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미국에 올 때만 해도 투자 아이디어를 많이 주고, 기업 탐방 가는데 도움이 되는 월가(Wall Street)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착각이었다. 우리나라만 해도 같은 아파트 사는 이웃과 친해지는 것조차 어렵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과라고 느껴지는 네트워킹은 현지에서 투자에 관심 있는 대학생을 많이 만난 것이다. 이들은 더퍼블릭자산운용 미국 지점에서 일하며 더퍼블릭자산운용의 미국 시장 공략을 도울 것이다.
불과 서른 나이에 자산운용사 더퍼블릭자산운용을 창업, 10년간 회사를 이끌던 김현준(40) 대표는 회사의 미래가 해외 투자에 있다고 보고 올해 4월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주식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발굴”이라며 “주가는 기업의 가치를 따라가는데 제아무리 훌륭한 분석이나 매매 기법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좋은 기업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성과가 낮기 마련”이라고 강조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보다는 미국에 좋은 기업이 많을 것이라고 보고 가까이에서 살펴보고자 미국행을 택한 것이다.
김 대표는 고려대 가치투자동아리 ‘KUVIC(큐빅)’에서 투자의 기초를 닦았고, 졸업 후 가치투자의 명가로 꼽히는 VIP투자자문(현 VIP자산운용), 키움증권 투자운용본부 등을 거쳤다. 이후 2014년 김 대표는 더퍼블릭자산운용을 설립했다. 올해 펀드 수익률은 국내형 16%, 해외형 35%라고 한다.
더퍼블릭자산운용 김현준 대표. /더퍼블릭자산운용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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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우리나라 경제는 중간재를 수출하는 대기업 중심으로 이뤄져 어쩔 수 없이 외부 환경의 변화에 취약하다”면서 “반면 미국 경제는 내수와 최종 소비자의 비중이 높기에 예측 가능성이 높고 소비자 독점력을 가진 기업이 많다”고 했다.
이어 그는 “게다가 미국 기업은 달러화와 영어 패권을 무기로 세계 시장 진출이 용이하다. 거대한 내수 시장을 캐시카우(Cash Cow·수익 창출원)로 삼아 수출이라는 장기 성장성까지 겸비한 셈”이라며 이런 시장에서 소비자가 어떤 재화와 용역을 선호하는지 알기 위해 미국에 왔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김 대표와의 일문일답.
─미국에 나와보니 어떤가.
“한국 투자자와 미국 투자자 간 생각 차이가 컸다. 한국 사람들은 ‘투자한다’고 하면 대부분 주식이다. 물론 젊은 세대는 일부 가상자산에 투자하지만 주식이 베이스다. 그리고 개별 종목이든 상장지수펀드(ETF)든 직접 투자한다. 또 기대수익도 상당히 높다. 그러다 보니 ‘박스피’ 안에서 경제성장률보다 많은 수익을 노리고 투기성 매매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미국 투자자는 보통 ‘투자’라고 하면 주식 직접 투자를 떠올리지 않는다. 당연히 연금 계좌에서 ETF를 산다고 생각하더라. 본업에 집중하고 간접 투자해도 충분하다는 인식이 대부분인데, 상대적으로 무지하게 볼 수 있지만 결과론적으로 보면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기업 탐방이나 투자자 행사 등 문화가 한국과 다르다고 들었다.
“한 보험 회사의 연례 투자자 총회(Annual Investors’ Day)에 다녀온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대기업만 이런 행사를 열고, 증권사 애널리스트들도 날카로운 질문을 잘 안한다. 그런데 미국은 중소 기업도 이런 행사를 여는 경우가 많고 행사 전체 영상이나 질의응답 속기록까지 홈페이지에 공개하더라.
개인적으로 놀란 점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한국에선 기업공개(IPO) 간담회 정도여야 볼 수 있을 많은 수의 임직원이 참석했다는 것이다. 다음으론 대형 증권사 애널리스트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온 투자자가 다양하고 식견 높은 질문을 하더라는 점. 무엇보다 이 행사가 적어도 9시간은 지속됐다는 점도 놀라웠다. 투자자들은 점심시간에도 회사가 준비한 푸드트럭 피자를 들고 기업 관계자와 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더퍼블릭자산운용 홈페이지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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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퍼블릭자산운용의 투자 원칙이 궁금하다.
“능력의 범위 안에서 좋은 기업을 찾고, 가능한 한 싸게 사는 것이다. 크고 당위적인 성장이 예상되는 잠재 시장, 소비자 독점력을 가진 강력한 제품과 서비스, 그리고 단위 매출액의 성장보다 단위 영업이익의 성장이 빠른, 이른바 영업 레버리지가 높은 기업을 선호한다. 이런 기업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집중 투자를 한다.”
