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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루마니아 헌재 '러시아 개입 의혹' 대선 결과 취소… "정국 혼돈 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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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러 성향 후보 '깜짝 1위' 배경에
"러시아 지원 있을 가능성" 언급
'결선 진출' 2위 친서방 후보 반발
한국일보

무소속 컬린 제오르제스쿠 루마니아 대선후보가 지난달 26일 수도 부쿠레슈티 인근 지역 일포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일포브=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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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헌법재판소가 무명이었던 친(親)러시아 성향 후보가 '깜짝 1위'를 차지했던 1차 대선 투표 결과는 무효라고 판결했다. 무소속 컬린 제오르제스쿠 후보의 돌풍 배후에 러시아 정부의 불법적 선거 지원이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법원이 대선 결과를 취소하는 초유의 사태에 루마니아 정국은 격동에 빠져들 전망이다.

"전체 선거 일정 다시 시작하라"


6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루마니아 헌재는 지난달 24일 실시된 루마니아 1차 대선 투표효력을 폐기한다고 이날 밝혔다. 판결에 따라 오는 8일로 예정됐던 제오르제스쿠 후보와 중도 우파 야당인 '루마니아구국연합'(USR)의 엘레나 라스코니 대표 간 결선 투표도 폐지된다. 원칙적으로 루마니아 정부는 이달 22일 대선 1차 투표를 재실시해야 하지만, 헌재는 "선거 유세를 포함한 전체 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고 권고했다.

이 판결은 제오르제스쿠 후보가 선거 과정에서 러시아 정부의 광범위한 지원을 받았다는 의혹에서 출발했다. 무명이었던 제오르제스쿠 후보는 그간 "선거운동 자금은 한 푼도 쓰지 않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 '입소문'을 통해 지지율을 확보했다"고 주장했으나 석연치 않은 정황이 잇따라 포착된 결과다. 특히 루마니아 정보당국이 전날 "러시아 정부와 연계된 것으로 추정되는 집단이 SNS 계정 수천 개를 동원해 제오르제스쿠 지지 운동을 벌였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논란에 결정타를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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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중도 우파 야당인 '루마니아구국연합'(USR)의 엘레나 라스코니 대표가 지난 4일 수도 부쿠레슈티 국회의사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부쿠레슈티=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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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코니 "유권자 무시" 반발


다만 이번 판결로 루마니아는 당분간 극도의 혼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1차 투표 당시 득표율 19.17%를 얻어 2위에 오른 라스코니 대표가 "유권자 의지를 무시했다"며 헌재 결정에 격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스코니 대표는 예정대로 결선 투표가 실시됐어도 제오르제스쿠 후보를 무난하게 꺾을 수 있었다고 보고 있다. 1차 투표 당시 제오르제스쿠 후보 득표율은 22.9%에 불과했던 반면, 자신은 결선 투표에서 3·4위를 한 다른 친서방 성향 후보 지지표까지 끌어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결선에 진출하지 못한 친서방 후보들은 헌재 결정을 환영하고 있다. 특히 여당 사회민주당(PSD) 후보로 1차 투표에서 라스코니 대표에게 0.02%포인트 차로 패배한 마르첼 치올라쿠 총리는 "헌재가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고 즉각 지지 성명을 냈다. 현지 정치평론가 크리스티안 안드레이는 "루마니아 민주주의가 위기 상황에 빠졌다"고 AP에 말했다. 제오르제스쿠 후보 측은 아직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대선 정국과 별개로 러시아 선거 개입 의혹을 겨냥한 조사도 이어질 전망이다. 특히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이날 '쇼트폼'(짧은 영상) SNS 틱톡에 제오르제스쿠 후보 지지 계정에 대한 추가 정보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EU 집행위는 지난달 24일 1차로 틱톡에 자료 제출을 요청하며 러시아 선거 개입 의혹을 정조준했다.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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