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내란범 윤석열 퇴진 시민 촛불’ 집회에서 한 시민이 손팻말로 촛불을 지키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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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화 | 연쇄창업가
비상계엄이 가져온 충격파가 여전하다. 기실 긴급한 상황 자체는 그날 밤 국회에서 신속하게 계엄 해제 요구가 의결되었을 때 이미 종료된 것이나 다름없다. 말 그대로 게임 오버. 또 다른 계엄령이나 내란 발발에 대한 우려가 나라를 뒤흔들었지만 기우였을 뿐이다. 비밀리에 단행한 계엄조차도 시종일관 허술하게 임했던 무능한 작자들이, 모든 것이 들통난 뒤 뭔가를 더 잘 수습하기란 실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이제 탄핵이 됐든 구속이 됐든 끝까지 책임을 묻고 철저하게 징벌하는 일만 남았을 뿐이다.
이번 사태를 두고 충격을 넘어 공포심을 토로하는 이들도 많다. 애써 쌓아온 민주주의의 공든 탑이 한순간에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물론이고, 군대를 동원하는 통치 권력의 제도적 폭력성이 실시간으로 환기된 이벤트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냉정히 봤을 때 이 우스꽝스러운 부조리극 같았던 내란 시도는 한국의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안정성을 재확인시켜준, 예기치 않은 ‘스트레스 테스트’로 작용했다. 여당 일부의 내통을 의심하게 하는 의도된 혼선에도 불구하고 당일 국회에서 신속하게 계엄 해제가 이뤄진 점. 톱다운으로 명령이 하달되는 과정에서 개개인에게 프로그래밍된 시민사회의 상식성이 여과 필터로 작용해 부당한 명령을 사실상 지연하고 무력화한 점. 그 결과 적잖은 충격파에도 불구하고 국민 경제와 시장의 외상이 완화됐던 점 등이 돋보였다.
어느 사회든 손바닥에 임금 ‘왕(王)’ 자를 새기고 등장해 그 옆에 개 ‘견(犭)’을 스스로 덧붙이는 미치광이가 권력을 차지할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게 포스트모던 정치의 세계적 추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만 해도 부정선거 음모론으로 초유의 의사당 점거 폭동이 벌어지지 않았던가. 다만 그런 돌발사태가 일어났을 때 어떤 회복탄력성이 어느 정도 발휘될 수 있는가가 그 사회와 정치 시스템의 안정성을 드러내준다. 향후 탄핵심판과 내란죄 특검 등에서 더 확인해야 할 대목이다.
다만 이 스트레스 테스트는 1987년 이후 우리가 채택해온 권력제도, 즉 승자독식의 대통령(단임)제의 안정성과 적절성에는 심대한 의문을 품게 만든다. 21세기 들어 권좌에 오른 5명의 전현직 대통령 가운데 2명이 투옥됐고, 1명은 스스로 세상을 떠났고, 1명은 이제 탄핵심판을 앞두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가족과 측근 관련 수사에 휘말려 있다. 그가 적폐 청산을 위해 중용했던 조국, 윤석열 두 사람은 순차적으로 영어의 몸이 될 공산이 크다. 탄핵 직후 국민적 열망을 등에 업고 임기를 시작한 대통령조차도 진정한 의미의 공화국을 만드는 데 이르지 못하고, 진영전쟁 가속화를 지켜봤다는 사실이 새삼 뼈아프다.
6공화국 출범 이후 정부들은 상대방의 정책을 적극 수용했거나 공동정부의 협치 등으로 공화주의적 가치에 기반했을 때 그나마 성과를 남겼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강조하면서도, 승자독식에 따른 진영의 권력 사유화로 공화주의적 가치를 심대하게 훼손하는 오류에 빠진 경우 성과를 내기가 힘들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게 어불성설이라는 건 상식이다. 보안에서 단일 장애점 또는 실패점이란 시스템 전체를 위태롭게 만들 취약점이 있는 구조를 일컫는다. 우리가 구축해온 민주공화국 시스템을 가장 반복적으로 위협하는 요소는 바로 ‘승자독식의 대통령제’라는 게 다시 한번 확인됐다. 이 사태를 수습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번에야말로 좋은 대통령을 뽑으면 다 해결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멍청이거나 사기꾼일 가능성이 크다. 단일 실패점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유일한 길, 개헌이 그 시작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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