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으로서는 12일 대국민 담화문에서 구구절절 밝힌대로 야당 폭거에 분개해 ‘욱’ 했다가 그들이 놓은 오래된 덫에 걸려든 셈이 됐다. 시민들은 그동안 야당의 잦은 폭주에는 분을 삭인 채 항거하지 않다가 ‘계엄’에 놀라 전국이 들썩인다. 윤 대통령이 장문의 해명을 내놔봐야 국민의 단잠을 깨운 불경죄를 씻긴 힘들다. 그가 “2시간짜리 내란은 없다”고 항변했지만 계엄 발표로 정치적 후진국행 위기를 느꼈을 국민의 좌절과 불쾌감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촛불행동이 탄핵 가결 이튿날인 15일 오후 행진 하고있다.2024.12.15[이충우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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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민주당은 틈을 주지 않고 탄핵과 고발, 김건희 여사 특검법까지 일사천리로 몰아붙이고 있다. 예전 같으면 3족(族)을 멸했을 무시무시한 ‘내란’이라는 단어도 입에 달고 산다. 그러다 보니 윤 대통령을 조금이라도 편들다가 내란 가담자나 방조자로 몰리지 않으려고 다들 애를 쓴다. 특전사령관·수방사령관은 사건 해명을 위해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유튜브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두 장성은 구속영장 청구를 피하진 못했다.
내란 불똥을 맞은 관료들도 처신이 힘들다. 고기동 행정안전부 장관대행(차관)은 “내란의 수괴가 누구냐”는 서영교 민주당 의원의 거듭된 질의에 몇 번을 머뭇거리다가 “(윤석열) 대통령으로 지금 논의가 되고 있다”며 요상한 화법으로 답을 했다. 내란죄로 고발된 한덕수 국무총리는 국회에서 “내란 공범이 어딜 감히 나오느냐”는 야유를 받았고, 박범계 민주당 의원한테는 “일생을 권력과 영화만을 좇지 않았냐”라는 치욕스런 말도 들었다.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오동운 공수처장에게 “내란의 수괴는 윤석열”이라며 오 처장 옆에 앉은 박성재 법무장관을 향해 “저 내란범도 같이 구속하라”고 외쳤다.
반면 윤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라디오방송 진행자 몇 명이 하차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다소 비약하면 과거 미국 내 공산주의자 색출을 위한 ‘매카시즘’이나 중공의 ‘문화대혁명’ 때의 섬뜩한 장면마저 떠오른다. 다들 말과 행실을 극도로 조심하지 않으면 잡혀갔었다.
형법은 87조에서 내란에 대해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이라고 규정한다. 91조 국헌 문란은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 소멸’,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해 전복 또는 그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미 권력을 가졌던 윤 대통령의 내란 혐의는 국가권력 배제가 아닌 국헌 문란일텐데 군인들의 국회 진입이 헌법기관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한 것인지가 쟁점이 될 것이다. 윤 대통령이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 의혹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헌법기관인 국회와 국회의원의 활동을 부당하게 막은 내란죄가 될지 모른다.
우원식 국회의장(오른쪽)이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를 접견하고 있다. 2024.12.15 [김호영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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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란죄 요건인 국가기관의 권능 행사를 막는 것은 정상적으로 운영중인 국가기관을 전제로 한다. 만일 그 기관이 본래 기능과 역할 대신 국정을 방해하는데 치중한다면 방임하는 게 자유민주주의의 헌법적 대의에 맞는지 따져볼 일이다. 헌법상 국가기관은 어떤 상황에서도 건드려서는 안되는 신성불가침 영역은 아닐 것이다. 국회가 선거를 통해 구성되고, 삼권 분립 차원에서 더 강한 보호가 필요하지만 탄핵·특검 남발과 각종 권한을 남용하는 행태는 헌법·법률이 상정한 정상적인 국회 모습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온전치 못한 국회에 물리력을 가해 헌법 전체의 가치 회복을 우선 순위에 두었다고 항변한다. 다만 국회 기능 복원이 중요하다고 해도 국회 권능을 막는데는 법적 엄격성을 갖추고 신중해야 한다. 다른 일상의 일들도 법 조문에 막혀 진행되지 못하는 게 어디 한두가지인가. 계엄 발동으로 국민 기본권이 제약될 위험은 또다른 큰 문제다.
위헌적 계엄 관련 탄핵심판이나 검찰 기소에 따른 내란죄 판단은 법학자들 간에도 의견이 갈린다. 그래서 일단 ‘무죄 추정의 원칙’이 기본이다. 본인과 그 가족, 집안 전체에 엄청난 트라우마이자 명예훼손이 될 내란죄를 쉽게 꺼내는 것은 정치적 선동이다. 탄핵소추가 끝났지만 거리에서는 여전히 ‘윤석열 파면’을 외치는 구호가 판친다. 이젠 검·경 수사 결과와 사법기관의 판단을 차분히 좀 기다리자.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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