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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5 (일)

소형 원자로 시대? …'용접'부터 해결해야 [테크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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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R 대량양산 걸림돌 원자로

현재 한기당 제작 기간만 2년

허약해진 생태계 복구가 우선

미국계 빅테크들을 중심으로 소형 모듈형 원자로(SMR)를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같은 기업들은 벌써 SMR 개발 업체들과 협력양해각서(MOU)를 맺고 있으며, 관련 기업들 주가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지요.

하지만 원전 르네상스가 곧 펼쳐질 거라고 예단하는 건 금물입니다. SMR이 기존의 원자력 발전소와는 달리 다양한 장점을 갖춘 건 사실이고, 또 원전을 부흥하려는 각국의 정치적 의지도 확고하지만, 가장 중요한 '공급망'이 아직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당장은 용접부터 걸림돌이 됩니다.

수백㎜ 강철 벽을 단 한 치 오차 없이 용접하라…'원자로의 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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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접 중인 엔지니어. 기사 중 특정 표현과 관련 없음.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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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원전이든, SMR이든, 결국 가장 중요한 부품은 원자로입니다. 핵분열 반응으로 뜨거워진 원자로가 물을 끓여 증기를 만들면, 그 증기가 터빈을 돌려 발전하는 게 원자력 에너지의 원리니까요. 그런데 이 원자로는 대단히 만들기 까다로운 부품입니다.

세계 원자력 협회가 2021년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현재 원전용 원자로 표준 규격인 'AP1000'은 보통 주문 이후 최종 조립까지 약 2년가량 걸립니다. 또 10여년에 걸쳐 정기적인 정밀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원자로는 예나 지금이나 대량 생산과는 거리가 먼 부품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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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중공업의 1400MW급 원자로. 현대 원전의 원자로는 수백톤(t)의 중량과 거대한 체적을 자랑하는 부품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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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일까요. 원자로는 위험한 방사선이 누출되지 않게 만들어진 단단한 물건입니다. 무게는 500~600톤(t)에 이르고, 강철의 두께는 수백㎜에 달하며, 제조 이후에도 겉면에 클래딩을 바르는 꼼꼼한 작업을 거쳐야 합니다.

당장 AP1000급 원자로 핵심 재료인 수백t짜리 강철 잉곳을 제련할 초대형 유압 프레스도 전 세계에서 손을 꼽을 정도로 적지요. 하지만 정말 어려운 작업은 용접입니다. 원자로를 이룰 각 구성품 접합부를 용접해야 하는데, 아주 조금이라도 미세한 틈이나 금속의 변질이 있어선 안 되므로 매우 까다롭고도 노동 집약적인 작업입니다.

물론 SMR은 AP1000보다 훨씬 사이즈가 작을 테니 제조 시간은 좀 더 줄어들 겁니다. 하지만 여전히 작금의 기술론 원자로를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대량 생산하기는 힘듭니다.

신기술 시도되고 있지만…아직 테스트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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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이 방출되는 통로를 진공 모듈로 둘러싸 전자 빔을 순수한 형태로 유지하는 신개념 전자빔 용접기. 케임브리지 배큠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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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원자로 용접 분야에서 기대받는 혁신 기술이 있습니다. '케임브리지 배큠'이라는 기업에서 개발한 이른바 '전자 빔 용접'(EBW)입니다. 일반 레이저보다 두꺼운 금속 내부를 훨씬 잘 투과하고, 변질 위험도 적은 전자빔으로 신속하게 용접 작업을 마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전자빔을 균일하고도 순수하게 유지하려면 주변에 입자가 없는 진공 공간에서 작동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터무니없이 비싼 진공 클린 룸을 원자로 규격에 맞춰 구비해야 하기에 이전까지는 상용화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것으로 보였죠.

케임브리지 배큠은 진공 클린 룸 '안에' 전자빔 장치를 놓는 대신, 모듈형 클린 룸을 전자빔 장치와 함께 연결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자빔은 여러 축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산업용 로봇 팔에 달아, 아무리 두껍고 거대한 원자로 부품이라도 신속하게 용접할 수 있습니다. 현재 이 기술은 영국 소재 원자로 관련 핵심 부품 공급 업체인 '셰필드 포지마스터'와 협력, SMR 부품 대량 생산을 가늠하기 위해 테스트 중입니다.

용접 문제를 해결한다면 전체 원자로 제조 과정 중 수개월을 단축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주문 대기열이 줄어들 테니 SMR 관련 공급망을 더욱 튼튼하게 해줄 겁니다. 그러나 용접 외에도 클래딩을 비롯한 수많은 문제가 산재해 있고, 이런 공급망 병목 현상 해결 없이 SMR 시대를 여는 건 힘들 겁니다.

후쿠시마 사태 후 허약해진 원전 생태계 복원이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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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시마 제1 원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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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전 세계적으로 원전 시장은 '냉각'됐습니다.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많은 원전 선도국들의 부품 공급 기업들이 문을 닫거나 다른 회사와 통폐합됐습니다. 실력 있는 엔지니어와 테크니션 숫자도 줄었습니다. 생태계 자체가 협소해진 상황에서 대뜸 신기술을 대량 생산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긍정적인 부분은 과거의 원전 공급망과 생태계를 다시 복원하려는 각국 정부의 정치적 의지만큼은 확고해 보인다는 겁니다. 미국에선 지난달 중순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의 원전 발전 용량을 2050년까지 3배가량 늘리겠다는 로드맵을 내놨고, 해당 계획은 원전에 긍정적인 차기 트럼프 행정부도 계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국에선 SMR 부품을 원활히 찍어내기 위해 전 세계에 몇 없는 1.3~1.5만t급 초대형 프레스를 정부 예산으로 지원해 구입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원전 강국' 프랑스는 기존 원전 정책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국내 원전 산업은 다시 한번 기로에 선 듯합니다. 정부는 당초 원전 관련 예산으로 생태계 금융 지원에 1500억, 혁신형 i-SMR 기술 연구개발 사업에 329억 등 총 2140억여원을 편성했지만,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탄핵 정국'에 들어선 현 상황에선 사실상 전액 삭감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껏 갈고 닦은 원전 기술을 토대로 SMR 시장에서도 점유율을 확보하려면, 우선 그동안 허약해진 원전 생태계를 복원할 재투자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초유의 사태로 국정 운영이 사실상 마비된 지금, 미래 먹거리를 위한 초당적 결정이 가능할지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입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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