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의원 108명 중 12명만 탄핵에 찬성했다. 탄핵에 찬성한 한동훈 대표는 친윤석열계에 의해 사실상 축출됐다. 이 와중에도 친윤계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당선된 권성동 원내대표는 “탄핵보다 더 무서운 건 분열”이라고 했다. 야당이 제안한 여·야·정 협의체도 거부했다. 국회 추천 몫 헌법재판관 3명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해선 안 된다고 우기며, 인사청문회도 보이콧했다. 여당이라면서 국가 위기 상황의 혼란을 수습하려는 책임감은 눈곱만큼도 없다. 연예인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 최소 몇달은 대중 시선 밖에서 자숙하는 시늉이라도 하는데, 친윤계는 2선 후퇴는커녕 더 의기양양하다.
이런 친윤의 모습은 8년 전 친박을 보는 듯하다. 2016년 12월9일 박근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친박계는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을 발족했다. 그럴싸한 이름과는 딴판인 친박의 구당 모임이었다. 친박 당대표 이정현은 사퇴를 거부했고, 야당의 여·야·정 협의체 제안을 “쓰레기통으로 가야 할 얘기”라며 걷어찼다. 당시 탄핵안 표결 참여를 주도한 정진석 원내대표는 ‘배신자’였고, 김무성·유승민은 ‘청산 대상’이었다. 원내대표 선거에선 친박이 똘똘 뭉쳐 정우택 의원을 당선시켰다. 탄핵 이후 친박 색채는 더 짙어졌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 이유로 ‘탄핵 트라우마’를 얘기한다. 박근혜 파면 두 달 뒤 대선에서 패배하고, 21대 총선에서도 참패하면서 풍찬노숙 시기를 보냈는데, 탄핵 찬성파의 분열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잘못한 일에 대가 치르는 것을 트라우마로 표현해도 되나 싶지만, 박근혜 탄핵의 기억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국민의힘이 지금까지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당시 의원 122명 중 최소 62명이 탄핵에 찬성했고, 국민 뜻에 부응하려는 의원들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실정 등에 기댄 것이긴 하지만 5년 만에 정권을 가져올 수도 있었다.
보수는 박근혜 탄핵을 겪으며 버티기만 배운 것 같다. 보수 지지층만 보고 고슴도치처럼 몸 웅크리고 견디면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당시 새누리당에서 탄핵 찬성·비박계 33명이 탈당해 바른정당을 띄웠지만, 이들 중 22명이 10개월 만에 자유한국당에 복귀했다. 탄핵에 반대했던 자유한국당이 결과적으로 보수의 주도권 경쟁에서 이긴 셈이다.
국민의힘은 이번에도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시간이 흐르면 진보·보수 양당 구도가 복원될 것이고, 정치적 부활이 가능할 거라고 보는 듯하다. 윤상현이 “탄핵에 반대해도 1년 지나면 다 찍어주더라”고 버젓이 얘기하는 실정이니 말이다. 지금 국민의힘이 믿는 구석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다.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2심 유죄만 나오면 대선도 해볼 만하다는 것이다. 지난 4월 총선 때 이재명 사법리스크만 붙잡고 심판론으로 매진했다가 폭망한 일은 잊은 모양이다. 보수가 반이재명 정서에 의지할수록 이재명의 생명력이 유지된다는 건 간과하고 있다.
한때 선거는 보수에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이명박근혜’ 9년은 보수정당이 국가를 운영해도 되겠냐는 의문을 던졌다. 보수정권은 정치·사회적 반대파를 ‘적’으로 인식하고, 국가권력을 불법 동원하기도 했다.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권위주의 시절로 뒷걸음질쳤다. 보수정당은 속으로 썩어들어갔다. 당명을 바꾸는 게 쇄신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아스팔트 보수에 기대면서 자생력은 점점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지금 국민의힘은 정상적인 보수정당이 아니다.
박근혜와 윤석열의 탄핵 사유는 차원이 다르다. 윤석열은 어차피 단죄되고, 곧 ‘전직 대통령’이 될 것이다. 국민의힘은 어떻게 할 것인가. 윤석열을 버리고, 이재명을 놓아야 한다. 상식과 합리에서 멀어지고 극렬 지지층만 품는 ‘가짜 보수’는 영속할 수 없다.
안홍욱 논설위원 |
안홍욱 논설위원 a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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