─이 원칙을 지키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수익률이 나쁠 때는 욕을 먹기도 하고, 구차한 변명을 들어 도망가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솔직하게 설명하고 시간이 지나 투자 아이디어가 좋은 수익률로 연결되는 사이클을 경험하고 나면 고객들의 신뢰가 격이 다르게 커진다. 예를 들어 해외 상품의 수익률은 올해 1월부터 현재까지 35%로, 연간 목표 수익률인 26%를 넘겼다. 그런데 사실 상반기 수익률은 마이너스(-) 10%였다. 이때 회사와 고객 간의 신뢰의 고리가 약했다면 하반기 수익률 51%를 놓쳤을 거다.
그리고 여의도 사람들과의 미팅이나 모바일 메신저 사용을 꺼린다. 투자 철학이 점점 단단해지면서 속칭 여의도 네트워크나 정보가 투자에 도움을 주는 빈도는 낮아지고, 오히려 거시 경제나 주식 시장 전반 또는 최근 트렌드에 대한 소음을 얻는 일만 많아지더라. 굳건한 투자 철학과 적당한 기대 수익률만 가진다면 소음은 투자 성과에 전혀 도움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수익률은.
“올해 들어 국내 16%, 해외 35%다. 같은 기간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는 각각 -9%, -22% 하락했다. MSCI ACWI는 19% 상승했다. 올해 상반기만 놓고 보면 국내 16%, 해외 -10%지만 하반기엔 국내 0%, 해외 51%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국내 주식에선 상반기에는 주가가 급등한 전선 주식이나 K-푸드 관련주를 팔았다. 그렇게 확보한 현금으로 하반기에 이미 잘 아는 단단한 성장주 두 개와 향후 경기 확장 국면에서 혜택을 볼 수 있는 주식을 샀다. 해외 주식의 경우 상반기 미국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앱)과 자율주행차 기업에 투자했다.”
─최근 눈에 띄는 종목이 있나.
“3년 이상을 전망해 투자하려고 노력한다. 기본적으로 자주 매매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직도 투자하고 있고 주가가 크게 오른 종목 중 하나는 듀오링고다. 듀오링고는 2022년 챗GPT가 공개됐을 때 앞으로 언어학습은 인공지능(AI)이랑 할 것이라며 주가가 폭락했다. 그런데 자세히 분석해 보니 AI는 언어 학습 과정이 이용자 입장에서 생각보다 귀찮겠더라. 학습 때마다 새로 말을 걸어야 하고, 진도를 차근차근 나가는 것도 어려웠다. 반면 듀오링고는 공부를 하게 도와주는 구조였다. 주가가 떨어졌지만 기업가치는 유지된 상황인 셈이다.
결국 듀오링고는 주가가 3배 이상 올라 시가총액이 20조원을 넘었다. 우리나라에선 포스코와 맞먹는 대기업인데 미국에선 스몰캡으로 통하더라. 심지어 상장사인지도 모르는 헤지펀드 매니저도 있었다. 충분히 좋지만, 저평가된 기업이 외국엔 많다. 해외 투자를 하는 배경인 동시에 자신감을 갖고 있는 이유다.”
'유퀴즈온더블럭'에 출연한 김현준 더퍼블릭자산운용 대표. /유튜브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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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퀴즈에 출연한 이후로 주식 투자 관련 질문을 많이 받는 것 같다. 한국 주식시장은 반등할 수 있다고 보나.
“한국 주식 시장에 대해서는 낙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한국 시장에서 한국 고객을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객관적으로도 한국 주식 시장은 경기가 저점을 지나고 있는 데다 각종 대내외적 이슈로 인해 다른 국가 대비해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자본 시장에서 확실한 명제 중 하나는 순환이다. 그리고 이 순환의 흐름이 한국 주식 시장으로 오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개인 투자자들은 환호할 것이라 생각한다.”
─삼성전자 주식, 사야 하나.
“삼성전자와 반도체 산업의 전문가는 아니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이 반도체 가격에 따라 순환하는 경기 순환 산업이라는 것은 잘 안다. 그리고 현재 반도체 업황이 좋지 않고 많은 사람이 삼성전자에 대해 비관적으로 얘기한다는 사실은 안다. 이것은 매우 상식적이면서도 매우 매력적인 투자 기회라고 생각한다.
과연 6개월 전의 삼성전자와 지금의 삼성전자가 크게 달라졌을까? 아니면 인공지능의 발달 과정 또는 중국 기업들의 반도체 기술은 달라졌을까? 만일 6개월 전 또는 3년 전 삼성전자와 한국 주식 시장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투자자라면 지금 투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본다. 투자는 안 좋을 때 사서 좋을 때 파는 거니까."
정민하 기자(mi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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