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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 (금)

[이태규 칼럼]  군의 항명이 법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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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명과 내란 사이에 놓인 군의 딜레마
각성된 군인들 계엄해제 결정적 역할
박정훈 대령이 무죄인 또 하나의 이유
한국일보

곽종근 특수전사령관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열린 계엄 관련 긴급 현안질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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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을 따라가기 벅찬 계엄사태 와중이나 시급히 돌아볼 게 우리 군 문제다. 지금 군 지휘부는 누구 명령을 받아야 할지 딜레마에 놓여 있다. 법률적 군 통수권자는 ‘대통령 윤석열’이고 지휘계통도 바뀐 게 없다. 하지만 내란수괴 혐의를 받는 대통령을 따르자니 내란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항명이 된다. 반대로 법을 지키면 항명이고, 아니면 내란의 공범이 되는 처지다. 항명과 내란 사이에 놓인 지휘관들로선 대응하기 어려운 만약의 상황은 최악의 사태일 수 있다. 기자회견을 열어 책임을 고백한 707특임 대대장의 눈물은 이처럼 내란죄 상태와 심리적 항명에 놓인 우리 군의 사정을 보여주고 있다. 딜레마 탈피를 위해서도 탄핵을 통한 대통령 직무정지는 필요한 일이다.

혼란스러운 군은 지금 세 부류로 나뉘어 있다. 첫째는 명령에 무조건 따르는 군인으로 “명령에 따른 게 뭐가 문제냐”고 했던 방첩사령관과 같은 부류다. 둘째는 명령 수행과 항명 사이에서 고민한 특전사령관 같은 지휘관, 명령 이행을 반성하는 인사들이다. 그리고 셋째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저항하다 밀려난 군인이다. 합참차장, 육사교장, 방첩사 참모장이 이번 계엄에 앞서 수시로 바뀌었는데 이른바 ‘저항군’의 진실은 밝혀내야 한다.

드러난 사실만 보면 불법 명령을 그대로 따른 지휘관이 상당수다. 물론 군은 인사도 ‘인사명령’으로 부를 만큼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다. 하지만 잘못된 명령을 받드는 것까지 법이 보호하진 않는다. 합법성을 따지지 않고 명령에 따른 방첩사령관의 경우 심판의 길로 들어갔다고 할 수 있다. 내란 공범들을 단죄 무대에 세우지 못한 ‘서울의 봄’에선 오히려 반란에 응하지 않고 저항한 이들이 참혹한 보복을 받았다.

이번 사태에서 긍정적인 것은 소극적 항명으로 계엄 해제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군인들의 출현이다. 사실상 항명이라고 할 사례들은 헬기의 회항, 방첩사의 태업 등 속속 공개되고 있다. 이른바 각성된 군인들의 행동은 국회의 신속한 조치와 함께 비상계엄이 6시간 만에 해제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야당의 경우 국방부 전군지휘관회의보다도 빠르게 의원 국회 집결을 고지해 해제 결의를 이끌었다. 이 군인들도 12·12 및 5·18 단죄와 과거 군에 대한 적폐수사의 교훈 속에 대통령의 부당한 지시에 '항명'으로 법을 지켜냈다. 특히 특전사령관은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의 국회의원 강제퇴거 지시를 받고도 위법이라 이행하지 않고 현장 작전 병력을 철수시켰다.

이 같은 판단들은 박정훈 해병대 대령의 항명 사태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채 상병 순직사건의 경찰 이첩과정에서 사령관의 보류명령을 어긴 혐의로 박 대령은 징역 3년이 구형된 상태다. 그러나 위법한 명령에 대한 정당한 거부로 인식되면서 특전사령관 사례와 맥락만 다를 뿐 정당한 항명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박 대령 사건은 군의 사기를 높이고, 군인들이 항명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마음을 치유받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위법한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것을 항명죄로 단죄하면 이번에 대통령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군 지휘관들은 어떻게 처리할 건가. 정당하지 않은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고 단죄한다면 이런 군인들은 사라지게 된다. 박 대령이 무죄가 되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일 것이다. 더구나 박 대령을 저토록 엄벌하려 한 권력의 숨은 의도가 무엇인지는 이번 사태로 충분히 입증됐다. 내란 가담 명령을 어긴 항명 군인들이 박수를 받을 수 있도록 군사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그렇게 해서 군이 명예를 회복하고 따듯하게 설득해 진실을 말하도록 해야 한다.

이태규 콘텐츠본부장 tg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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