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27 (금)

우주에서 숙성한 위스키의 맛은 어떨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아무튼, 주말]

[김지호 기자의 위스키디아]

지구 숙성? 우주 숙성! 중력·제한적 움직임으로 강렬한 연기·태운 고무맛

조선일보

우주 샘플을 들고 있는 빌 럼스덴 박사. /아드벡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일라섬 위스키가 지구에서 400km 떨어진 국제우주정거장으로 쏘아 올려졌다. 스코틀랜드 아드벡 증류소 제품 개발을 총괄하는 빌 럼스덴(Bill Lumsden) 박사의 상상이 현실이 된 것이다. 럼스덴 박사는 자신을 괴짜라고 표현한다. 무언가에 꽂히면 끝까지 파고드는 성격.

럼스덴 박사는 오크통이 아닌 브라질산 체리통에서 위스키를 숙성한 탓에 스카치위스키 협회에서 경고장을 받기도 했다. 스카치의 규정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기세는 꺾일 줄 몰랐다. 현재까지 다양한 오크통을 활용해 위스키에 복합적인 풍미를 입히는 것을 즐긴다. 위스키 제작에 쓰이는 보리를 커피콩 볶듯이 볶아서 ‘초콜릿 몰트’를 개발한 주인공이다. 면세점에서 보이는 ‘커피 맛’ 위스키인 글렌모렌지 시그넷이 그의 작품.

위스키 맛의 8할은 오크통에서 나온다. 오크통이 가진 맛 성분이 숙성을 통해 증류액에 스며드는 것이다. 오크통에 진심인 럼스덴 박사의 상상력에 또 한 번 시동이 걸렸다. 그는 무중력 상태에서 숙성된 위스키와 지상에서 숙성된 제품의 맛 차이를 알고 싶었다. 호기심은 이내 행동으로 옮겨졌다.

2011년 아드벡은 텍사스 소재의 우주 연구 회사인 나노렉스의 초대로 우주 실험에 참여하게 된다. 당시 CEO인 제프리 맨버는 럼스덴 박사의 혁신적인 생각과 실험에 흥미를 느껴 흔쾌히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해 10월,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아드벡 증류액과 ‘오크통 조각’을 함께 담은 바이알 병이 소유스호에 실려 지구를 떠났다. 같은 방식으로 병입된 나머지 한 병은 지구를 지켰다. 그렇게 우주로 떠난 위스키는 하루에 15번, 시속 1만7227마일의 속도로 지구를 공전했다.

2014년 약 3년의 여정을 거친 위스키가 지구로 돌아왔다. 럼스덴 박사는 ‘우주 위스키’의 맛을 표현했다. “코에서는 강렬한 연기와 고무, 훈제된 생선, 제비꽃의 향이 느껴졌다. 맛에서는 자두와 건포도, 설탕에 절인 체리를 훈연시킨 느낌이 났다. 흙, 페퍼민트, 계피, 훈제된 베이컨의 풍미도 스쳤다. 삼킨 후 입 안에서 맴도는 여운은 길었으며 나무나 고무를 태운 듯한 기분이었다.”

럼스덴 박사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주에서 온 샘플은 지구에서 숙성한 위스키와 화학적 비율이 다르다며 지금까지 맛보지 못했던 새로운 풍미라고 설명했다. 또 지구에서 숙성시킨 위스키에 비해 아일라섬 특유의 피트향이 훨씬 강하게 느껴졌다. 우주에서의 중력과 원액의 제한적인 움직임이 위스키의 숙성에 영향을 미친 셈이다.

아드벡은 2011년 우주 발사를 기념해 2012년 아드벡 ‘갈릴레오’를 출시했다. 우주로 쏘아 올린 원액과는 관련이 없지만, 발매 당시 80파운드짜리 위스키는 현재 약 500파운드에 거래되고 있다. 참고로 아드벡은 다른 아일라 피트 위스키에 비해 훈연향이 강한 편이다.

2005년 프랑스의 다국적 명품 기업 LVMH(루이뷔통 모에헤네시)에 편입된 아드벡은, 매년 막대한 자금력으로 다양한 한정판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과거 아드벡을 사랑했던 애호가들에게는 이러한 한정판 전략에 따른 피로가 누적될 수 있지만, 여전히 아드벡은 꽤 괜찮은 제품을 생산한다.

[김지호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