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통과 2025년도 예산안, 주요 삭감 내용/그래픽=이지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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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처음으로 국회의 감액 심사 내용만 반영된 내년도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새해 추가경정예산안(추경) 편성 가능성이 대두된다. 정부는 당장의 추경 편성 가능성엔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조기 대선 비용과 이번에 반영되지 않은 추가 민생·경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추경 편성 논의가 새해부터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일각에선 야당의 감액 예산안 강행처리가 국내 경제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단 시그널(신호)을 줘 대외 신인도에 악영향을 줄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국회는 10일 본회의를 열고 2025년도 예산안을 의결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2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단독으로 처리한 감액 예산안으로 당초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안(677조4000억원)에서 4조1000억원 감액한 안이다.
세부적으로 △정부 예비비(-2조4000억원) △국고채 이자 상환(-5000억원) △대왕고래 프로젝트 관련 예산(-497억원) △검찰·경찰·감사원 등 특정업무경비 및 특수활동비(-678억원) 등이 정부안보다 감액됐다.
민주당은 정부와 여당에 증액 예산을 가져올 것을 요구했다. 감액과 달리 증액은 정부 동의가 필수이기 때문에 민주당 마음대로 증액 예산을 짤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오전 우원식 국회의장실을 찾아 여야 정책위의장 등에 새로운 안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민주당이 요구하는 지역화폐 예산도 포함됐다.
정부는 당초 내년도 예산안에 지역화폐 예산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는데 올해(3000억원)보다 1000억원 더 많은 4000억원을 증액할 것을 제안했다. 국민의힘도 3000억~4000억원 범위 내에서의 지역화폐 예산 반영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나아가 국민의힘은 △재해대책 등 예비비 1조5000억원 △민생 침해 수사 관련 경비 500억원 △대왕고래 등 유전개발 예산 500억원 등 총 1조6000억원의 예산액을 복원할 것을 요구했다. 아울러 지역화폐 예산 증액과 함께 민생, 안전 농어민 등 사회적약자, AI(인공지능) 등 경제 활성화 예산 1조5000억원 증액도 제안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1조원 규모의 지역화폐 예산 편성을 고수하며 끝내 합의는 결렬됐다.
민주당은 감액 예산안이라도 빠르게 처리해 현재의 경제 불안과 불확실성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운영 및 민생을 위해 필요한 예산이 있다면 추후 정부 요청 등에 따라 추경으로 보완하면 된다는 것이다.
10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제418회 국회(정기회) 제18차 본회의가 열렸다./사진제공=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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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반발했다. 감액 예산안 통과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등 대외 불확실성으로 엄중한 상황에 처해 있는 우리 경제 리스크를 더 가중시킬 것이란 우려다. 또 글로벌 산업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 및 산업 경쟁력을 높일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을뿐 아니라 민생 경제 회복에도 제약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실제 감액 예산안 통과로 국가 경제를 뒷받침할 주요 사업의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혁신성장펀드·원전산업성장펀드 등 산업 지원을 위해 정부가 산업은행에 출자하기로 한 예산 288억원이 삭감됐을뿐 아니라 팬데믹에 대비한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백신 개발, 민관 합작 선진 원자로 수출 기반 구축 등 각종 R&D(연구개발) 예산도 깎였기 때문이다. 청년과 취약계층 아동의 자산 형성을 돕는 청년도약계좌·아동발달지원계좌 지원 예산도 각각 280억원, 21억4800만원 줄었다.
정부는 증액 예산을 담기 위한 추경 편성을 현재 시점에선 고려하지 않고 있단 입장이다. 추경 편성 요건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논란이 예상돼서다. 국가재정법은 추경 편성 요건을 △전쟁이나 대규모 자연 재해가 발생한 경우 △경기 침체, 대량 실업, 남북관계 변화, 경제 협력 등 대내외 여건에 중대 변화가 발생했거나 그 우려가 있을 때로 규정하고 있다.
최 부총리는 예산안 표결 직후 기자들과 만나 "마지막 순간까지 국회와 협의 절차를 계속했지만 여야가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감액 예산안이 국회에서 통과돼 안타깝다"며 "다만 예산이 확정됐기 때문에 정부는 통과된 예산을 기반으로 민생안정과 대외 불확실성 확대에 대응할 수 있도록 예산 집행 준비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일각에선 이번 감액 예산안 처리 과정이 대외신인도에 악영향을 줄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12·3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탄핵정국에 정치적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음에도 정부 정책의 출발점인 예산안 처리를 여야 합의로 처리함으로써 우리 경제시스템이 정상 작동하고 있음을 대외에 알려야 했단 지적이다.
실제 무디스(Moody's)와 피치(Fitch) 등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최근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을 둘러싼 불안정한 정치 상황이 한국 경제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무디스는 한국의 정치적 긴장으로 경제에 지장을 초래하는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국가 신용도와 해외 투자자들의 원화 자산 선호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피치도 한국의 정치 리스크가 장기화하면 내수 리스크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이유로 이창용 한은 총재도 이날 야당 기획재정위원회 위원들과 면담에서 대외신인도 등을 고려해 여야 합의를 통한 예산안 통과가 바람직하단 당부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박광범 기자 socoo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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