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스콜마저 낭만적인 인도네시아 우붓 여행
‘물의 사원’으로 불리는 멘게닝 사원에서 현지인들이 제단 앞에 앉아 기도하고 있다. 기도는 신성한 계곡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 운동이다. /정해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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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요정’이라는 말이 있다. 중요한 날에 날씨 운이 따라주는 사람을 가리킨다. 여행을 떠날 땐 날씨 요정 되기가 더욱 간절해진다. 열대지방 휴양지에서 예고 없이 내리는 스콜(소나기)은 여행자들을 낙담시키니까.
‘날씨 요괴’라도 괜찮은 여행지가 있다. 인도네시아 발리의 우붓(Ubud)이다. 키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숲으로 이루어진 우붓은 비 오는 날 매력이 극대화한다. 습한 공기는 녹음의 향기와 산새의 울음소리를 평소보다 멀리 나른다.
발리에 부슬부슬 비가 내리던 지난달 27일 새벽 우붓 북쪽 파양안(Payangan)에 있는 ‘아난타라 우붓 발리 리조트(Anantara Ubud Bali Resort)’를 찾았다. 리조트 로비로 들어서자 약 3m 높이 조형물이 신비로운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징보다는 맑고 실로폰보다는 둔탁한 음색이었다.
타로 마을 정글에서 만난 농부. 연구 목적으로 반딧불이도 키우고 있다고. /정해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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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형물은 발리 전통 타악기인 ‘가믈란(Gamelan)’ 12개 등으로 만들어졌다. 발리에서 직접 가믈란 만드는 법을 배운 미국의 조각가 에런 커프너(Aaron Kuffner)의 작품. 가믈란의 이름은 두드린다는 뜻의 인도네시아어 ‘가말(gamal)’에서 따왔다. 발리 사람들은 가믈란에 악령을 진압하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도착과 동시에 발리에 몰입하는 순간이었다.
오전 5시 30분쯤이 되면 정글 너머로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다. 이 리조트는 산비탈에 지어져 전 객실이 ‘정글 뷰’다. 전날 우리나라 수도권에 내린 폭설 첫눈으로 비행기가 4시간 지연됐는데, 정글에 사는 동물들 소리를 자장가 삼아 ‘꿀잠’을 잘 수 있었다. 가장 위층에 있는 로비에서는 하늘이 맑은 날 약 26㎞ 떨어진 발리의 ‘아궁산(Gunung Agung)’도 볼 수 있다. 발리 사람들이 우주의 중심으로 여기는 활화산이다.
발리의 최고 사제인 ‘이다 구루’의 집. 이다 구루와 수습생 등이 ‘불의 의식’ 준비를 하고 있다. /정해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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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의식으로 정화, 불 의식으로 충전
섬 지역인 발리는 물을 성스럽게 여긴다. 둘째날, ‘물의 사원’으로 유명한 멘게닝(Mengening) 사원을 방문했다. 1022년 지어진 이 사원은 2년 전 ‘1000주년’을 맞았다. 발리 사람들은 불안한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고. 산에서 내려오는 폭포수가 나쁜 기운을 씻어 준다고 믿는다. 사원에 방문할 땐 누구나 다리를 감싸는 긴 천 ‘사롱(sarong)’을 입어야 한다.
사롱을 입은 수호신 조형물이 지키고 있는 사원 입구를 지나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면 계곡이 나온다. 사원 안에 있는 나무나 제단 등을 감싸고 있는 천은 전부 노란색이다. 힌두교에서는 노란색이 깨달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사원을 둘러싼 초록 정글과 사원 곳곳에 펼쳐진 노란 천, 푸른 계곡이 한데 어우러졌다.
