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니시 더 잡: 탄자니아
월드비전의 자립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농부가 수확한 땅콩을 양손 가득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월드비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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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콩을 샀다. 대출을 받아 산 첫 씨앗이었다. 자그마한 콩 한 포대에는 가족의 미래가 담겨 있었다. 탄자니아 작은 마을에 사는 리넷타카(54)는 이웃집 농사일을 도우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반복되는 가난의 굴레는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작은 희망의 문이 열렸다. 마을에 막 도입된 저축그룹(Savings Group)에서 제공하는 소규모 대출 프로그램이었다.
대출금은 크지 않았지만, 씨앗을 사고 밭을 빌릴 수 있었다. 우기를 기다려 씨를 뿌렸다. 비가 내리던 날, 아홉 식구는 함께 씨앗을 땅에 묻었다. 잡초 뽑고 물을 댔더니 이내 싹이 트고 무성하게 자랐다. 수확 날은 마치 축제 같았다. 콩을 자루에 담으면서 숫자를 세어보았다. 하나, 둘, 셋… 그렇게 50포대가 쌓였다.
수확한 콩을 시장에 내다 판 돈으로 망고 씨앗을 구해 심었고, 키울 닭도 샀다. 남은 돈으로 아이들 학비를 내고 집을 고쳤다. 저축도 할 수 있었다. 타카의 예금은 또 다른 주민의 소액 대출로 쓰인다. 이렇게 순환되는 경제 구조는 마을 전체의 생계를 안정화하고 서로 돕는 공동체로 성장하게 한다.
자립지원으로 한 가정이 바꾸고 마을 전체가 변화한다. 월드비전은 내년 1월부터는 ‘피니시 더 잡(Finish the Job) 캠페인’으로 레이크야시 마을 3개를 자립마을로 키우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2028년까지 4년간 30억원 규모의 자금이 투입되고 총 1500가구, 6450명 주민이 참여할 예정이다. 리넷타카는 “식구들 끼니를 거르지 않게 하려고 이웃의 밭을 갈거나 작은 부업도 해봤지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며 “가족을 책임질 수 있는 농사 기반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한데 그 시작을 자립마을사업이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이번 사업대상지로 선정된 레이야크시는 하루 소득 2달러 남짓의 빈곤 지역이다. 인근에 에야시 호수가 있지만, 염도가 높아 식수나 농업용수로 활용하지 못한다.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의존하고 있지만, 비효율적인 농법과 가뭄, 낮은 품질의 종자를 사용하면서 생산성이 매우 낮은 상황이다.
월드비전은 더는 후원이 없어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자립마을을 만든다. 자립마을은 보통 15~20년 장기 프로젝트로 진행되지만, 피니시 더 잡 캠페인에서는 그 기간을 5년으로 단축했다.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빠르게 지원하고, 현지 직원 중심으로 이뤄지던 지원 프로그램도 파일럿 기간 중 한국 직원을 파견해 속도를 높이는 게 특징이다.
자립지원 프로그램은 이미 검증된 솔루션이다. 지난 2017년 방글라데시에서 시행한 ‘자립마을 보고서’에 따르면, 핵심 문제로 선정한 5개 분야(식수위생·보건영양·교육·아동보호·생계자립) 모두 눈에 띄게 개선됐다. 구체적으로 식수접근율은 56%에서 97%로 증가했고, 저체중 아동 비율은 26%에서 6%로 뚝 떨어졌다. 중등학교 졸업률은 45%에서 97%로 증가했고, 동시에 조혼 비율은 39%에서 17%로 절반 넘게 줄었다. 마지막으로 저축액 향상 주민 비율은 38%에서 84%로 크게 뛰었다.
자립의 기준은 명확하다. 월드비전은 참여 가구의 소득이 최소 3배 이상 높아져야 가계 회복력이 향상했다고 본다. 이를 위해 소작농 대상으로 교육을 제공하고 새로운 농법을 전파할 지역사회 강사를 훈련한다. 예상치 못한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가축 농장도 시범 운영한다. 이 밖에 이들의 저축 상황과 소득 활동을 모니터링해 가계 경제가 지속하는지 살핀다. 또 농업뿐만 아니라 교육과 위생, 영양, 소규모 창업 지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통합적인 접근이 이뤄진다.
