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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4 (토)

기구한 운명의 영친왕 도쿄 저택, 美 사모펀드에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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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스톤이 3조7300억원에 인수한

영친왕 도쿄 저택 95년간의 스토리

조선일보

일본 도쿄 지요다구 기오이마치에 있는 ‘옛 이왕가 도쿄 저택’의 모습. 1930~1954년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가 살던 곳으로, 호텔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프렌치 레스토랑, 연회장 등으로 쓰이고 있다. 최근 미국의 사모 펀드 운용사 블랙스톤이 부지 내 다른 건물과 함께 인수했다. /도쿄 가든 테라스 기오이초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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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공화국 시절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이형근(1920~2002)은 1942년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대위로 복무하던 중,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기오이마치(紀尾井町)의 한 대저택을 가끔 들렀다고 한다. 그곳은 고종의 아들인 영친왕(1897~1970) 이은과 부인 이방자 여사가 사는 영국 튜더 양식의 2층집이었다. 1907년 대한제국 황태자로 책봉됐으나 일본으로 건너가 살았던 영친왕은 1930년 일본 궁내성으로부터 아카사카 별궁과 인접한 토지를 증여받은 곳에 사택을 지었다. 도쿄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장소였다.

조국이 없는 군인으로서 충성을 바칠 대상을 찾으려 했던 것이었는데 그때마다 영친왕은 일본말만 쓰며 응대해 이형근을 실망케 했다. 그런데 1945년 8월 15일 해방 당일 다시 그 저택을 찾은 그는 깜짝 놀랐다. 영친왕이 갑자기 우리말로 청산유수처럼 말하더라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 조선 왕가를 대표해 문약(文弱)한 풍조를 없애지 못해 망국을 초래한 잘못을 우리 동포들 앞에서 깊이 사과하고 싶었소. 그러니 이 대위는 급히 귀국해서 독립을 수호할 국군 창설에 힘써 주시오!”

조선일보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미국의 사모펀드 운용사인 블랙스톤은 12일 ‘도쿄 가든 테라스 기오이초’를 세이부홀딩스로부터 26억달러(약 3조73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낮은 금리와 엔화 약세를 배경으로 일본 부동산에 관심을 보이는 해외 투자자의 움직임을 상징한다”고 보도했지만 그곳에 포함된 옛 영친왕 저택의 기구한 사연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 저택에서 ‘본심’을 드러낸 영친왕이 이형근에게 했던 말은 ‘먼저 돌아가 국군을 만들면 나도 돌아가 왕실을 복원할 것’이란 뜻이었을까. 그러나 그것은 그의 생각일 뿐이었고,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1947년 연합군 최고사령부(GHQ)의 조치로 평민으로 격하당했고, 재산의 78%에 해당하는 세금이 부과됐다. 두 차례 귀국 의사를 밝혔지만 미 군정과 이승만 정부가 번번이 거부했다. 상당수 국민은 복벽(왕정복고)은커녕 그가 귀국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다. ‘친일 왕족이자 민족 반역자인데 왜 광복 후 자결하지 않았느냐’고 꾸짖는 사람도 있었다.

이승만 정부는 한때 영친왕의 저택을 재일 한국대사관으로 활용할 계획도 세웠다. 그곳 역시 옛 대한제국 황실의 재산이니 곧 대한민국의 재산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주일 한국공사관은 그것이 영친왕 개인 재산이라는 것을 알고 재일동포에게 성금을 걷어 새 저택을 대신 마련해 주려고 했으나 영친왕은 끝내 그 집을 내놓기 꺼렸다고 했다.

경제적으로 궁핍해진 영친왕은 1954년 도쿄의 저택을 세이부(西武) 철도의 모기업인 국토계획흥업에 매각했다. 세이부 철도는 이 저택을 ‘아카사카(赤坂) 프린스’라는 이름의 호텔로 개조해 1955년 영업을 시작했다. 영친왕은 1963년 11월 가까스로 고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으나 이미 뇌일혈로 인해 혼수상태였다. 그는 7년 뒤 창덕궁 낙선재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은 일본의 정치사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유명 호텔이었다. 후쿠다 다케오(재임 1976~1978) 총리의 사무실이 이 호텔에 있었는가 하면, 자민당의 후쿠다파를 기원으로 하는 세이와(淸和)정책연구회의 본부로 활용되기도 했다.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들의 결혼식장으로도 인기를 얻었다. 1983년엔 저택 부지에 40층 규모의 신관 건물을 세우고 저택은 구관으로 활용했다.

다시 세월이 흐른 2005년 7월, 이 호텔 19층의 작은 싱글룸에서 한 노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영친왕과 이방자의 아들이자 ‘조선 왕실의 마지막 적통(嫡統)’이라 불렸던 74세의 이구였다. 망해버린 나라의 이름뿐인 ‘황세손’으로서 ‘왕(王) 노릇을 오래[久] 하라’는 뜻에서 ‘구(玖)’란 이름을 얻었으나 후사도 없었던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던 곳에서 홀로 최후를 맞았던 것이다.

새로 지어진 특급 호텔들에 밀려난 프린스 호텔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피난시설로 활용됐으며 그해 문을 닫았다. 일본 세이부홀딩스는 2016년 호텔 용지를 재개발해 복합 시설 ‘도쿄 가든 테라스 기오이초’를 개장했다. 22만3000㎡ 면적에 고층 타워 두 채, 그리고 도쿄도 유형문화재인 ‘옛 이왕가 도쿄 저택’이 이 시설에 포함됐다. 5000t 무게의 영친왕 옛집은 레일을 깔아 원래 위치에서 44m 옮긴 뒤 프렌치 레스토랑과 연회장 등으로 쓰이는 ‘아카사카 프린스 클래식 하우스’가 됐다. 그리고 이제 또다시 주인이 바뀌었다.

[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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