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국가에 '투표 보조용구' 제공 주문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관계자들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발달장애인의 공직선거 정보접근권 보장을 위한 차별구제청구소송 2심 판결선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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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들이 "참정권 보장을 위해 눈높이에 맞는 투표 도구를 마련하라"며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했다. "법을 바꾸지 않는 한 편의를 제공할 방법이 없다"는 이유로 패소 판결을 내렸던 1심을 뒤집은 결론이다.
서울고법 민사1-3부(부장 이은혜)는 발달장애인 박경인·임종운씨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차별구제청구 소송에서 18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가는 확정판결일로부터 1년이 지난 날 뒤 시행되는 대통령·국회의원·지방의회 및 지방자치단체장 등 공직선거에서 원고들이 요구할 경우, 문자를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을 위해 정당 로고나 후보자 사진 등으로 정당 이름과 후보자 기호·이름 등을 알 수 있도록 돕는 투표 보조용구를 제공하라"고 밝혔다.
박씨 등은 선거관리위원회가 발달장애인을 위한 맞춤형 선거공보물과 그림투표용지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차별이라며 2022년 1월 소송을 제기했다. 점자 공보물·투표용지 또는 수어통역 서비스를 제공받는 시청각 장애인과 달리 발달장애인을 위한 지원은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가가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형태의 공보물 제작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투표소 내 안내판도 비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판 과정에서 최대 쟁점은 이런 조치를 법 개정 없이 법원 판결만으로 선관위에 주문하는 게 가능한지 여부로 좁혀졌다. 투표용지와 공보물 제작 기준은 공직선거법에 엄격히 규정돼 있어, 이를 벗어나는 장치를 별도 제공하는 것 자체가 위법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선관위 역시 법이 바뀌지 않으면 의무를 이행할 수 없다고 맞섰고, 1심은 이를 받아들여 각하 판결했다. 발달장애인들 주장이 소송 청구 요건을 갖추지 않았다고 보고 본안 심리도 없이 재판을 끝낸 것이다.
박씨 등은 이에 선거용 보조기구와 그림투표용지 제공을 요구하는 것으로 청구 범위를 축소해 항소했고, 재판부가 이날 박씨 등의 주장을 일부 인용했다. 소송을 이끈 정제형·김진영 변호사는 "그림투표용지 전면 도입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보조용구가 도입됨으로써 간절한 바람이 일부 이뤄졌다"며 "국가가 발달장애인들에게 투표권 보장을 위해 노력할 의무가 인정됐고, 발달장애인들이 시민으로서 권리를 가진 주체임을 인정받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발달장애인의 선거 접근성 개선 필요성을 인정한 판결은 지난 10월에도 있었다. 선관위는 2020년 총선을 앞두고 활동 보조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대상에서 발달장애인을 제외했는데, 이에 반발한 발달장애인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지난해 10월 중앙선관위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선거공보 제작 가이드와 선거공보 용어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최다원 기자 da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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