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일가 많은 이사회 100% 원안 가결…'거수기' 역할 여전
2024년 대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 분석 공개
공정거래위원회 (CG) |
(세종=연합뉴스) 이대희 기자 = 대기업 총수와 일가가 계열사에서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하는 사례가 지속해서 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영상 책임은 회피하면서도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사익 편취'를 추구하는 행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대기업 이사회는 안건을 99% 이상 원안가결한 것으로 나타나 '거수기'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내용을 담은 '2024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 분석'을 19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올해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집단) 88개 중 신규 지정 집단 7개와 특별법으로 설립된 농협을 제외한 80개 집단 소속 2천899개 계열회사가 분석 대상이었다. 분석 기간은 지난해 5월부터 올해 5월까지다.
◇ 하이트진로·금호석유화학 등 총수일가 미등기임원 비율 높아
총수일가의 경영참여 현황 분석은 71개 총수 있는 집단 2천753개 계열회사를 대상으로 했다.
총수일가가 이사회 구성원이 아닌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하는 회사는 163개사(5.9%)로 비율이 전년보다 0.7%포인트(p) 늘었다.
총수일가가 미등기임원으로 재직한 회사의 비율은 하이트진로[000080]가 63.6%(11개사 중 7개사)로 가장 높았다. 이어 금호석유화학, 중흥건설, 셀트리온[068270], DB[012030]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하는 총수는 평균 2.5개 회사에서 미등기 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총수 2·3세는 평균 1.7개였다.
총수일가의 미등기임원 겸직 수(1인당)는 중흥건설, 유진, 하이트진로·한화·효성·KG 순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총수일가가 미등기임원으로 재직 중인 회사의 절반 이상(54.1%)은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다.
사익편취란 대기업집단 소속 회사가 특수관계인, 또는 특수관계인 소유 계열회사와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거나 사업 기회를 제공해 부당한 이익을 몰아주는 행위를 말한다.
결국 총수일가가 등기임원으로서 책임을 부담하지 않고 미등기임원의 권한만 누리는 사례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의미다.
반면 총수일가 1명 이상이 이사로 등재된 회사의 비율은 17.0%(468개사)였다. 이 비율은 2022년 14.5%에서 지난해 16.6%에 이어 점차 오르는 추세가 관찰됐다.
공정위는 총수일가의 책임 경영 측면에서 긍정적인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분석대상 회사의 전체 등기이사 9천836명 중 총수일가는 6.5%(638명)이었다. 역시 2022년 5.6%에서 지난해 6.2%에 이어 상승 추세가 나타났다.
총수일가가 이사로 등재된 회사 비율은 셀트리온, 부영, 농심[004370], DN, BGF[027410] 순으로 높았다.
반면 전체 계열사 내에 총수일가가 이사로 등재된 회사가 없는 집단은 DL[000210], 미래에셋, 이랜드, 태광, 삼천리[004690] 등 5개 집단으로 나타났다.
71개 집단 중 SK·현대자동차·LG 등 51개 집단에서 총수 본인이 계열회사 이사로 등재돼 있었다. 반대로 총수 본인이 계열회사 이사로 등재돼 있지 않은 기업집단은 삼성·한화·신세계·CJ 등 20개였다.
정보름 공정위 기업집단관리과장은 "책임 측면에서 총수일가 등기임원이 늘어나는 점은 고무적이라고 보면서도 여전히 미등기 임원들이 있고, 그 과반수 이상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유인이 있는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점은 우려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총수일가가 미등기임원으로서 대기업집단의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여부, 이를 통해 사익편취를 추구하는지 여부 등에 대한 면밀한 감시를 지속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 전경 |
◇ 이사회 이사 중 총수일가 30% 이상이면 100% '원안 가결'
80개 대기업집단 344개 상장회사의 이사회 운영현황을 보면 사외이사 비중은 51.1%로 작년(51.5%)보다 소폭 줄었지만 과반 이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외이사의 이사회 참석률은 97.8%로 전년 대비 1.2%p 상승했다.
사외이사 비중은 한국항공우주산업·엠디엠, 케이티앤지, 중흥건설 순으로 높고, 이랜드, 중앙·DN, 글로벌세아 순으로 낮았다.
감사위원회, 내부거래위원회, 환경·사회적 책무·기업지배구조 개선(ESG) 위원회 등 대기업집단 내 의사결정의 객관성과 전문성 확보를 위해 도입된 위원회 설치는 지속해서 증가해 상법상 최소기준을 준수하고 있었다.
공정위는 "경영진(지배주주)의 의사결정에 대한 견제 장치가 안정적으로 구비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사회 안건 원안 가결률은 99.4%로 전년(99.3%)과 유사한 수준으로 집계됐다.
총수일가가 이사의 30% 이상 등재된 회사에서는 이사회 안건이 모두 원안가결됐다. 총수일가가 10% 미만으로 등재된 회사는 안건의 99.3%이 원안대로 통과됐다.
이는 이사회가 여전히 경영진의 뜻을 그대로 따르는 '거수기' 역할에 그쳤을 수 있다는 의미다.
공정위는 "이사회의 내부 견제 기능이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환경조성과 시장감시가 중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수주주 의결권 행사 강화를 위해 도입된 주주총회 집중투표제·서면투표제·전자투표제를 하나라도 도입한 회사는 88.4%로 증가 추세를 이어갔다.
특히 전자투표제의 도입률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86.3%에 달했다. 다만 집중투표제를 통한 의결권 행사 사례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단 1건이었다.
소수주주 이익 보호를 위해 상법으로 도입된 주주제안권(12건)·주주명부 열람청구권(6건)·회계장부 열람청구권(4건) 등은 총 32건 행사돼 전년보다 4건 감소했다.
인터뷰하는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
2vs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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