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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 해제 후 사흘 만인 지난 7일 담화를 시작하며 어색하게 웃고 있다. 방송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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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선포 후 침묵하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TV 카메라 앞에서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이라고 말하는 순간 비쳤던 옅은 웃음에 화가 치밀었다는 사람이 많다. 그 멋쩍은 미소에서 사고를 저지른 철부지가 부모 앞에서 대충 무마하려 할 때의 무책임함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입꼬리에는 다른 신호도 담겨 있는데, ‘내가 하는 말은 거짓말’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무의식적 감정 표현,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이다.
□ 거짓말을 할 때 나타나는 표정은 눈 깜빡임 증가, 시선 불안정, 이마 주름, 코 만짐과 찌푸림, 입술 깨물기나 핥음, 입꼬리가 부자연스럽게 올라감(미소처럼 보임) 등이 대표적이다. 또 거짓말을 구성할 때 뇌가 과부하되며 답변이 늦어진다. 물론 오랜 훈련이나 거짓말을 스스로 믿을 때, 사이코 패스 같은 성격 결함의 경우는 이런 표정 변화가 없겠지만, 대부분은 숨기기 불가능해 범죄 수사 프로파일러들은 0.04~0.5초 찰나의 순간 피의자 표정 변화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 “계엄 계획은 언제 알았냐”는 질문에 조지호 경찰청장,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 등이 “언론을 통해 알았다”고 증언할 때 모두 눈을 심하게 깜빡거리고, 뜸을 들였다. 일부 사실만 증언해 진실을 호도할 때는 표정 변화가 없다. 김대우 방첩사 수사단장은 손을 들고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정치인 체포 구금을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그가 계엄 당시 지시를 거부한 부하 장교를 구타해 강제로 출동시켰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이 만능 거짓말 탐지기는 아니지만,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 진화하는 데 필수적인 의사소통과 신뢰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장치인 것은 분명하다. 이는 거짓말할 때 표정조차 변하지 않는 사람의 유전자는 오랜 기간에 걸쳐 결국 도태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회의원과 기자의 불편한 질문에 험악한 시선을 감추지 않던, 오만한 고관들이 내란죄 처벌 앞에 진땀을 흘리며 거짓 증언을 하는 꼴을 보게 되는 우울한 날들이다.
정영오 논설위원 young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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