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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 (금)

[손병채의 센스메이킹] 〈75〉AI, '나'의 도구에서 '우리'의 중재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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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신문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2024년 한 해 동안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챗GPT를 활용한 흥미로운 사례들이 등장했다.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 한 국회의원은 대통령실 전화번호로 의심되는 '02-800-7070'에 대해 챗GPT에 질문해 보았다며 해당 검색 결과를 바탕으로 답변을 촉구해 상대를 압박했다. 또 다른 의원은 로또복권 당첨번호 예측 시스템 특허의 타당성을 문제 삼으며, 챗GPT에 당첨번호 예측 가능성을 물어봤고, 챗GPT가 “예측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제공했다고 언급하며 특허 심사 과정을 지적했다. 이 질의를 통해 해당 특허는 결국 취소 결정이 내려졌다.

이 사례들이 보여주는 공통점은, AI의 답변이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공공의 논의와 정책 결정 과정에서 근거로 활용되었다는 점이다. 챗GPT는 특정 맥락에서 보편적 관점을 빠르게 제시하며, 이를 통해 논의를 촉진하고 문제를 재구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AI가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도구를 넘어, '정상(normal)'의 기준을 전달하고 사회적 논의의 출발점을 마련하는 데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학자들이 오랫동안 연구해 온 집단지성은 개인이 아닌 다수의 사람들이 협력하고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거나 목표를 달성하는 능력을 말한다. 나무위키나 위키피디아처럼 많은 사람들이 협력해 정보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플랫폼은 집단지성의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는 이러한 정보를 확인할 때 반드시 완벽히 정확하기를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리고 이제 AI가 이 집단지성의 빠른 확인과 표현에 사용되는 현상을 우리는 목격하거나 직접 참여하고 있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현재 AI는 주로 개인적인 관계에 초점을 맞춘 사례가 대부분이다. 비서, 코치, 대화 친구 등으로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AI의 진정한 강점은 인간 사회의 집단적 지혜를 바탕으로 특정 맥락에서 '정상'으로 여겨지는 것을 즉시 설명하고 전달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 이러한 능력은 단순한 개인 지원을 넘어 AI를 협력과 연결의 도구로 만들어준다. 우리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실시간 연결된 환경 속에서 주변 사람들의 평균적 인식과 이해 수준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AI는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대다수의 사람들이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거나 생각하는지, 관련된 질문에 어떻게 답할 것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AI가 집단지성을 기반으로 메시지 전달 방식을 제안하거나, 특정 그룹 간의 합의와 공통점을 찾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며 새로운 협업 방식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AI의 이러한 가능성은 단순히 개인적 편의를 넘어 집단적 효율성과 창의성을 강화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AI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의견을 분석하고 종합하여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거나, 다문화적 배경을 가진 팀 내에서 문화적 차이를 중재하며 협력의 공통 기반을 형성할 수 있다. 이는 기업, 학술 연구, 공공 정책 등에서 AI의 역할을 확장시킬 수 있는 중요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AI는 중재자, 촉진자, 공간 제공자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며 인간이 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새로운 연결과 협력을 촉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재난 상황에서 AI는 실시간으로 현장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자원 배분 전략을 제안할 수 있다. 피해 지역의 구조 요청, 자원 분포 상태, 인프라 손상 정도를 기반으로 응급구호팀이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경로를 설계하거나, 자원 부족이 예상되는 지역을 미리 파악해 배분을 조정할 수 있다. 정치적 갈등 상황에서는 AI가 중립적 위치에서 갈등 당사자들의 발언 패턴을 분석하고 공통 관심사를 도출해, 합의 가능성을 높이는 대화 구조를 제안할 수도 있다. 이러한 활용은 기술의 중립성을 기반으로 논의 과정을 체계화하고, 감정적 요소를 최소화하며 생산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가 '나'가 아닌 '우리'를 위해 설계되고 활용될 때, 인간 간의 연결을 증진하고 사회적 협력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가능성은 분명해 보인다. AI는 단순히 더 빠르게 일하거나 더 많은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AI는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중재자로 설계될 때, 인간 사회의 집단지성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새로운 사회적 연결을 창출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도구가 될 것이다.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ryan@reasonofcreativi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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