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서 촛불집회 참가자 위해 '비행깃값' 1천잔 '선결제'
"아침이슬 부르며 눈물짓던 어머니 생각"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그리다 씨 |
(서울=연합뉴스) 최원정 기자 정지연 인턴기자 = "비상계엄 소식을 듣고 마음 같아선 당장 비행기 표를 끊고 한국에 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집회장에 못 오시는 분들이 선행을 펼치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 어떻게 해야 더 많은 분께 도움이 될까 생각했죠."
프랑스에 사는 큐레이터 '그리다'(활동명·39)씨는 12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다씨는 오는 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리는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을 위해 근처 카페에 커피 1천잔을 미리 '선결제'했다.
그리다씨의 어머니는 1980년 5월 광주에 투입된 정보병이었다. 대학 진학에 반대하는 가족에게 도망치듯 택한 군대에서 어머니는 "광주에 모인 빨갱이들을 척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직후 급히 제대한 어머니는 결혼해 세 딸과 손주들까지 봤지만 44년 동안 그날의 이야기를 묻어뒀다. 그저 시위 현장에 울려 퍼지던 '아침이슬'을 이따금 눈물을 흘리며 부를 뿐이었다.
6년 전 프랑스로 이민을 온 그리다씨는 올해 여름 한국을 찾았다가 이 같은 어머니의 사연을 처음 듣게 됐다.
프랑스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리다씨는 영화 '택시 운전사'와 '서울의 봄'을 보며 하염없이 울었다.
"어머니는 거리로 나가지는 않았지만 바깥에서 들려오는 함성과 총성, 끌려오는 무고한 시민들의 얼굴 등이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오셨던 거 같아요.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시민들 곁에 있지 못했다는 죄책감도 크셨겠죠."
몇 달 뒤 그리다씨는 국회에 무장한 계엄군이 진입했으나 시민들이 이를 막아냈다는 한국의 소식을 접하고 다시 1980년 광주와 어머니를 떠올렸다.
그리다씨는 "비상계엄 사태 이후 사나흘 동안 잠을 못 잤다"며 "시민들에게 마음을 보태는 것이 어머니의 몫까지 치유하는 길이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리다씨는 최근 프랑스에서 한국을 오가는 항공권값에 해당하는 300만원어치의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국회의사당 인근 카페에 선결제했다.
그리다씨에게 선결제는 한국 민주화의 분기점마다 나타났던 공동체 정신을 이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1980년 주먹밥을 지어 시민군에게 나눈 광주시민, 1987년 최루탄 연기에 눈물을 쏟는 학생들에게 두루마리 휴지를 떨어뜨린 넥타이부대가 보여준 나눔과 연대를 계승한 것이다.
그리다씨는 "외국에서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한국의 시위문화에 대한 감동과 응원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며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 다른 빛을 뿜어내는 응원봉을 들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평가했다.
그리다씨는 전날 밤 소셜미디어(SNS)에 글을 올려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투명한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형형색색의 노래하는 빛들이 모여 새로운 자유와 평등의 세상이 이루기를 간절히 바란다. 프랑스에서도 수천개의 빛을 뿜어내는 에펠탑 앞에서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며 마음을 보태겠다."
그리다 씨가 SNS에 올린 커피 선결제 공지 |
away77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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