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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 (월)

[일사일언] 프리미어리그 안 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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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스포츠 팀들이 대기업 소유일 뿐 아니라 팀 이름도 기업 이름을 따서 짓는다는 사실에 놀랐다. 내가 살던 곳에서는 가장 성공한 축구팀조차도 아마추어 리그에서 시작됐다. 예를 들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는 철도 노동자들이 결성한 팀에서 시작됐고, 에버턴은 교회 팀으로 출발했다.

어렸을 땐 맨유를 응원하면서도 몰랐지만 훗날 맨체스터라는 도시의 문화와 역사와의 연결성이 내가 그들을 지지할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특히 맨유는 유소년 팀에 큰 비중을 두며 지역 출신의 젊은 선수들을 발굴해 1군 선수로 키워내는 전통이 있었다. 맨체스터에서 자란 나도 축구를 잘했다면 그 팀에서 뛸 기회가 있었을지 모른다.

요즘 맨유는 미국 사모펀드 기업가들이 대부분 소유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출전하는 유소년 출신 선수는 한두 명에 불과하다. 선수들은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이적됐다가 2~3년 뒤 또다시 다른 팀으로 이적한다. 그 돈은 어떻게 충당될까? 모든 것에 스폰서가 붙는다. ‘공식 블록체인 파트너’ ‘공식 와인 파트너’ 심지어 ‘공식 글로벌 매트리스 및 베개 파트너’까지 있다. 물론 TV 구독료와 비싼 경기 입장료로도 매출을 창출한다.

한때 노동계급의 스포츠였던 축구는 이제 경기를 보려면 최소 66파운드(약 12만원)가 든다. 어린이를 위한 할인 티켓도 최근 사라졌다. 아이 둘 데리고 올드 트래퍼드 경기장에 가려면 티켓 값과 핫도그·음료를 포함해 40만원가량 든다. 서민들에겐 두 가지 선택지뿐이다. 다른 모든 여가비를 포기하거나 맨유를 포기하거나.

오래된 팬들은 점점 사라지고 그 자리를 관광객과 기업 접대 손님들이 채운다. 그래서 경기장의 분위기가 장례식과 비교될 만큼 침울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경기를 관람하는 사람들은 응원가조차 모른다. 내가 듣기로는 다른 빅클럽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다.

결국 프리미어리그는 영국의 또 다른 유명 수출품인 콜드플레이와 비슷해졌다. 더 화려해진 대신 영혼을 잃어버렸다. 맨유나 맨체스터 시티를 응원하는 것은 마치 블랙스톤그룹이나 사우디 아람코를 응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맨체스터라는 지역 문화와는 완전히 단절돼 누가 이기든 별로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 나는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거의 보지 않는다.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소설 ‘마지막 왕국’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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