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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 (월)

[중앙시평] 탄핵 가결 이후 우리 사회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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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때로는 외부의 시선이 날카로울 수 있다. 영국 신문 가디언은 ‘12·3 비상계엄 사태’를 ‘기괴하고 끔찍한 시도’라고 보도했다. 미국 AP통신은 6시간 만에 끝난 이 사태를 ‘한국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타전했다. 이후 국회 탄핵안 가결까지의 시간은 국민 다수의 뜻을 따르는 예정된 경로였다. 민주주의가 국민이 주인인 정치 제도임을 우리 사회는 다시 한번 생생히 증거했다.



계엄, ‘초현실적 위험정치’의 초상

제도·시민 투트랙 민주주의로 극복

비상 대응 거버넌스 체제 구축해야

87년 체제의 극복 위한 개헌 고민을

2년 전 나는 미국 스탠퍼드대학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에서 신기욱 소장과 함께 『South Korea’s Democracy in Crisis(위기의 한국 민주주의)』를 편집해 출간한 바 있다. ‘비자유주의, 포퓰리즘, 양극화의 위협’이 부제였다. 우리 두 사람은 주기적 선거의 절차적 민주주의는 물론 행정부와 입법부 간의 권력 균형이 작동하고 있음에도 서로를 부정하는 진영정치와 불평등 해결에 무력한 정부 및 정당의 신뢰 하락이 우리 민주주의를 위기로 들어서게 한다는 사실을 주목하고 강조했다.

3일부터 14일까지의 11일 동안 계엄과 탄핵 과정을 지켜보며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하나는 민주주의 위기가 어떻게 나타나느냐다. 『위기의 한국 민주주의』의 ‘서문: 한국 민주주의의 쇠퇴’에서 우리 두 사람은 민주주의 위기의 구체적인 신호로 다섯 가지를 들었다. 상대 정치세력의 부정과 악마화,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 ‘이중 잣대’에 따른 민주주의 게임 규칙의 훼손, 시민사회의 지나친 이념 대결 구도, 국수주의적 포퓰리즘이 그것들이었다. 그런데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도 지적한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로 우리 민주주의가 위기를 겪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비상계엄을 발동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초현실적 위험정치’가 바로 2024년 우리 사회의 초상이었다.

다른 하나는 우리 민주주의의 회복 탄력성이 놀라웠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해낸 것은 시민사회와 정치 제도의 힘이었다. 12월 3일 밤 시민들은 간절함으로 국회를 지켜냈고, 국회는 제도적으로 계엄을 저지했다. 민주주의는 제도와 의식이 함께 가는 시스템이다. 14일 탄핵안 가결까지 시민사회는 거리와 일터에서 탄핵을 적극적으로 응원했고, 정치사회는 이에 호응해 ‘지극히 위험한 대통령’의 직무를 합법적으로 정지시켰다. 상호작용하며 시너지를 발휘하는 ‘제도정치와 시민정치의 투 트랙 민주주의’는 바로 우리 민주주의 회복 탄력성의 원천이었다.

14일 탄핵안 가결을 분기점으로 ‘탄핵 심판의 시간’이 열렸다. 여기에 2016~17년의 경험을 돌아보면 ‘대통령 선거의 시간’이 더해질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은 헌법재판소가 180일 이내 최종 심판을 내리겠지만, 탄핵 심판 이후 60일 이내 새 대통령을 선출해야 하는 만큼, 심판의 시간과 선거의 시간이 중첩돼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 탄핵안 의결 이후 우리 사회에 부여된 중대한 과제는 두 가지다. 먼저, 탄핵 심판의 기간은 불확실성의 시간이다. 불확실성의 시간을 가능한 줄이고 국가 정상화를 빨리 이뤄내야 한다. 따라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은 물론 윤 대통령의 내란 혐의 수사가 엄정하고 신속하게 진행돼야 한다. 또한 정부와 여당, 그리고 야당은 당파적 이익을 넘어 국가적 이익을 우선시해 경제·사회·국제관계로 번진 위기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국정의 양축을 이루는 경제와 외교·안보 영역에서 여·야·정은 물론 주요 관련 단체들이 참여하는 비상 대응 거버넌스 체제를 구축하고 운영해야 한다.

한편, 탄핵 심판 과정의 수면 아래에서는 실질적인 대선 경쟁이 서서히 본격화할 것이다. 현재 우리 민주주의가 마주한 현실은 관용과 공존을 거부하는 비자유주의, 적대적 균열을 선동하는 포퓰리즘, 불평등의 구조화와 진영정치의 공고화로 나타나는 경제·정치적 양극화로부터의 위협이다. 이러한 현상들이 가리키는 것은 87년 체제의 한계다. 87년 체제의 5년 단임 제왕적 대통령제를 넘어설 새로운 권력 구조와 정치 질서를 마련하지 않으면 우리 민주주의는 2016년과 올해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위기를 반복해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두 힘은 제도와 의식이다. 내년 봄과 여름 언젠가 대선이 치러진다면, 그 대선의 주요 의제 중 하나로 87년 체제를 극복할 개헌의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포함해야 한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탄핵안 가결 후 마무리 발언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는, 우리의 희망은, 국민 속에 있습니다. 희망은 힘이 셉니다”라고 말했다. 김광규 시인은 시 ‘희망’에서 희망이 “누군가 우리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얻고 지켜야 할”것이라고 노래했다. 지난 11일의 기간은 싸워서 얻고 지켜낸 우리 민주주의의 힘과 희망을 재발견한 시간이다. 희망은 힘이 강하다. 희망을 품은 이들만이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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