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30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5.18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회 용기와 응답’ 증언자들과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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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이 저지른 성폭력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낸다.
5·18 성폭력 피해자들의 모임 ‘열매’는 국가를 상대로 위자료 지급을 구하는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고 12일 밝혔다. 원고는 모두 17명으로, 성폭력 피해자 14명과 피해 후유증으로 제대로 된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피해자의 돌봄을 전담해야 했던 가족 3명이 소송에 참여했다. 위자료 청구 금액은 강제추행·강간·특수강간 등 가해 행위와 피해 정도, 기존 보상 내역 등을 종합해 정했다.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의 국가배상 소송은 꾸준히 이어져 왔으나, 성폭력 피해자들의 집단소송은 이번이 처음이다. 5·18 성폭력 피해는 2018년 김선옥씨의 한겨레 인터뷰를 통한 ‘38년 만의 미투’로 처음 공론화됐기 때문이다. 이번 소송에 참여하는 피해자들은 지난해 말에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를 거쳐 공권력의 임무 수행 과정에서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한 사실을 인정받았다.
이들은 같은 해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광주광역시에 보상 신청을 했지만, 적정한 피해 회복이 이뤄질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기존 보상 기준이 성폭력 피해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한 신체 장해 중심이어서다. 국가 대상 소송까지 제기한 이유다. 원고 법률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율립 하주희 변호사는 “국가폭력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생존해 있을 때 기본적 정의로서 실질적인 배상이 이뤄지는 것은 필수”라고 말했다.
하 변호사는 “5·18 성폭력 피해는 전두환 등 내란 행위자들이 헌정 질서를 파괴한 광주 도심 시위 진압 작전 전개, 외곽 봉쇄 작전, 연행·구금·조사 과정에서 발생한 계엄군 등에 의한 불법행위이므로 국가 책임이 있다”고 했다. 국가배상법상 5·18 성폭력 피해의 국가 책임이 성립한다는 주장이다. 조사위 보고서를 보면 계엄군 등은 총과 대검 등으로 피해자를 폭행·협박하거나, 상해를 입히며 성폭력을 했고, 군인 2명 이상이 가해자인 경우도 많았다.
40여년 만에야 성폭력 피해를 증언할 수 있었던 피해자들에게 이번 소 제기는 또 다른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피해자 일부는 “승소가 확실치도 않은데 다시 피해 경험을 떠올리며 고통받아야 하는 소송을 포기하고 싶다”는 심경도 토로했다. 하지만 열매 회원 다수는 “배상이나 치유도 중요하지만, 아직도 성폭력 피해를 말하지 못한 피해자들이 우리보다 덜 어려운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앞장서자”는 데 뜻을 모았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개인의 배·보상 청구와 그에 대한 입법·사법·행정적 조치를 통해 축적된 내용은 깊이 있는 진실규명의 공적 자료가 된다. 그럼으로써 또 다른 피해자들을 격려하고, 피해자들이 국가 앞에 자신의 피해 사실을 토로하는 디딤돌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러한 공적 기록이 축적되면, 왜곡된 역사도 바로잡히게 되고, 향후 잘못을 범하려는 자들을 주저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열매는 이날 낸 보도자료에서 “피해자들의 통합적인 치유와 회복의 여정은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라며 “치유와 회복을 배·보상 결과로 환원하기보다, 사회적 진실과 개인의 치유 문제를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관점에서 앞으로의 자조모임과 활동을 모색해 나가기로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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