아난타라 우붓 발리 리조트의 정글이 내다보이는 인피니티 풀. /정해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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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 발리 사람들이 줄을 서 차례대로 세찬 폭포에 머리를 넣었다 빼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제단에 준비해 온 꽃과 향을 바치면 계곡에 들어갈 준비가 끝난다. 계곡에는 폭포 외에도 10여 개의 물줄기가 있다. 그 아래에서 세수하고, 기도한 뒤, 자신의 머리를 흠뻑 적시면 된다. 물을 마시거나 챙겨온 작은 병에 물을 담아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다 구루의 집. 이 집에는 이다 구루와 수습생, 수습생 가족들이 모여 산다. /정해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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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가운데로 들어가니 노란 사롱을 입은 이다 구루와 수습생 등이 정자에 앉아 의식을 준비 중이었다. 모닥불을 피울 화로, 제물로 바칠 형형색색의 꽃, 작은 종과 북 등 악기가 놓여 있었다. 아그니호트라(Agnihotra)로 불리는 불 의식이 시작되자, 이들은 엄숙한 표정으로 노래를 시작했다. 노래와 기도를 반복하는 약 1시간 동안 화로에 기름을 조금씩 끼얹어가며 불길을 키웠다. 무릎을 꿇은 채 의식에 참석한 한 수습생은 의식 내내 발바닥에 파리가 기어 다녀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정글 속에서 ‘논 뷰’ 피크닉
셋째날에는 발리에서 가장 오래된 타로(Taro) 마을에 가기 위해 뒷좌석 천장이 뻥 뚫린 지프차에 몸을 실었다. 쌩 지나가는 지프차를 향해 발리 사람들이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타로 마을로 이동하는 20여 분 동안 낯선 사람들에게 받은 친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타로 마을에서 방문한 현지인의 집. 거주 공간과 사원이 함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향을 만들기 위한 나뭇잎을 마당에서 말리고 있었다. /정해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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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에는 소, 닭, 돼지, 개 등 여러 동물이 살고 있었다. 깊숙이 들어가자 커피 나무와 바나나 나무도 보였다. 뱀의 피부를 닮은 ‘스네이크 프루트(snake fruit)’가 열리는 가시나무도 있었다. 어디선가 향긋한 망고 냄새가 나길래 두리번거리니 가이드 니타(Nita)가 어린 망고 나뭇잎을 따줬다. 조금 뜯어 먹어 보니 정말 망고 맛이 났다. 현지 가이드들의 설명이 없었다면 그저 이름 없는 나무였을 것이다. 이들은 얇은 나뭇잎으로 풀피리를 불어주거나 나무에 올라 사과를 따주기도 했다.
타로 정글 탐험의 꽃은 ‘논 피크닉’이다. 발리는 1년에 3번 쌀을 수확하는데 수확 시기는 논마다 다르다고 한다. 이날은 운 좋게 고개 숙인 벼를 볼 수 있었다. 논과 야자수가 동시에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고 앉아 준비해온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나무 식탁에 개미가 많아 성인 몸통만큼 큰 나뭇잎을 식탁보로 깔았다. 구수한 발리 커피를 마시고 샐러드와 샌드위치로 요기했다. 성대한 식사는 아니었지만 한여름 노랗게 물든 ‘논 뷰’ 소풍은 값졌다.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 수석 셰프 제임스 윌리스(왼쪽)가 레스토랑 ‘아메르타(Amerta)’ 주방에서 핀셋으로 접시에 음식을 담고 있다. 아메르타는 개방형 주방으로 식사하면서 요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정해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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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콤한 것이 특징인 발리 요리 만찬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 수석 셰프 제임스 윌리스가 이끄는 레스토랑 ‘아메르타(Amerta)’에서는 파인 다이닝 코스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저온 냉장고에서 2~4주 동안 건식 숙성한 고기와 생선 등을 메인으로 내어준다. 토마토 육수와 함께 나오는 건식 숙성 마히마히(만새기) 스테이크를 추천한다. 시금치 가루를 묻혀 까맣게 보이는 시금치 버터도 별미. 개방된 주방에서는 이곳 셰프들이 코스 내내 음식을 접시에 보기 좋게 올리는 일에 열중했다. 덕분에 눈으로 한 번, 입으로 한 번 음미할 수 있었다.
타로 마을 정글에서는 어린 망고 나무 잎을 따 먹어봤다. 발리 커피와 함께하는 ‘논 뷰’ 피크닉도 일품. 멘게닝 사원에서는 현지인들이 기도를 하며 불안을 정화하고 있었다. /정해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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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의 삶 반영한 웰니스 프로그램
방문객이 현지인의 삶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웰니스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 중이었다. 전체 직원 약 200명 중 70%를 차지하는 발리 출신 직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결과라고. 특히 리조트의 웰니스 담당자인 마데 와르나타는 2012년 미국 콜로라도의 덴버대에서 웰니스 분야 석사 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태국 코사무이, 몰디브, 싱가포르, 부탄 등 지역의 고급 리조트에서도 웰니스 프로그램을 담당했다.
