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관위 김용빈 사무총장 - 12·3 계엄의 핵심타깃
12·3 계엄에서 가장 눈길을 끈 건 계엄군이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에 투입된 것이다. 열흘 뒤인 12일 윤석열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선관위) 전산시스템이 엉터리인데, 어떻게 국민들이 선거를 신뢰할 수 있겠느냐”고 언급하면서 국민은 비로소 그 의미를 알게 됐다. 보수층 일각의 주장인 ‘부정선거’ 의혹을 대통령이 신봉한 결과, 선관위가 계엄 선포 6분 만에 국회보다 많은 297명의 계엄군에 급습당하는 사태가 터진 것이다. 선관위 실무 총지휘자로 상근직 1인자(장관급)인 김용빈 사무총장을 만났다. 그는 윤 대통령과 서울대 법대(79학번)를 함께 다닌 친구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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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담화 보고 투입 이유 알아
부정선거 증거 확보 소문은 낭설
보안 미흡은 보완, 부정선거 불가
‘이재명 현수막’ 불허는 잘못, 유감”
“계엄군 급습” 간부 전화에 발 동동
지난해 7월 선관위 사상 35년 만에 처음 외부 인사 출신 사무총장직에 임명된 김용빈 총장은 “계엄군이 선관위에서 ‘부정선거’ 증거를 확보해 곧 터뜨릴 것이란 소문은 명백한 가짜뉴스”라며 “계엄군이 선관위에서 들고 나간 건 사무 조직도 한 장 뿐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강조했다. 김현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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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계엄 선포 순간 어떠셨나요.
A : “3일 밤이었죠. 자려고 누워 있었는데 밤 11시쯤 아내가 ‘큰일 났다’고 깨워 TV를 트니까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합니다’고 해요. 어안이 벙벙했지만, 이 계엄에 선관위가 휘말릴 것이라곤 생각도 못 했죠. 노태악 선관위원장한테 전화하니까 그분도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말만 하세요. 그런데 자정쯤 선관위 청사로 달려간 간부들이 전화로 ‘계엄군이 문을 막아 못 들어가고 있다’고 알려왔어요. 다시 노 위원장에게 전화해 보고하니 ‘계엄군이 어떻게 선관위에 올 수 있나’며 혀를 차세요. 간부들에게 출근하는 대로 회의를 열자고 통보하고 TV를 지켜보는데, 새벽 2시쯤 국회에서 계엄 해제가 의결됐다는 소식이 뜨길래 겨우 잠자리에 들었죠.”
Q : 4일 선관위가 계엄군 투입 비판 성명을 냈는데요.
A : “그날 선관위원들이 단톡방에서 토론 끝에 ‘이번 사태에 입장을 내야 하지 않겠나’는 뜻을 전하길래 공감의 뜻을 표하고 성명서 초안을 만들어드렸죠. (분위기는요?) 격앙됐죠. 위원들 가운데 법조인이 많아 계엄군 진주의 법적 부당성을 잘 알고 있었어요.”
Q : 계엄군의 선관위 투입은 부정선거 증거 확보를 위한 것이란 루머가 끊이지 않는데요.
A : “명태균 씨가 실시한 여론조사 자료를 빼내려고 투입했다는 설이 있는데, 명씨 업체는 (선관위) 미등록 업체라 자료 자체가 없습니다. 가장 많이 도는 루머는 선거인 명부 서버 정보를 계엄군이 갖고 갔다는 건데, 전혀 사실이 아니에요. 계엄군이 서버실에 들어가 통합 선거인 명부 관련 서버를 휴대폰으로 찍어간 게 전부예요. 휴대폰으로 찍기만 해도 서버에 침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는데, 선관위 서버실은 외부와 완전히 차단돼 사진 촬영만으로 침투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서버에 칩을 심었다는 주장도 있어서 CCTV 돌려봤지만 그런 모습은 찾을 수 없었죠. 또 중앙선관위 서버· PC 600개를 전수 조사했고 3일부터 4일까지 로그 기록도 다 보았으나 전혀 이상이 없음을 선관위가 위촉한 보안 자문단 위원들이 확인했어요.”
