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계 “구조적 성차별 없다는 기조부터 바꿔라”
‘윤석열out 성차별out 페미니스트들’에서 활동하는 대학생 조혜원씨(24)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서 직접 만든 손팻말을 들고 있다. 조씨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여성계 인사들은 “윤 대통령 탄핵은 ‘성차별 정권’에 대한 탄핵”이라고 규정했다. 페미니스트 단체에서 활동하는 조혜원씨(24)는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여성가족부 폐지를 들고나오고 ‘구조적 성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며 “청년 여성이 일상에서 느끼는 젠더 폭력의 위협과 성평등의 가치를 무시했기 때문에 수많은 여성이 탄핵을 외친 것”이라 말했다. 추적단 불꽃의 원은지 대표도 “정부는 올해 여성 폭력 방지·지원 예산을 대폭 삭감해 피해자들의 일상회복과 치유를 방해했다”며 “이번 탄핵은 성평등을 퇴보시킨 대통령 탄핵”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이번 기회에 성차별 정치·갈라치기 정치를 물리치고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씨는 “윤 정부가 무시해 온 여성, 성소수자들이 한목소리로 평등과 안전을 외친 결과가 이번 탄핵이라는 점을 다음 정부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 대표는 “다음 정부는 최소한 디지털 성범죄 같은 젠더폭력 피해자가 일상을 회복할 수 있게 해주는 정부가 돼야 한다”고 했다.
장애인 “범죄자 낙인찍는 기조부터 바꿔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9월 13일 오전 서울 용산역에서 추석 귀성 인사를 하던 도중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의 7대 장애인권리입법 제정 호소를 듣고 있다. 공동취재단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장애 인권 활동가들은 “윤 대통령 탄핵은 장애인 인권을 약탈한 정부에 대한 탄핵”이라고 못박았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대표는 “윤 정부는 장애인 탈시설 정책을 약화하고, 이동권 운동을 폭력 조장 운동이라고 낙인찍었으며, 중증 장애인 노동자 400명을 일자리에서 해고했다”며 “장애 인권 ‘약탈자’나 다름없었다”고 비판했다.
전장연 활동가 2명은 지난달 사무실에 찾아온 남성에게 폭행을 당했다. 피해자 A씨는 이 사건이 정부의 장애인 ‘낙인찍기’와 무관치 않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1월부터는 지하철에 탑승하지 않고 역사 안에만 있어도 공권력이 강압적으로 휠체어를 끌어내는 일이 반복됐다”며 “국가가 장애인을 강제로 치워도 되는 존재라는 신호를 주니까 혐오범죄까지 등장한 것”이라 했다.
계엄 해제 다음 날 장애인들은 “탄핵”과 “장애인 권리 입법·예산 보장”을 외치며 국회 본관 계단을 포체투지(땅에 몸을 던져 기어감)로 올라갔다. 이곳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연 비상시국대회가 열렸다. 비상시국대회 참석자들은 장애인들이 탄핵을 외치면 환호하다가도 장애인 권리를 외치자 일부에서 야유가 나왔다고 한다. 박 대표는 “장애인 인권과 예산이 보장되지 못한 데에는 민주당 역시 책임이 있다”며 “누가 대통령이 되든 장애인도 시민으로 민주주의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활동가 “기후 위기 현실부터 직시하라”
한제아 아기 기후 소송 청구인이 지난 8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후 헌법소원 최종선고 관련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환경활동가들은 “윤 대통령 탄핵은 기후 위기를 외면한 정권의 몰락”이라고 평가했다. 아기기후소송 등 각종 기후소송을 대리해온 윤세종 변호사는“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급격히 줄여 1.5도 목표를 달성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기후 변화가 결정된다는 게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과학자들의 지적인데 윤 정부는 산업계의 탄소배출 감축 목표를 오히려 줄였다”라며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하고 기후변화를 외면해도 괜찮은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의무 위반”이라고 말했다.
이제 생후 26개월 유아가 된 ‘딱따구리(태명)’가 배 속에 있을 때 아기기후소송에 참여한 어머니 이동현씨(42)는 “윤 대통령은 대선 당시 배출권 거래제 강화를 공약으로 내세웠으면서도 구체적인 정책 논의는 전혀 하지 않았다”며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감축하지 못하면 아이가 27살이 되는 2050년에는 더 큰 짐이 떠넘겨질 것”이라 했다.
이들은 “탄핵 이후는 에너지 정책 기조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재생에너지 투자를 줄이거나 ‘대왕고래’ 프로젝트처럼 시대를 역행하는 정책을 멈춰야 한다”고 했다. 윤 변호사는 “기후 위기로 우리 자녀들이 얼마나 부담을 지게 될지에 대해서조차 제대로 고민할 기회가 없었다”라며 “정부가 나서 내년 기후변화총회까지 계획을 진전시킬 수 있도록 밑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역사학계 “역사 왜곡하는 기관장들부터 바꿔라”
서울 용산역 광장 강제징용노동자상 모습. 성동훈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역사학계에서는 “반헌법적 계엄과 탄핵은 윤 정부 역사 왜곡의 연장선에 있는 사건”이라고 분석했다. 경기 화성시 창의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이종관 교사(44)는 “윤 정부가 그간 우리가 가르치고 배워온 역사와 배치되는 주장을 한 것은 이번 비상계엄 사태만이 아니었다”며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서도 정부는 친일외교 기조에 맞춰 국민이 배워온 역사 상식과는 괴리되는 주장을 했다”고 비판했다.
역사 왜곡 주장을 해온 이들이 정부기관장을 맡고 있는 사태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안병욱 전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은 “진실화해위원회 같은 기관은 과거 민주화 운동의 성과로 만들어졌는데 과거의 독재 정치를 옹호하는 기관이 돼가고 있다”며 “한국학중앙연구원에도 식민지를 미화하고 민족의 자주성·주체성을 훼손하는 뉴라이트 인사를 임명하는 등 비상식적인 일들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 교사도 “역사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기관들을 뉴라이트 인사로 채운 것부터 바꿔야 한다”며 “이번 비상계엄 사태도 위헌이자 민주주의 역사 파괴라는 것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예슬 기자 brightpearl@kyunghyang.com,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오동욱 기자 5dong@kyunghyang.com, 김정화 기자 clean@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계엄해제, 탄핵 순간 사라진 국회의원은 누구?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