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 외국인은 계속해서 국내 주식을 팔고 있어서다. 해외 투자자 입장에선 계엄으로 한국이 ‘안정적인’ 신흥국으로서의 투자 매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내 기업의 실적이 좋은 것도 아니라서 외국인 투자자의 탈출 가속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김병환 금융위원장/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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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 증안펀드 투입까지 불사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조치하진 않았다. 증안펀드는 코스피200과 같은 증권시장 전체를 대표하는 지수 상품을 최대 10조원 규모로 사는 펀드로, 추가적인 주가 하락을 막는 역할을 한다.
금융위가 증안펀드를 시장에 풀지 않은 건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라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 관계자는 “시장 상황을 보면서 투입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변동성이 심화됐을 때 (본격 투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겠다”라고 설명했다.
증안펀드는 규모가 워낙 커 금융당국이 이번처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패닉셀(공포 매도)을 예방할 수 있다. 코로나19 당시 금융위가 증안펀드를 검토하고 있다고 알리면서도 실제로는 투입하지 않았던 것도 이런 효과를 노린 것이다. 지수가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면 이번에도 코로나19 때와 비슷하게 흐를 전망이다.
실제로 수치만 놓고 보면 코스피·코스닥 지수는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 비상계엄 직후인 이달 4일부터 17일까지 코스피 지수는 1.73% 내렸고, 코스닥 지수는 0.53% 올랐다. 과거 금융위가 증안펀드를 시장에 푼 경우와 비교하면 양호한 수준이다. 가장 최근에 증안펀드가 집행된 건 금융위기 때였던 2008년 11월인데, 당시 코스피 지수는 투입 직전 8거래일 내내 하락 마감했고 이 기간 코스피 지수는 16.29%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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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수가 큰 타격을 받지 않는 이유를 뜯어보면 금융당국이 안심할 순 없는 상태다. 국민연금과 같은 연기금이 받치고 있는 양상이라서다. 개인과 외국인은 모두 국내 주식을 정리하고 있다. 계엄령이 선포된 직후부터 현재까지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에서 개인은 1조9506억원, 외국인은 1조5136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피치는 이달 6일 한국의 신용등급 강등을 우려하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피치는 “정치적 위기가 장기화하거나 지속적인 정치적 분열로 정책 결정의 효율성, 경제적 성과 또는 재정이 약화될 경우 (신용)하방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주일 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피치를 포함한 글로벌 신평사들은 한국의 신용등급이 안정적이라고 평했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의 실제 투자심리는 그렇지 않다.
한 외국계 헤지펀드 관계자는 “한국에 투자하려던 싱가포르 헤지펀드가 (계엄령으로) 관망세로 포지션을 바꿨다”며 “대만, 중국 등 한국을 대체할 투자처는 너무 많다”고 했다. 한국은 신흥국으로서 ‘중위험 중수익’ 투자처였지만 한 차례 정치적 사고가 터지면서 수익에 비해 위험이 더 큰 나라가 됐다는 뜻에서다.
개인과 외국인이 판 물량 중 1조6921억원은 연기금이 받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지수 급락을 막기 위해 국민연금이 동원됐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학계 관계자는 “과거엔 시장이 빠지면 자동 매수하는 것처럼 국민연금이 들어와 구원투수론까지 나온 적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동원 가능성에 대해선 “저점 매수 가능성도 있어서 기금이 수익성 외에 어떤 판단으로 매수 중인 것인지는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밝지 않은 기업의 실적 전망도 지수 안정화의 걸림돌이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땐 IT, 커뮤니케이션 등 주요 기업의 이익이 증가하던 때라 탄핵안이 가결되고도 지수는 올랐다.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날부터 넉 달간 코스피 지수는 5.94% 뛰었다. 그러나 이번엔 쉽지 않다는 게 증권가 중론이다.
금융정보 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가 3곳 이상의 실적 전망치가 존재하는 상장사 232곳의 4분기 영업이익 합산액은 54조7454억원으로 3개월 전(62억9901억원)보다 8조원 넘게 증발했다. 반도체 수요 부진으로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이 기간 29.7% 쪼그라들고 SK하이닉스도 3.5% 후퇴한 데 따른 것이다.
정상휘 흥국증권 연구원은 “현시점 기업 이익과 밸류에이션, 외국인 수급 흐름을 살펴보면 세 요인 모두 악화하고 있는 흐름이 관측된다”며 “(과거 박 대통령 탄핵 때보다 현재는) 증시 환경 자체가 더 안 좋고 상승장으로의 전환도 꾀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고 분석했다.
☞증안펀드
증안펀드는 캐피털콜(실제 투자할 때 자금 납입) 방식으로 코스피200과 같은 증권시장 전체를 대표하는 지수 상품에 투자하는 펀드다. 5대 금융지주를 포함한 23개 금융회사와 한국거래소와 같은 증권유관기관의 자금을 재원으로 한다.
문수빈 기자(bea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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