Q : 계엄군이 가져간 건 전무하다는 건가요?
A : “선관위 사무 조직도 한장 가져갔더군요. 그날 밤 3층 사무실에 야간 근무자가 있었는데 계엄군이 ‘짐 싸 나가세요’ 하면서 탁자 유리판 밑 조직도를 들고 간 모양이에요. 계엄군이 그 조직도를 들고 다른 직원에게 ‘이 사람 여기 근무합니까’라고 묻는 장면이 CCTV에 잡혔어요. 결국 ‘계엄군이 선관위에서 부정선거 증거 확보해 갖고 갔다’는 건 100% 가짜뉴스입니다.”
Q : 계엄군이 통합 선거인 명부 서버의 사진을 찍어간 건 무슨 의미인가요.
A : “부정선거론의 핵심 전제가 선거인 명부 서버 해킹설이에요. 유권자 전원의 정보가 담긴 이 서버를 해킹하면 투표한 이를 안 한 이로 둔갑시키거나, 일정 비율로 투표가 이뤄질 때마다 개표 수치를 조작해 부정선거를 저지를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서버의 외관을 찍어봤자 안에 내장된 핵심 정보는 절대 알 수 없고 침투도 불가능합니다.”
Q : 그럼 계엄군이 왜 서버를 촬영했을까요.
A : “사진을 찍어간 계엄군들은 문제의 서버 설치 장소와 현황만 확인하고 현장을 보존하는 게 임무였던 듯합니다. 그 뒤 IT 전문 부대가 진입해 서버를 들고 나가든지 하려던 건데, 계엄이 조기 해제되니까 그럴 수 없게 된 것으로 추정돼요. 그래도 우리 입장에선 서버 사진을 찍어갔으니 보안이 우려돼 서버 위치 재배치를 검토했는데, 이게 선관위가 ‘서버를 통째 바꾼다’고 와전됐어요. 재배치에만 20억원이 드는데 서버를 통째 바꾸면 엄청난 예산이 드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Q : 노태악 선관위원장도 계엄군의 체포 대상이었다는데요.
A : “참담합니다. 설혹 계엄이 정당했더라도 선관위에 계엄군이 진입하면 불법이에요. 저희는 계엄군이 굳이 선관위를 급습한 이유가 뭔지 이해가 안 됐는데, 12일 대통령 담화를 듣고 비로소 그 이유를 알았죠. 대통령이 부정선거론자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충격이셨겠네요.)그렇죠.”
Q : ‘부정선거’ 의혹을 풀 길은 계엄 말고도 있었을 듯합니다.
A : “물론이죠. 충분히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의문을 해소할 길이 있었다고 봐요. 선관위는 부정선거에 대한 입장을 대통령한테 보고한 적은 없어요. 그럴 의무가 없으니까요. 그러나 대통령이 ‘선거에 의문이 있다’며 보고를 청했으면 국정 협조 차원에서 얼마든지 보고했을 겁니다. 선관위의 협업 파트너인 행정안전부나 정당(여당)을 통해서도 대통령은 의문을 얼마든 해소할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도 부정선거론자들 주장만 믿은 듯하니 안타깝습니다.”
“대통령, 서버 해킹설 믿은 듯해 쇼크”
Q : 대통령이 ‘부정선거’라고 믿는 핵심 근거는 뭐라고 보시나요.
A : “담화를 보면 선거인 명부 서버 해킹설이 잘못된 믿음의 핵심 근거인 듯합니다. 그러나 설사 서버가 해킹된다 해도 선거의 당락은 사람이 카운트한 실물 투표지 개표 상황표가 결정합니다. 디지털상 숫자를 조작해도 실물 개표 상황표와 다르면 바로 들통납니다. 실물 개표를 조작할 수도 있지 않으냐고 하지만 그러려면 전국적으로 다수의 사람이 가담해야 하는데 그런 일이 계속 비밀로 지켜질 수는 없어요. 부정선거는 불가능합니다.”
