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예술가 정은혜 작가. [사진 서울문화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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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설립된 뉴욕예술재단(NYFA)은 미국 전역의 예술인과 예술단체를 지원하고 연결하는 비영리 기관이다. 교육격차·환경문제·고령화 등 지역사회에 산적한 문제들을 ‘예술’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풀어내는 프로젝트를 기업들과 함께 진행한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체이스와 함께하는 ‘크레이에티브 커뮤니티 이니셔티브’ 사업이 대표적이다. 소득 수준이 낮은 지역의 공립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예술창작 워크숍을 진행해 창의력과 문제해결력을 길러주는 프로그램이다. 참여한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평균 20% 이상 상승하는 성과를 냈다.
한국에서는 서울문화재단이 이런 솔루션을 만들고 있다. 2004년 설립된 서울문화재단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예술 전문 공익법인이다. 서울 시내 19개 문화예술 시설을 중심으로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확산하고 있다. 서울시 출연금으로 운영되며 예산은 연간 1600억원(2024년 기준)에 달한다.
서울문화재단의 사업은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예술인을 대상으로 하는 ‘창작지원’ 사업과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향유’ 사업이다. 민간 기업과 함께하는 ‘문화예술 사회공헌’ 사업도 또 다른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년간 축적된 재단의 전문성에 기업의 자원이 결합하면서 새로운 임팩트를 만들어내고 있다.
서울메세나지원사업으로 공연된 ‘푸푸게노 똥밟았네’. [사진 서울문화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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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장애인 예술가’로 살아남기
서울문화재단은 작가들이 안전한 공간에서 숙식하며 작업활동을 하도록 입주 프로그램(레지던시)을 운영한다. 시각예술 분야 레지던시 ‘금천예술공장’, 서울 유일 문학 전문 창작공간 ‘연희문학창작촌’, 공예·디자인 전문 예술가들이 생활하는 ‘신당창작아케이드’ 등이 있다.
2007년 설립된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는 장애인 예술가들을 위한 국내 최초의 레지던시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던 발달장애인 예술가 정은혜도 입주 작가로 이곳에 머물며 작업활동을 했다. 정 작가의 어머니이자 화가인 장차현실씨는 “한국에서 장애인이 스스로 예술활동을 이어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며 “공공과 민간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서울문화재단은 더 많은 장애인 예술가에게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민간 기업의 후원과 협업을 적극적으로 끌어내고 있다. 효성은 2018년부터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 입주 작가들을 지원하고 있다. 창작 활동에 필요한 재료비를 지원하고, 장애인 예술가들이 다른 작가들과 협업하면서 예술적 확장을 경험하도록 워크숍을 열어준다. 또 장애인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대중에 선보일 수 있는 대규모 기획전시를 개최해 예술가로서의 자립을 돕는다.
효성과 함께 진행한 장애예술기획전 ‘내가 사는 너의 세계’. [사진 서울문화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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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사회공헌’의 새로운 모델
발달장애를 가진 작가 중에 예술을 할 수 있는 환경에 놓인 이는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 입주 작가가 되면 지원금을 받을 수 있지만 입문 단계의 신인 작가가 선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서울문화재단과 우리금융미래재단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우리시각’ 사업은 발달장애인 미술가 중에서도 신인 작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서양화·동양화·판화 등 시각예술 작가 중에서 공공기관의 창작 지원금을 받은 적이 없는 발달장애인이 지원 대상이다. 선발된 최종 10인에게는 인당 1000만원의 자금을 지원한다. 김아름 서울문화재단 제휴협력팀 대리는 “‘우리시각’은 재능 있는 신인 작가들이 전문 작가로 성장할 수 있게 돕는 일종의 육성 트랙”이라고 설명했다.
‘우리시각’ 사업의 가장 큰 강점은 전문 작가들의 촘촘한 멘토링에 있다. 현직 비장애인 작가들이 발달장애인 작가들을 멘토링하는 구조다. 작품활동에 대한 조언이나 조력만 하는 게 아니라 지원 사업에 응모할 때 사용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 제작도 도와준다. 강지은 서울문화재단 제휴협력팀장은 “기존 프로그램들은 장애인 예술지원을 ‘복지’의 연장선으로 생각해 예술인로서의 역량 강화보다는 사회적 참여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이 프로그램은 발달장애인이 전문 예술인으로 도약할 수 있게 전시 준비, 포트폴리오 제작, 발표 등 모든 과정을 직접 경험하도록 지원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진다”고 말했다.
지난달 21일 개최된 ‘포르쉐 프런티어 스타트업’ 데모데이 현장. [사진 서울문화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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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비즈니스가 되다
국내 문화예술 사회공헌 사업은 대부분 창작지원이나 예술인 지원에 집중돼 있다. 해외에서는 예술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다양한 비즈니스들이 주목받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예술 창업’에 대한 지원이나 투자 케이스를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문화재단은 지난해부터 청년 예술인을 대상으로 ‘예술플러스창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청년 예술인들의 창업 역량을 강화하고 예술 생태계를 확장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청년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실제 사업으로 발전할 수 있게 기업가정신 교육, 전문가 멘토링, 네트워킹 지원 등을 진행한다.
올해는 포르쉐코리아가 합류해 판이 커졌다. 공모를 통해 ‘예술 창업’을 지원하는 국내 최초의 프로그램인 ‘포르쉐 프런티어 스타트업’을 재단과 함께 시작했다. 14대 1의 경쟁률을 뚫고 5개 기업이 최종 선정됐다. ▶한글 예술 기반 테이블웨어를 제작하는 ‘널리널리’ ▶기업 맞춤형 공연 매칭 플랫폼 ‘문다’ ▶영화에 사용된 소품을 판매하거나 대여하는 인테리어 플랫폼 ‘램레이드’ ▶집중과 휴식을 돕는 앰비언트 노이즈 앱인 ‘사운드울프’ ▶소극장 클래식 공연을 큐레이션 하는 플랫폼 ‘엠이쥐컴퍼니’ 등이다. 포르쉐코리아는 선정된 기업에 각각 4000만원의 사업 지원금을 전달했다.
‘포르쉐 프런티어 스타트업’ 사업은 예술이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새로운 문화예술 사회공헌 모델로 평가받는다. 서울문화재단의 예산에 기업 기부금이 합쳐지면서 교육·네트워킹·창업지원으로 연결되는 청년 예술인 지원의 틀이 완성됐다는 설명이다. 강지은 서울문화재단 제휴협력팀장은 “예술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면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문화예술 사회공헌 사업에 더 많은 기업이 동참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시원 더버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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