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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 (월)

[MT시평]트럼프와 프로레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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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동규(국제시사문예지 PADO 편집장)




미국 대선이 미국 주류 언론의 예상과 달리 도널드 트럼프의 압승으로 막을 내렸다. 미국 주류 언론은 트럼프를 '이상한'(weird)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미국 국민 다수는 또다시 그를 선택했다. 그는 정말 이상한 사람일까. 트럼프와 관련해서 이상한 것 중 하나가 그의 프로레슬링 참여였다. 그는 언젠가 프로레슬링 CEO 빈스 맥마흔과 치고받는 쇼를 벌인 적도 있고 맥마흔 부부와 가깝게 지내며 린다 맥마흔을 집권 1기 때는 중소기업청장에, 2기 때는 교육부 장관에 지명했다. 트럼프는 프로레슬링뿐만 아니라 복싱경기를 유치하거나 종합격투기 해설을 맡을 정도로 이 거친 '격투' 스포츠를 애호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도대체 트럼프의 세계관과 격투 스포츠는 어떤 관련성이 있을까. 트럼프의 세계관을 이해하려면 바이킹, 해적, 서부개척 같은 키워드에 주목해야 한다. 서구의 폭넓은 '계약의 자유'도 이해해야 한다. 국가의 보호에만 익숙한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관이다. 북유럽 바이킹, 중앙아시아 노마드의 세계관이다. 한반도처럼 산이 많은 곳은 노예제가 자리잡기 쉽다. 노예가 탈출해봤자 산이나 강의 길목만 차단하면 쉽게 잡을 수 있다. 하지만 망망대해나 중앙아시아 초원 같은 곳에서는 도망치면 못 잡는다. 그래서 이런 곳의 사람들은 모두 '자유로운 영혼'이다. 이들은 국가의 보호가 없기에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하고 다른 사람들과는 힘으로 싸우거나 거래와 계약을 통해 관계를 맺어야 한다. 이들은 약한 자를 만나면 해적이 되고, 강한 자를 만나면 무역을 했다. 이들은 힘을 쓰는 용맹함과 계약 또는 거래를 하는 영리함을 배웠다. 이 용맹함과 영리함으로 이들은 북유럽에선 민주주의를 했고 약한 나라를 대상으로는 제국주의를 했다. 영국은 세계적인 해적국가였다. 멕시코 은을 본국으로 운송하는 스페인제국의 은 수송선을 카리브해에서 습격하는 해적들도 대개 영국인이었는데 북미대륙에 내려서는 서부개척에 나섰다. 광활한 대륙은 또 하나의 바다였다. 이들은 태평양 연안에 이르자 이젠 실리콘밸리를 세워 인터넷의 바다에서 또다시 해적 겸 무역상이 됐다. 실리콘밸리의 피터 틸이나 일론 머스크는 트럼프의 세계관에 공감해 그를 지지했다. 국가의 보살핌이 없는 바이킹, 해적, 서부개척의 세계에서는 힘과 힘의 충돌, 그리고 오직 거래와 계약만이 질서를 만들어낸다. 그런 세계에서는 미리 계약만 돼 있다면 목숨을 건 결투가 허용된다. 국가의 보호에 익숙한 우리는 상대방을 죽일 수도 있는 계약을 결코 허용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결투가 지금은 레슬링, 복싱, 종합격투기가 됐고 종종 경기 중 사망자가 발생하지만 아무도 처벌받지 않는다. 우리의 법감정으로는 '과실치사'일 텐데 북유럽과 미국 사람들은 이렇게 '계약의 자유'를 넓게 본다.

작은 정부와 '거친 서부'식의 자유를 중시하는 트럼프에게 자신의 정치사상을 일반 대중에게 보여주는 가장 좋은 상징물이 격투 스포츠일 것이다. 미국인들이 왜 프로레슬링을 좋아하는지를 이해해야 트럼프의 대선 승리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미국 사회의 원동력과 그림자를 함께 이해할 수 있다.

김동규 (국제시사문예지 PADO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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