Q : 대통령은 국정원의 지난해 선관위 보안점검을 바탕으로 부정선거 가능성을 주장했는데요.
A : “국정원은 당시 북한이 선관위 직원 메일을 해킹해 일부 자료가 유출되는 등 보안 시스템이 다른 기관보다 취약하다고 지적했을 뿐 부정선거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고 밝혔어요. 선관위는 사전 투표함을 24시간 내내 CCTV로 공개하는 등 보안상 미흡하다고 지적된 조치를 개선하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Q : 국정원은 ‘선관위 점검 범위가 전체 IT 장비 6400여 대 중 317대(5%)에 국한돼 부정선거 여부에 관해선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고 했는데요.
A : “저희는 국정원 측에 ‘보고 싶은 대로 다 보라’고 장비를 100% 오픈해줬어요. 선관위는 직원이 3000명 선인데, 보안 필요성 때문에 PC를 내부·외부용 두 대씩 갖고 있습니다. 그중 핵심은 유권자 명부 등 기밀이 집적된 중앙선관위 서버와 PC 300여개예요. 이건 국정원이 다 봤어요. 나머지는 지방 선관위 것들이라 의미가 별로 없습니다. 말이 5%이지, 실질적인 검증은 다 한 거예요.”
Q : 지난해 7월 선관위 사상 35년 만에 외부 인사(법관) 출신으로 사무총장에 임명됐는데, 윤 대통령과 서울대 법대 동기라 눈길을 끌었습니다.
A : “독립 헌법기관인 선관위 사무총장은 대통령이 아니라 선관위 자체 결정으로 임명됩니다. 저도 노태악 선관위원장과 김필곤 상임위원 천거로 임명됐죠. 윤 대통령과는 대학 동기지만 그는 검사, 저는 판사로 걸어온 길이 달라 졸업 후엔 만난 일이 없어요. 다만 대학 동기가 대통령이 됐으니 자긍심을 느꼈고 누구보다 훌륭한 대통령이 되기를 기원했는데…. 안타까울 뿐입니다. 여전히 친구니까….”
Q : 사무총장 재직 중 윤 대통령을 만났나요.
A : “지난해 8월 윤 대통령 부친상과 올 초 정부기관 신년회 때 인사하고 악수한 게 전부입니다. (대통령이 뭐라고 하던가요?) 부친상 때는 ‘와주셔서 고맙다’라고 한 듯하고, 신년회 때는 ‘얘기 많이 들었어’라고 반가움을 표한 것으로 기억해요.”
“자주 못 봤으나 친구로서 안타까워”
Q : 선관위가 ‘이재명은 안됩니다’ 문구 현수막을 불허해 논란을 빚은 끝에 뒤집었는데요.
A : “현장 선관위 직원은 윤 대통령 탄핵이 인용돼 (조기) 대선이 확정되면 ‘낙선시키자’는 뜻이 될 수 있어 선거법 254조 ‘사전 선거 운동 금지’에 걸린다고 판단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선관위는 정치적 중립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시비가 걸릴 사안은 신중히 결정해야 하는 만큼 불허를 보류한 거죠. (탄핵이 인용될 것이라 예단하고 불허 조치한 것 아닙니까. 그건 잘못된 거죠?) 잘못된 거죠.”
Q : 선관위가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면 처벌하는 법을 추진한 것도 논란인데요.
A : “그 법은 보류가 됐습니다. 부정선거 주장을 처벌하겠다는 건 선관위의 입장이 아닙니다. 저희가 구상한 법은 사회적 혼란을 가져오는 가짜뉴스를 처벌하려는 취지인데 오해가 있었던 듯합니다.”
강찬호 논설위원 |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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