조명환 월드비전 회장은 “세계 아이들을 고통받게 하는 뿌리 깊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는 교육과 마을의 환경을 바꾸는 사업이 필요하다”며 “보통 한 마을이 자립하기까지는 15~20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피니시 더 잡’ 캠페인으로 5년까지 단축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젊은 기업가들이 모여 새로운 기부문화를 만듭니다”
현승원 디쉐어 의장 인터뷰
현승원 디쉐어 의장은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젊은 기부자들을 찾아 새로운 기부문화를 만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김용재 기자 |
기부를 시작한 지 올해로 10년째. 누적 기부액은 100억원이 넘는다. 현승원(39) 디쉐어 의장은 2011년 안산동산고등학교 옆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50만원짜리 작은 학원으로 시작해 3000억원대 자산가로 성장했다. 그는 “작은 규모로 시작한 기부를 매년 늘려왔고 이제는 큰 프로젝트를 기획할 수준으로 키웠다”고 말했다. 그는 고액 기부자 모임인 기아대책 필란트로피 클럽(2015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아너 소사이어티(2019), 월드비전 밥피어스아너 클럽(2020)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는 월드비전 YLC(Young Leadership Council) 위원장으로 위촉됐다. YLC는 한 국가의 사회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다는 ‘피니시 더 잡(Finish the Job) 캠페인’을 위해 모인 젊은 리더십 그룹으로, 만 49세 미만 CEO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지난달 22일 서울 송파구 사무실에서 만난 현승원 디쉐어 의장은 “기부를 전략적으로 잘하고 싶은 젊은 스타트업 대표들이 많다”며 “탄자니아 마을의 소득증대 사업을 위해 YLC에서만 30억원 기금을 모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Q : 젊은 나이인데 기부액이 상당하다.
A : “사업이 급성장하면서 해외아동 300명과 결연을 했다. 마침 수강생이 3000명이었다. 수강생의 10%다. 그때부터 수강생이 10명 늘 때마다 후원 아동을 1명씩 추가했다. 회사 지분을 매각할 때 수강생이 2만2000명 정도였으니까 2200명의 아이와 인연을 맺은 거다.”
Q : 300명 후원이면 월 1000만원 수준인데.
A : “버는 만큼 기부했다. 사업을 통한 수입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니라는 믿음 때문이다. 일정한 비율을 정해놓고 기부하면 마음이 편하다. 더 신나게 일할 수 있다. 활력 넘치는 모습이 직원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Q : 지분을 매각한 뒤에는 기부 방식이 바뀌었나.
A : “프로젝트 단위로 기부하고 싶었다. 지금은 개발도상국에 학교를 세우고 있다. 캄보디아를 시작으로 가나·카메룬·파키스탄·키르기스스탄·우간다까지 ‘드림스쿨’이라는 이름으로 6개를 세웠다.”
Q : 교육으로 번 돈을 다시 교육에 쓰고 있다.
A : “능력에 비해 과분한 보상을 받았다. 필요한 곳에 다시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Q : 기부자 모임을 만들 생각은 왜 했나.
A : “학원을 운영할 때도 학생들이나 선생님들에게 기부를 독려했었다. 주는 만큼 받는다는 말이 있지만, 기부하면 주는 것보다 더 크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다 우연히 미국의 고액후원자 모임에 다녀온 뒤 기부자 모임을 꾸려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Q : 미국에서 뭘 봤기에.
A :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월드비전의 고액후원자 모임이었다. 가장 큰 충격은 후원자끼리 굉장히 친해 보였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고액후원자 모임에 가보면 분위기가 서먹한데, 완전히 달랐다. 또 하나는 대부분 기부액이 10억원을 넘고 자신을 투자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기부자가 아니라 LP(출자자)로, 사업을 수행하는 비영리단체는 GP(운용사)로 보는 거다.”
Q : 기업인다운 접근이다.
A : “회사를 성장시킨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일에 나서지 않는다. 투자라는 관점에서 기부 프로젝트를 띄우면 어떻게든 성공시키려고 욕심낼 거다.”
Q : 이번 탄자니아 프로젝트에 LP 역할을 하는 건가.
A : “혼자 하는 건 아니다. 젊은 CEO들과 함께한다. 첫 모임에만 15명이 모였다. 지금 총 26명으로 늘었다. 만나면 돈 버는 얘기부터 기부와 나눔까지 새벽 2시까지 떠든다. 술 한 방울 마시지 않고.”
Q : 목표는 뭔가.
A : “1차 모금액은 30억원이다. 탄자니아 마을이 완전한 자립을 하려면 향후 10년간 70억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선 초기 자금을 투자하고 성과를 추적한 뒤 추가적인 재원을 마련할 계획이다.”
Q :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성공적인 기부’는 무엇인가.
A : “재단을 만들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접었다. 기금은 마련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 돈을 잘 쓰는 건 전혀 다른 문제기 때문이다. 전 세계 수백 수천 명의 스태프를 갖춘 NGO와 함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문일요 더버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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