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여파로 눈앞에 왔던 첫 헬기 수출 기회가 멀어졌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튿날인 지난 4일, 11년 만에 한국을 찾은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은 헬기를 타고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생산 시설을 방문하기로 돼 있었으나 6시간여의 비상계엄 사태로 취소됐다. KAI는 이제 막 마케팅을 시작하는 단계여서 사업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으나 현업 부서의 사기는 크게 꺾인 것으로 알려졌다.
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으로 국내 방산 업체들이 입는 피해는 이뿐만이 아니다. 국방부 주요 간부들이 계엄 사태와 관련한 조사를 받으면서 일상적인 업무가 어려워지자 방위사업청 역시 정상적인 업무를 못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산 업체의 생산 시설은 보안이 중요해 외부 출입자가 방문하려면 신원 조사가 이뤄져야 하는데, 이 역시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라고 한다. 한국 방산 업계는 올해 3년 연속 100억달러(약 14조3500억원) 수출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대통령 직무가 정지된 상태에서 방위 산업의 주무 부처인 국방부의 장관까지 공석인 상황이 길어지면 방산 업계에는 악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군 장비 수출은 국가 단위로 이뤄지는 데다, 내년 국군 관련 사업 역시 국정 안정화 전까지는 신속한 추진이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금 수출 산업 하나하나가 절실한 상황이다.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칩스법(반도체지원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손보겠다고 밝히면서 전망이 불투명하다. 내년 초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고 관세를 인상하는 등의 보호무역 기조 정책이 현실화하면 한국이 입을 타격은 더 커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외부 환경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국내 정치 갈등이 성장하는 산업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어야 한다. 국회에는 현재 방위산업 발전 및 지원에 관한 일부법률개정안 4건이 수개월째 계류 중이다. 대부분 방위산업 진흥을 위해 부품 개발 개념을 도입하고, 관련 부처를 확대하고 기능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여야가 싸우더라도 산업을 진흥하는 법안만큼은 논의를 계속 해야 한다.
양범수 기자(tigerwater@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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