발리에서 마데(Made)는 둘째 아들 이름 앞에 들어간다. ‘마데 와르나타’는 ‘둘째 아들 와르나타’의 동의어라는 뜻이다. 그러나 마데 와르나타는 이 리조트에서 ‘와르나타’라는 자기 이름 대신 ‘마데’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자신이 발리 사람임을 방문객들에게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라고. 그는 “발리에 대해 잘 아는 직원들끼리 마련한 독자적인 프로그램이 가장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발리는 건기인 4~10월에 여행하기 좋다고 알려져 있다. 우기인 11~3월에는 스콜이 자주 내려 비성수기로 분류된다. 11월 말~12월 초에 걸쳐 찾은 발리 우붓은 불청객인 줄로만 알았던 스콜이 낭만으로 승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줬다. 여행지에서 진정한 힐링을 원한다면, 이곳 사람들의 친절 속에서 정화와 충전을 누릴 수 있는 우붓은 어떨까.
여행 수첩
1. 비자: 여행 목적으로 방문 시 도착 비자(VOA)를 받으면 30일간 체류 가능.
2. 항공편: 인천 국제공항-응우라라이 국제공항 직항 있음. 경유는 싱가포르에서 환승.
3. 현지 교통: 관광객은 동남아시아 승차 공유 앱인 ‘그랩’ 추천.
4. 여행 적기: 강수량이 적고 평균온도가 낮은 7~9월이 최성수기. 1~2월에 비가 가장 많이 내림.
5. 화폐: 루피아(100루피아=약 9원)
탁수 마사지, 아난타라 시그니처 마사지, 발리 마사지 등 여러 종류의 스파가 있다. 정글 속에서 받는 세심한 스파는 힐링의 정석. /해시컴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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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독은 스파와 오일 마사지로 풀자
인도네시아 발리에는 마사지로 몸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스파’가 많다. 동남아시아로 휴가를 떠난 관광객들은 여행 첫날이나 마지막 날 여독을 풀기 위해 스파를 찾곤 한다. 지갑 사정이 넉넉하다면 ‘1일 1스파’도 적지 않다.
발리나 우붓 지역의 스파 후기를 찾아 보면 대부분 이렇다. “인스타그램 사진 맛집” “입구부터 어마어마한 대기” “발 마사지만 받아도 사진 찍으면 돈값 하는 곳”.... 즐거운 순간을 기록하기 위한 사진도 중요하지만, 심신의 치유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것이 스파의 의미에 더 어울릴 것이다.
우붓에는 스파를 운영하는 리조트가 많다. 아난타라 우붓 발리 리조트에는 탁수(Taksu) 마사지, 아난타라 시그니처 마사지, 발리 마사지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직원이 평소 불편한 곳과 건강 상태, 집중적으로 마사지받고 싶은 신체 부위와 강도 등을 꼼꼼히 체크해 마사지를 해준다. 엎드려 받는 마사지 침대의 얼굴 구멍 아래 바닥에는 알록달록한 꽃이 놓여 있었다. 방문객이 맨 바닥을 보지 않도록 신경 쓴 세심함.
탁수 마사지의 ‘탁수’는 발리어로 ‘매력적인 분위기’라는 뜻이다. 일본·하와이·발리의 마사지 기술을 섞었다고 한다. 마사지와 지압이 섞인 것이 특징이다. 커플이라면 탁수 마사지와 목욕, 식사로 구성된 3시간짜리 코스를 즐길 수도 있다. 아난타라 시그니처 마사지는 직접 만든 아로마 오일을 사용한다. 현지 약초꾼들이 만든 생강 오일을 사용하는 발리 마사지는 강한 압이 기억에 남는다.
스파를 마치고는 리조트 로비로 올라가 보자. 울창한 정글과 해발고도 3031m의 활화산 아궁(Agung)산을 바라보며 마시는 시원한 음료가 나른함에 마침표를 쾅 찍어줄 것이다.
[정해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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