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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7 (금)

“한국 경제 휘청이고 다들 탈출할 때도 나는 한국에 투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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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이미지 기자의 업(業)]

외국인 최초 금탑산업훈장

라미 운가르 레이쉬핑 회장

60년 만에 처음이다. 무역의날 기념식에서 ‘외국인’이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상공인 최고의 영예라 불리는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최초의 외국인, 이스라엘 국적의 라미 운가르(Rami Ungar·77) 레이쉬핑그룹(Ray shipping Limited) 회장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우리나라 조선과 자동차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외국인 최초로 대한민국 금탑산업훈장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공로를 숫자로 보면 이렇다. 운가르 회장이 지금까지 한국에 발주한 선박은 45척, 해외로 수출한 자동차만 50만대가 넘는다. 이스라엘에 한국 차를 처음 소개해 현재 한국 브랜드가 이스라엘 차 시장점유율 1위로 올라서는 발판을 마련했다. 지금까지 그가 기여한 수출액은 14조원 이상. 경제 성장률의 98% 이상(올해 1~3분기 기준)을 수출로 달성하는 한국 입장에서 수출계의 ‘큰손’이라 불릴 만하다.

한국이 외환 위기(IMF 사태)로 흔들릴 때도, 전 세계가 금융 위기로 흔들릴 때도 ‘메이드 인 코리아’를 외치며 한국 자동차와 선박에 대해 무한한 믿음(과 금전적 이익도 함께)을 보낸 운가르 회장을 수상 전날인 지난 4일, 서울에서 만났다. 간밤에 계엄령이 선포됐다가 해제된 날이었다. 그는 “TV 앞에서 밤을 새우느라 잠을 설쳤다”면서도 “이런 일이 벌어져도 한국에 ‘코리아 디스카운트’ 같은 것은 없다”고 말했다. 자세를 고쳐 앉았다. 한국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일까, 사업가로서 냉철한 판단일까.

◇북 위협, 더 이상 한국의 약점 아냐

-계엄령 선포에 놀랐겠습니다.

“셀 수 없이 한국을 오간 저도 깜짝 놀라 호텔 방에서 밤새 TV를 봤습니다. 직항 비행기가 없어 영국 런던에서 한국행 비행기 환승을 기다리던 아내는 이스라엘로 돌아갔지요.”

-세계가 한국을 불안한 나라라고 볼 것 같은데요.

“일어나지 않았다면 더 좋은 상황이었겠지만 이런 일이 몇 시간 만에 정리된 것 역시 한국의 시스템이 견고하다는 뜻입니다. 도리어 안정적인 국가라 할 수 있지요.”

-그럼에도 북한 핵 위협 등이 상존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인데.

“한국은 이미 ‘톱 컨트리(Top country)’, 선진국입니다. 이스라엘 역시 한국처럼 적들로 둘러싸인 국가입니다. 하지만 지난 30~40년간 한국과 이스라엘 모두 빈곤에서 벗어나 강한 국가로 성장했습니다. 주변 국가의 상황 때문에 두 국가가 열세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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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탑산업훈장을 들어보이는 운가르 회장. /대휘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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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치적 역학 관계는 경제적 교류에도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1970년대 오일 쇼크 이후 한국이 석유와 달러 수급을 위해 아랍 국가들과 유대를 강화하면서 이스라엘과 관계가 한동안 멀어졌다. 두 나라가 대사관을 철수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렇게 외교가 단절됐던 한국과 이스라엘은 1992년 대사관을 다시 개설하면서 외교를 재개했다.

-외교 관계가 재개되자마자 한국에 달려왔다고요?

“1980년대 현대자동차가 미국에 진출했고, 한국 건설사들이 중동 건설 붐에 기여하며 한국인들이 열정적이고 헌신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한국 조선소들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도 들었고요. 이 시장을 내가 선점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저도 열정이 가득했거든요.”

