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12·3 불법 계엄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한국 시민사회의 적극적 모습에 대해 일본에서 부러움의 정서가 감지되고 있다. 일러스트 김일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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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시민이 분노해 거리로 나서는 일이 또 일어날 줄은 몰랐다. 2016년에도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오랫동안 계속되었고, 이를 통해 한국 정치가 한층 성숙했기를 바랐다. 그러나 2024년의 상황은 그 기대를 무색하게 할 만큼 심각하고 처참하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친위 쿠데타를 시도하며 헌정 질서를 뿌리째 흔들었고, 그런 위험한 인물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던 여당은 책임을 지기는커녕 내란 주동자의 퇴진을 반대했다. 이에 수많은 시민이 헌정 체제 복귀를 요구하며 행동에 나섰다. 대통령의 즉각 탄핵을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전국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정치, 경제,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국내외 신뢰도는 바닥으로 추락한 상황에서, 한국 사회가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가치는 시민들과 여당 이외의 국회의원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고 있는 민주주의다.
◇ 2016년과 2024년, 일본 시민의 변화한 시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2016년에도 쌀쌀한 겨울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부터 당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과 일본의 다양한 시위 사례를 연구했던 덕분에 그 시기를 비교적 생생하게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다. 연구 결과는 일본인 동료와 함께 집필한 책 '21세기 데모론'(2018년, 눌민)에 담겼다. 그해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매주 열린 촛불집회는 영하의 강추위 속에서도 1,600만 명(주최 측 추산)에 달하는 시민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만장일치로 인용되며 마무리된 이 사태는 한국 시민의 힘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이기도 하다.
그러나 당시에 이 사태에 대한 일본 사회의 반응은 한마디로 ‘연민’이었다. 촛불집회의 평화로움과 자발성을 높이 평가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권력이 오죽 부패했으면 저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갔을까”라는 반응이었다. 그 이면에는 “일본에서는 그 정도로 노골적인 국정 농단은 일어날 수 없다”는 암묵적인 전제가 있었을 것이다.
2024년의 탄핵집회를 바라보는 일본 사회의 시각은 이전과 사뭇 다르다. 우선, 대통령이 군을 동원해 친위 쿠데타를 시도했다는 사실 그 자체를 상당히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경제적, 문화적으로 선진국으로 평가받는 이웃 나라에서 사실상 내란이 벌어졌다는 점은 일본인에게도 낯설고 믿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한국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에 감탄했다는 의견도 많다.
비상계엄 직후에 국회의사당 주변에 모여드는 시민들, 장갑차와 군대를 뚫고 담장을 넘어 필사적으로 국회에 모이는 국회의원들, 영하의 쌀쌀한 겨울 날씨에 거리로 나와 헌정 질서 복귀를 외치는 시민들의 모습이 일본에도 생생하게 중계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는 “한국의 헌정 질서는 위기에 빠졌지만, 민주주의는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는 글이 많다. 한 일본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국회의원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지고, 젊은 세대가 자발적으로 집회에 참여하는 모습이 부럽다. 일본에서는 비슷한 일이 벌어져도 모두 나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행동을 취하지 않을 것이다.” 헌정 질서가 무너진 위기를 경험 중인 내가 위로받는 처지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자조적인 의견에 오히려 위로를 건네야 할지 머뭇거렸다. 오랫동안 일본 사회를 관찰해 온 만큼, 그의 냉소적인 의견에 반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일본의 시민들이 2016년에는 “왜 한국 사회의 권력이 그처럼 부패했는가”라는 점에 주목했다면, 2024년에는 “한국 시민들이 이 사태에 어떻게 대항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보아도 2024년 어처구니없는 비상계엄 이후 한국 사회의 상황은 2016년 국정 농단 때보다 훨씬 위험하다. 하지만 그때에는 안쓰러움에 머물렀던 일본 시민들의 시선에 지금은 부러움이 섞여 있다.
◇ 2011년 반원전데모 실패가 정치적 트라우마로
지난 주말에 부산 서면에서 열린 탄핵 촉구 시위에 참여했다. 쌀쌀한 날씨에도 거리로 나선 어르신들,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온 젊은 부모, 기상천외한 문구를 쓴 깃발을 휘두르며 정치 구호를 외치는 청년들의 모습에 큰 힘을 느꼈다. 집회 내내 신나는 노래와 공연이 끊이지 않았다. 국회의사당을 둘러싼 서울 집회에서는 케이팝 팬덤의 상징인 응원봉이 시위 도구로 변신해서 라이브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신난 분위기였다고 한다. 탄핵소추안이 재표결에 부쳐지는 토요일 시위를 위해 처음으로 응원봉을 구입했다는 지인도 있다. 젊은이의 문화를 기꺼이 받아들인 ‘힙한’ 시위 분위기가 남다르게 느껴진다.
하지만 대중문화와 정치적 행동이 결합된 방식의 시위 문화는 이번에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다. 응원봉이 등장하지 않았을 뿐, 2016년 촛불집회도 시종일관 유쾌하고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였다. 또, 그런 시위 문화가 한국만의 것도 아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한때 일본 전국에서 원전에 반대하는 시위가 크게 벌어진 적이 있다. 당시 반원전 시위의 분위기도 2016년 촛불집회나 2024년 탄핵집회에 못지않게 흥겹고 떠들썩했다. 록밴드와 공연단이 시위대와 함께 행진하고, 시민들은 기상천외하고 기발한 코스튬으로 분장하고 거리를 나섰다. 유머 감각이 넘치는 플래카드를 흔들며 ‘원전 반대’ 구호를 외쳤다. 일본에서는 이런 스타일의 시위를 ‘사운드 데모’라고 부른다.
개인적으로는 이때 일본에서 전개된 반원전 시위의 에너지를 높이 평가한다. 한국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1970년대 이후 데모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대규모 시민 행동을 조직하고 실행에 옮기는 노하우도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런 와중에 시민들의 집단 행동이 자생적으로 시작되어 전국으로 불붙었다. 그만큼 절실한 문제의식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들의 자발적이고 힘찬 에너지가 실질적으로는 아무 결실을 맺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정치가들은 원전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원전을 둘러싼 일본 시민 사회의 여론이 반대로 모아지지 않은 탓도 있다. 하지만, 일본은 원폭으로 수많은 생명을 잃고, 미증유의 원전 사고로 막대한 피해를 경험한 나라다. 책임 있는 지도층이라면 시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원전 중심 에너지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기존 입장에서 단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고, 올해 10월부터는 동일본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재해원전’을 재가동하기 시작했다.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라는 큰 재해를 겪으며 모처럼 터져 나왔던 시민들의 목소리는 사실상 묵살되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사회를 바꾸기를 희망했던 일본 시민들의 시도가 실패로 끝난 것이다.
◇ 시민의 뭉친 힘으로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며
2024년 한국에서 벌어지는 시대착오적 정변을 보면서도, 일본 시민에게서 ‘부럽다’는 말을 듣는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2011년 국가적 재앙을 겪으면서 모처럼 터져 나왔던 반원전 시위가 무위로 돌아가면서 일본 시민 사회는 오히려 큰 정치적 트라우마를 떠안게 되었다. 지금 일본 시민 사회에 떠도는 냉소와 무기력함은 실패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반면, 한국 시민은 민주화 운동에서 탄핵집회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스스로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낸 역사를 갖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민들이 뭉쳐 힘을 발휘하는 중요한 문화적 자산이다. 또 한번의 큰 변화가 시작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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