. 하지만 온천 그 자체 만으로 평가하자면 ‘당일치기로 한번쯤 들러볼 만한 곳’ 정도였어요. 너무 세련되고 깔끔한 것보다 세월의 느낌이 남아있는 걸 좋아하는 ‘레트로’ 취향엔 적절한 온천일지도요. 하지만 페인트가 다 벗겨진 벽에 먼지가 쌓여있는 대온천탕 건물은 ‘한번쯤 다시 칠해도 좋지 않은가’ 싶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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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거리 가득한 유황 온천, 도고 온천
'파라다이스스파 도고' 야외 풀에서 온천을 즐기는 사람들. 사진 한국관광공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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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 온천에서 버스로 30분 정도 가면 도고 온천에 도착합니다. 몇 개의 온천 숙소가 있긴 하지만 요즘 ‘도고 온천’이라고 하면 대표 온천 시설인 ‘파라다이스스파 도고’를 의미한다고 해요.
일단 온양 온천과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물놀이 장비를 챙겨 온 젊은 연인들과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들로 가득했거든요. 파도풀이나 워터 슬라이드 등에는 관심이 없는 저는 1만 2000원을 내고 바로 온천탕으로 직행합니다. 15년전 국내 처음으로 보양 온천에 지정된 이 곳은 물의 질이 남다르다고 알려져 있거든요.
온천탕은 넓고 온도별로 다양한 탕이 준비돼 있어요. 실내 외의 모든 용수는 물을 섞지 않은 100% 천연 온천수라고 합니다. 유황(H2S) 함유랑이 높은 온천이라 유황 온천 특유의 계란향을 기대했는데 냄새가 나지 않더라고요. 맑고 투명한 온천수에 천천히 몸을 담가보았습니다. 온양 온천의 물과 비교하면 몸에 감겨 드는 느낌은 덜한, 깔끔하고 담백한 물이었어요.
'파라다이스스파 도고' 온천탕 내부, 사진 파라다이스스파 도고 인스타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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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욕탕보다 워터파크가 더 유명합니다. 특히 온천수가 쉼없이 흘러가는 유수풀과 구명조끼를 입고 들어가는 파도풀이 인기가 많다고 해요. 야외 풀의 온천수는 35도라 조금 쌀쌀한 이 계절에 즐기기 딱 좋습니다. 살짝 내다본 워터파크는 주말 물놀이를 즐기는 가족들로 붐볐습니다. 생동감 넘치는 놀이 공간이지만 한적하게 온천욕을 하기엔 무리가 있더라고요. 옷을 갈아입는 대기실도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이 오가는 번잡한 분위기였고요. 다른 워터파크형 온천도 대략 비슷한 느낌일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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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속 솟아나는 물, 덕구 온천
마지막으로 덕구 온천에 가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가기 힘들어 그렇지 물은 덕구가 제일 좋다’는 의견을 냈거든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나섰지만 대중교통으로는 만만치 않더라고요. 동서울터미널에서 부구터미널까지 버스로 3시간 30분만에 도착, 다시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30분을 들어가야 합니다.
(계속)
구비구비 산길을 타고 올라간 덕구 온천은 어땠을까요. 그곳에 도착한 순간 강렬한 풍경이 맞이했다고 합니다.
찬바람이 부는 지금, 온천의 계절을 제대로 느낄 곳을 알려드립니다.
전국 국민보양온천 9곳 정보는 아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1854
18만원 료칸, 72만원 이겼다…일본 가성비 갑 온천은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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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 혼자 떠나라, 일본…미슐랭도 픽한 산골 온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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