그가 한국에 와서 벌인 첫 사업은 자동차 수출이었다. 1993년, 대우자동차와 첫 계약을 맺고 공항에 가던 그는 급하게 다시 차를 돌렸다. “아무래도 어렵겠다”는 전화가 걸려온 것이었다. 탑승을 포기하고, 서울로 급히 발길을 돌렸다.

-기껏 맺은 계약을 왜 깨자고 하던가요?

“‘이스라엘과 사이가 좋지 않은 아랍 국가들의 반발이 걱정된다’는 이유였어요.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에서 기름을 전량 수입하는 한국이 이스라엘과 교역할 경우 보이콧을 당할까 걱정한 거예요. 서울로 다시 돌아와 대우차 1000대를 가져갈 테니 수출만 해달라고 설득했습니다.”

나중에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당시 계약 파기가 “대우 정신에 걸맞지 않은 일이었다”며 운가르 회장을 집에 초대했다고 한다. 그가 이스라엘에 처음 선보인 한국 차량은 현재 개인용 승용 차량이 343만대 이상인 이스라엘 자동차 시장에서 약 30%(현대·기아차)의 점유율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Mr. 메이드 인 코리아

그는 스물두 살에 사업을 시작했다. 영국의 자동차 부품 회사에서 일하다 이스라엘로 돌아와 닭 사육장의 온도를 제어하는 기계를 만들어 납품했다. 높은 온도에 스트레스를 받은 닭의 산란율이 떨어지지 않도록 냉각수로 사육장의 온도를 적절히 유지시켜 주는 기계였다. 닭으로 시작한 그의 사업은 해운사 레이쉬핑과 완성차 수입 업체 탈카 등으로 몸집을 불려갔다. 이스라엘 상위 30위(2019년 기준) 안에 꼽히는 부호(富豪)인 그는 우리 조선업이 불황을 겪던 2022년 이후, 17억9000만달러에 달하는 14척의 자동차 운반선과 유조선을 한국 조선소에 발주했다. 중국의 단가가 배 1척당 3500만달러(약 500억원)가량 저렴해 한국 업체들마저 중국에 선박을 주문하던 시기였다. 자동차 운반선을 최대로 보유한 선주로서 현대 글로비스 등 국내 해운업계도 그의 배를 용선한다.

-한국 조선업에 대한 불안감이 높던 때였습니다만.

“한국의 기술력과 질에 대한 신뢰가 있습니다. 중국 선박이 경차라면 한국은 고급차죠. (사실 그는 한국 차 브랜드인 모닝과 제네시스로 빗대어 답했다.) 당시 상황에서 한국 조선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한국 조선업체들은 제가 주문한 선박을 독점적으로 건조해 줍니다. 저는 한국 해운업체들에 제 배를 빌려주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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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가르 회장은 한국이 IMF 경제 위기로 휘청여 외국 기업들이 모두 등을 돌릴 때도 한국에 대한 투자를 늘려나갔다. 그는 "선박과 자동차 부문에서 한국은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넘버 원"이라고 말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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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IMF 외환위기와 국제 금융위기 등 한국 경제가 휘청일 때마다 그는 한국 기업들의 버팀목이 되었다. 외국 기업과 자본이 한국을 탈출하기 바쁘던 IMF 당시 현대미포조선 등에 대규모 선박을 주문하고, 국내 자동차 발주를 늘렸다. 외환 보유액이 달리던 당시, 우리 기업들에 구매 대금을 먼저 지급하며 숨통을 틔워 줬다.

-한국 경제가 휘청이는 상황도 여러 번 겪었습니다.

“저는 한국 사람들이 자신의 반지와 귀걸이를 빼 내놓는 것을 직접 봤습니다. 기업들이 수출에 발벗고 나서 예정보다 3년 빨리 관리 체제를 종료했지요. 국가 경제를 위해 온 국민이 단결, 합심하는 게 바로 한국의 힘입니다. 저는 그걸 믿었고, 투자해 성공한 거예요.”

-‘메이드 인 코리아’는 글로벌 시장에서 어떤 의미일까요?

