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슈아 베이쿤이 지난 2일 ‘기후재판’(청문회)가 예정된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ICJ) 앞에서 바누아투 정부와 섬나라 연합기구 ‘멜라네시아 스피어헤드 그룹’(MSG)과 연대하여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베이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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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3일(현지시각)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는 역사상 가장 많은 98개 나라와 12개 국제기관이 출석해 의견을 밝히는 ‘기후재판’(청문회)이 열리고 있다. 유엔 최고 사법기관인 국제사법재판소가 기후 문제를 다루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기후재판은 2019년 6월 ‘기후변화와 싸우는 태평양 섬나라학생들’(PISFCC·이하 ‘섬나라학생들’) 27명이 태평양도서국포럼(PIF·호주 포함 태평양 국가들의 협력 그룹)에 기후변화와 인권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도록 설득하는 캠페인을 벌이며 시작됐다. 지난해 3월29일 유엔 총회는 국제사법재판소에 기후변화와 관련된 국가의 의무에 대한 자문 의견을 제시해달라고 요청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해, 이번 청문회가 열리게 됐다.
‘ 섬나라학생들’은 처음에는 법학 전공 학생들이 중심이었는데 최근에는 기후변화,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들도 합류해 100명 이상 규모로 확대됐다. ‘섬나라학생들’ 소속 7명은 청문회 시작 한 달 전부터 헤이그에 머물며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데, 지난 6일 그중 통가 출신 캠페이너인 시오슈아 베이쿤(25)을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그는 남태평양 대학 법대 2학년 재학 시절인 2019년 9월 ‘섬나라학생들’에 합류해 5년 동안 활동해왔다.
―국제사법재판소에 기후 문제를 제기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법이 시스템을 통해 기후위기로 어려움에 직면한 남태평양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법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 알려줬고, 법에 대한 사랑을 심어줬다. 법대에 진학할 때부터 법을 활용해 남태평양 섬나라들이 처한 기후변화 문제에 대응하려는 의욕이 컸다. 기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간 가장 큰 동기다.”
―기후위기로 모국 통가에서 겪는 가장 큰 재난은?
“사이클론이다. 사이클론이 11월~3월 등 예상 가능한 시기에 오면 그나마 대비를 할 수 있다. 그러나 2021년처럼 통상적인 시기가 아닌 6월에 오면 피해가 크다. 통가에서도 수도인 누쿠알로파가 있는 주요 섬인 통가타푸는 기반시설이 갖춰져 있어서 대응이 낫지만, 섬 외곽 해안가에 사는 사람들은 피해의 최전선 중의 최전선에 있다. 주민들은 사이클론이 오기 전에 곡식 수확, 마실 물 구비, 정전에 대비한 양초 준비, 대피소 점검 등 사전에 대비를 해두는데 예측 못한 시기에 불어닥치면 대비가 어렵고 그 피해도 크다. 가령, 우물이 오염됐을 때 복구가 오래 걸리면, 마실 물이 부족해 주민 건강 악화로 이어지는 식이다. 해수면 상승도 큰 문제다. 단순히 해안가만 잠기는 게 아니라 그 지역에서 문화와 전통을 유지하며 대를 이어오며 살아왔던 장소와 기억들이 다 사라지게 된다. 기후변화는 이처럼 많은 문제들을 일으킨다.”
다양한 분야 전공 학생들 참여
태평양 국가들 협력그룹 움직여
국제사법재판소 첫 기후재판 견인
98개국과 12개 국제기관 의견진술
통가 출신으로 2019년부터 활동
“기후위기로 문화와 전통도 소멸”
―이번 국제사법재판소 청문회에서 가장 절박하게 요구하는 것은 뭔가?
“모든 ‘기후협상’에서도 일관된 요구인데,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적정한 자원, 곧 재정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이런 일은 국제법에 근거해야 하고, 따라서 국제사법재판소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국제사법재판소에서의 이번 절차는 앞으로 전 세계적으로 기후정의를 실현하는 데, 통일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세계 시민사회에서 계속 요구하는 것은 기후변화와 관련된 법뿐 아니라 인권법, 국제법, 관습법 등이 다 기후변화 영역으로 들어와, 기후위기 문제에 관해 법과 제도적 측면에서 인권을 중심으로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이다.”
―한 달 전부터 헤이그에서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데, 청문회 진행과정을 지켜보며 드는 소회는?
“이른바 ‘글로벌 북반구’ 국가들이 기후위기에 책임이 크지만 충분한 책임을 다하고 있지 않는 모습을 보여 실망스럽다. 가령, ‘글로벌 남반구’ 국가들에게 진심을 다해 사과한다든지, 손실과 피해에 대해 보상을 한다든지, 더 이상 피해를 주는 일을 바로 멈춘다든지 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크게 놀랍지는 않다. 기후위기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모습은 여태까지와 마찬가지고, 이는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특히 미국의 경우, 바이든 행정부가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긍정적인 위치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서 전향적인 입장이 나올 걸 기대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놀랍진 않지만 미국에 가장 실망스럽다. 한국 정부도 글로벌 남반구 국가들에게 별 도움을 주지 않는 입장을 고수해 실망스러웠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번 청문회는 세계에서 가장 큰 법정에서 벌어지는 ‘기후소송’이고, 이 자체로 충분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법재판소는 목표점이 아니라 중간 단계일 뿐이다.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와 인권 문제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계속 알리는 계기를 만들고 관심을 환기시키려는 과정 중 하나다. 우리는 지난 5년 동안 이것을 위해 노력해왔고, 앞으로도 기후위기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의 회복력을 위해 답을 찾는 여정을 계속할 것이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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