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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 (월)

尹과 갈등 속 계엄 '태풍'…韓의 퇴진, 결정타는 '취약한 정치 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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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16일 당 대표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7·23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된 지 146일만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그로 인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유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여권의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였던 그의 정치적 미래도 불투명해졌다.

한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힘 당 대표직을 내려놓는다”며 “최고위원들의 사퇴로 최고위가 붕괴돼 대표로서 정상적 임무가 중단됐다”고 밝혔다. 이어 “탄핵으로 마음 아픈 지지자들에게 죄송하다. 탄핵이 아닌 더 나은 길을 찾으려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며 “모두 제가 부족한 탓”이라고 사과했다.

이날 한 대표는 회견 직전 깊은 한숨을 쉬었다. “비상계엄 사태로 고통받은 모든 국민께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할 때 한번, “탄핵으로 마음 아픈 우리 지지자들께 많이 죄송하다”고 말할 때 또 한 번 허리 숙여 90도로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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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16일 오전 국회에서 사퇴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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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비상계엄 반대, 대통령 탄핵 찬성’ 입장은 안 굽혔다. 한 대표는 “그날 계엄을 해제하지 못했다면 우리 시민과 젊은 군인 사이에 유혈사태가 벌어졌을 수 있었고, 저는 그런 일을 막지 못할까 봐 너무나도 두려웠다”며 “아무리 우리 당이 배출한 대통령이 한 것이라도 불법 계엄을 옹호하는 것은 위대한 나라와 보수의 정신을 배신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14일 의원총회에서 일부 의원의 격양된 사퇴 요구를 받고 나올 때 한 기자가 '탄핵 찬성을 후회하냐'고 물었다”며 “마음 아픈 지지자를 생각하면 고통스럽지만, 여전히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날 회견장에는 서범수·박정하·곽규택·한지아 의원과 김종혁 전 최고위원 등 친한계가 대거 자리했다. 최고위원직에서 물러난 친한계 장동혁·진종오 의원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친윤계 권성동 원내대표와 윤상현 의원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권 원내대표는 한 대표를 배웅하며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고, 한 대표는 “(당을)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답했다. 한 대표는 국회를 찾은 지지자들에게 “여러분 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한 뒤 국회를 떠났다.

이후 한 대표는 일부 친한계 의원들과 만찬을 가졌다. 한 대표는 “우리 의원들이 비상 계엄을 막아낸 것에 대해 국민들이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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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16일 오전 국회에서 사퇴기자회견을 하기 전 사퇴입장문을 꺼내고 있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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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퇴로 정치인 한동훈은 두 번째 쓴잔을 들이켰다. 지난해 12월 26일 여당 비상대책위원장에 임명된 그는 넉 달 뒤 총선 패배로 첫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석 달 만에 칩거를 깨고 당 대표 선거에 도전해 62.8%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재기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당원들이 총선 패배 원인을 정권 실책으로 봤기 때문에 가능했던 시나리오”라며 “하지만 이 직후 한 대표는 윤 대통령의 조력자가 아니라 대척점에 선 것으로 인식됐고, 이는 계엄 사태에서 양날의 검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윤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며 두각을 드러냈지만, 친윤계 등 당 주류에게 ‘적’으로 인식됐다는 것이다.

중도·수도권·청년(중수청) 공략과 ‘국민 눈높이’를 앞세운 한 대표의 출발은 괜찮았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가상자산 과세 유예 등의 정책 이슈를 적극적으로 발굴했고, 김건희 여사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면서 “보수의 고루한 정치 문법을 깼다”는 평가도 나왔다. 친한계 인사는 “극단적 보수층과 과감하게 결별하고 중도층을 포섭해 당을 확장하는 게 한 대표의 제1 목표였다”고 했다. 한 대표가 사퇴하며 “부정선거 음모론자, 극단적 유튜버에 동조하거나 그들이 상업적으로 생산하는 공포에 잠식당하면 보수에 미래가 없다”고 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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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표에서 사퇴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를 나서며 지지자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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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치 입문 후 악화일로로 치달은 윤·한 갈등은 고비마다 그의 발목을 잡았다. 한 대표가 제안한 2026년 의대 증원 유예안이 단칼에 거부당한 게 대표적이다. 공을 들인 여야의정 협의체도 공전 끝에 이달 초 중단됐다. “한 대표가 용산과의 갈등에 매몰돼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이 고개를 든 것도 이때쯤이다.

그러나 한동훈 대표 체제를 무너뜨린 결정타는 취약한 정치 기반이었다. 한동훈 체제 출범 당시 20명 안팎이던 친한계는 최근까지도 몸집을 불리지 못했고 여전히 비주류다. 한 대표의 불안정한 입지는 계엄 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사태 초반에는 친한계 의원들의 계엄 해제 요구안 표결을 이끌며 신속하게 대처했지만, 이후 탄핵 찬·반 입장을 바꿔 혼선을 자초했다. 8일 한덕수 총리와 공동 담화를 통해 밝힌 ‘공동 국정 운영’ 구상도 논란 속에 철회했다. 윤 대통령의 하야를 전제로 한 ‘질서 있는 퇴진론’도 아예 먹혀들지 않았다. 친한계 의원은 “당 주류를 설득하지 못하면서 스텝이 꼬였다”고 했다.

탄핵안 가결 직후 한동훈 지도부가 붕괴한 근본 원인도 친한계의 분열이었다. 친한계 핵심인 장동혁·진종오 의원이 막판에 한 대표에게 등을 돌리지 않았다면 지도부는 무너지지 않았다. 여권 관계자는 “변명의 여지 없이 리더로서의 정치력 한계를 노출한 것”이라며 “한 대표는 여전히 여권 유력 정치인이지만, 재기하려면 약점 개선이 필수”라고 지적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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