“과거 한국산이 일본에 뒤처졌다면 이제 한국 제품은 어느 나라와 견줘도 열등한 느낌이 없습니다. 한국 제품은 30년 만에 일본·미국과 동등해졌고, 중국이 부상하고 있지만 아직 한국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게 확실합니다. 조선업의 경우는 ‘넘버 원(최고)’이라 할 수 있지요.”

◇오랜 나의 파트너에게

전 세계가 한국에 등을 돌릴 때도 ‘메이드 인 코리아’에 투자해 한국과 함께 성장해 온 그는 올해 외국인 최초로 무역의날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무역의날에 주는 금탑산업훈장은 은탑·동탑산업훈장과 산업포장, 이하 표창보다 수출 실적이 크고, 경제 발전에 기여한 공이 큰 사람에게 수여된다. 올해는 포상자 597명 중에 딱 5명에게만 주어졌다.

-외국인으로서 최초입니다.

“개인적으로 자랑스럽지만 저와 오랜 시간 함께해 준 한국의 친구들 덕분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친구들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대우그룹의 고 김우중 회장, 기아차의 해외 진출을 이끈 이형근 전 부회장과 오태현 기아차 부사장, 가삼현 전 한국조선해양 부회장 같은 기업인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왔다. 그는 “나의 절반은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김우중 회장과는 특히 친했다고요.

“대우가 세계 시장을 겨냥해 내놓은 차량 ‘누비라’가 내 덕에 탄생한 이름이에요. 제가 김우중 회장에게 “왜 꼭 외국 이름을 붙여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사내 공모를 거쳐 ‘누비라’란 이름을 가져왔더라고요. HMM(전 현대상선)의 선박들은 모닝참, 모닝크라운 등으로 모두 MC라는 약자를 따릅니다. 이 역시 제가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모닝캄(Morning Calm)에서 아이디어를 내 제안한 거지요. 기아 차의 레이라는 모델도 우리 회사 이름인 ‘레이 쉬핑’이라는 데서 따온 거 아닐까 의심하고 있어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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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2월 이스라엘을 찾은 김우중(오른쪽) 대우그룹 회장에게 차량 수출 과정을 설명하는 운가르 회장. /대휘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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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가르 회장은 2014년 미국이 이란에 대해 경제 제재를 할 당시, 미국을 설득해 제재 대상에서 한국 차를 제외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올해 금탑산업훈장 수여를 위해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된 공적서에는 “이란에 자동차를 수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미국 측과 협의해 자동차 수출을 제재 예외 사항으로 만드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적혀 있다.

-본인에게 돈이 되는 사업이 아닌데 왜 나서서 도왔나요?

“단순합니다. 나의 한국 파트너들이 도와달라고 했거든요. 좋은 때나 나쁠 때나 서로 돕는 게 파트너이지요.”

-좋은 파트너란 무엇입니까?

“두 가지로 결정됩니다. 오랜 관계, 그리고 확실한 기브앤드테이크. 오랜 기간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파트너입니다. 한 번의 도움이 한 번의 되갚기로 맞아떨어질 필요는 없지만 오랜 기간, 잊지 않고, 주고받는 게 중요합니다. 한쪽만 주고, 한쪽만 받는 관계는 유지되기 어렵죠. 기업들은 물론, 회사의 경영진, 직원들도 나의 파트너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한국을 미국 조선업 파트너로 지목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바다를 컨트롤(통제)하는 사람이 세계를 컨트롤할 수 있지요. 중국이 인공섬을 조성하며 군사 기지를 구축하는 데 방관적이던 바이든 정부와 달리, 트럼프 정부는 이를 제재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모든 정책을 지지하진 않지만 저 역시 (견제에) 동의합니다. 한국이 미국을 도울 수 있고, 미국은 일자리와 관세 등 다양한 선물을 줄 겁니다.”

-최근 한국 드라마나 화장품 등의 중동 진출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한국은 어떤 부문에서 파트너가 될 수 있을까요?

