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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내란사태와 관련해 군 고위 인사들이 대거 구속됐다. 구속된 이들은 모두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이른바 ‘충암파’(윤석열 대통령의 충암고 인맥)와 ‘용현파’(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그 후배들)로 의심받는 군인들이다. 1993년 3월 김영삼 대통령의 전격적인 하나회 척결로 군내 정치군인들의 사조직이 사라졌을 것이라는 시민들의 기대는 31년 만에 산산조각이 났다.
지금까지 구속된 군 고위 인사는 김용현 전 장관(육사 38기)과 박안수 육군참모총장(46기), 곽종근 특수전사령관(47기), 여인형 방첩사령관(48기),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48기)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41기)도 17일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김용현은 경호처장 시절부터 윤석열을 후광으로 군 인사에 깊숙이 관여해 자신의 세력을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여인형·곽종근·이진우는 모두 지난해 11월 중장 진급을 하면서 현직에 보임됐다. 정보망을 장악하고 수도 서울에서 실제 병력을 움직일 수 있는 요직에 자신의 사람들을 심은 것이다.
1961년 박정희의 5·16 군사쿠데타와 1979년 전두환의 12·12 군사쿠데타도 모두 육사 출신들이 주도했다. 당시 박정희 육군 소장(육사 2기)은 육사 5기(김재춘 등)와 육사 8기(김종필·김형욱 등) 후배들을 동원했으며,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동기인 육사 11기(노태우·정호용 등)와 후배 기수들로 구성한 하나회를 주축으로 삼았다. 쿠데타를 겪으며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시대적 과제로 등장했다. 문민통제는 국민이 선출한 정치권력(대통령)과 민간 관료(국방부 장관)가 안보 정책을 결정하고, 군은 군사작전으로 이를 실행하는 걸 말한다. 군은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 1993년 문민정부(김영삼 대통령)가 출범하고, 하나회가 해체되면서 문민통제는 실현되는 듯 보였다. 이번 사태로 그것이 절반의 성공에 그쳤음을 보여줬다.
이번에는 문민 대통령이 군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과거와 형태는 다르다. 하지만 군이 친위 쿠데타에 동원됐고, 국방장관이 주도하는 사조직이 적극 가담했다는 점에서 내용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 독재자 기질을 지닌 대통령에다, 국방장관마저 그의 심복이었고 야당에 적대적 성향이었던 탓이 크다. 천만다행으로 중간 지휘관들이 유혈 사태를 초래할 수 있는 명령을 거부하면서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갔지만,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수사와 국정조사를 통해 군 동원 실태를 명확히 밝혀내고, 문민통제가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박현 논설위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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