“반도체 분야에서 칩 설계 기술을 가진 이스라엘과 생산 기술을 가진 한국이 협력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실제로 현재 이스라엘은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회사)’ 분야의 선두 주자로 꼽힌다. 작년과 올해 엔디비아와 퀄컴 등이 이스라엘 팹리스 업체를 인수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등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사업을 키우려는 국내 기업이 이스라엘 팹리스 업체들에 설명회를 열고, 현대모비스 등이 차량용 반도체 설계 기업과 협업하며 시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뿌리에 대한 깊은 충성심으로

그가 한국에 첫발을 내디딘 지 벌써 32년이다. 한국에 오면 꼭 추어탕을 먹는다는 그의 입맛은 그대로이지만 한국의 GDP(명목기준)는 227조원에서 작년 2401조원으로 10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처음 왔던 한국과 지금의 한국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당시 서울 강남은 지금 전라남도 목포 같은 느낌이었어요(웃음). 영어 간판 하나 없었죠. 당시 한국은 이제 막 성장하려고 발돋움하는, 국민들 역시 성공에 대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일본 식민 통치에서 누리지 못한 걸 하겠다는 의지가 강했지요. 아무것도 없던 서울 테헤란로에 지금은 미국 뉴욕, 영국 런던처럼 고층 건물이 즐비합니다. 저는 한국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같이 경험한 셈이지요. 타이밍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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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수식어로도 불리는 라미 운가르 회장.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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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부터 오스만 제국까지 여러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통치를 받고 내전을 벌이다가 1948년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며 하루 만에 건국을 이뤄냈다. 그는 “1950~60년대까지 가난했다가 급속히 경제 발전을 이뤄낸 부분까지 한국과 같다”고 설명했다.

-역사적으로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국가가 없는 것은 집 없는 설움과 같습니다. 해외 어느 나라를 가 봐도 한국 사람들은 한인타운에 모여 살고, 한식을 먹잖아요. 그렇게 만나는 같은 민족들이 서로의 나라가 되고, 집이 되고요. 이스라엘 사람도 비슷합니다. 단일 민족의 특징이지요.”

-한국이 역경을 뚫고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요?

“어려운 질문입니다. 저는 언제나 ‘뿌리’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한국에는 조국을 위해 아낌없이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뿌리에 대한 충성심, 애국심이지요. 하지만 우리 손자 세대도 과거 세대처럼 국가를 위해 희생할 생각이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나마 오늘 들은 기쁜 소식 중 하나는 한국의 출산율이 조금 올랐다는 거였어요.”

그러면서 그는 “최근 울산을 가 보니 좀 걱정되는 측면이 있다”며 입을 뗐다. “18년 전 울산의 조선소들에 가면 모두 한국인들이었는데, 지금은 10명 중 4명은 파키스탄, 베트남, 태국 등에서 온 외국인이에요. 한국인들만큼 기술이 좋지 않고, 국가를 위해 일하던 한국 사람들보다 근면성실도 떨어지죠.” ‘메이드 인 코리아’가 기술력의 보증수표로 통하던 시대가 끝날 수 있다는 우려였다.

-한국 경제의 미래가 밝게 들리진 않습니다.

“K팝, K푸드 등 전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는 데엔 젊은 세대가 일조한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취업 준비생으로 남아 있는 청년이 많고, 힘들지 않고 돈 많이 주는 일만 찾으며, 실업급여를 노리거나 결혼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은 우려스럽습니다. 북한 체제가 얼마나 유지될지 모르겠으나 통일 등이 되면 북한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이 이뤄낸 경제 성과를 나눠야 할 수도 있고요. 물론 인구가 늘고, 강국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요.”

걱정스러운 표정을 봤는지 그가 웃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하지만 기억해야 합니다. 어차피 우리 모두 죽는 건 매한가지입니다. 사는 동안 걱정만 하고 살 건지 아니면 긍정적으로 낙관할 건지가 중요하지요.”

다음 일정이 있어 떠나야 한다며 시간에 쫓기듯 일어난 그가 창 밖을 보며 “오, 환상적(Fantastic)이군요!”라고 말했다. ‘메이드 인 코리아’에 투자해 온 이 외국인이 보는 서울의 야경은 우리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아름다웠다.

[이미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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