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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계엄·탄핵에 어수선해도…그래도 크리스마스처럼 따스하게 [북적book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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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서울 여의도 현대백화점 더현대 서울에 크리스마스 테마 마을 ‘H빌리지’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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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겨울은 은빛 서리가 깃든 공기 속에서도 온정이 깃드는 계절이다. 어둠이 짙어지고 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칠수록 밝고 포근한 햇살의 기운은 더 선명해진다.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허물어지고 밤의 불빛 사이로 얼어붙은 마음과 마음이 녹아내린다. “사랑은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 주는 금실(金絲).” 한강 작가가 어린 시절에 쓴 사랑에 대한 시 구절을 계절에 비유하자면, 겨울이야말로 가장 잘 어울리지 않을까. 그래서 겨울은 사랑이 가장 깊이 스며드는 계절일지도 모른다.

2024년 대한민국의 겨울은 혼란스럽고 어수선하다. 연말 계엄 정국의 한파에 직격탄을 맞아서다. 그러나 시민들이 꺼내든 형형색색의 LED 응원봉은 밤을 환하게 빛나게 했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정치권이 나라를 분열과 갈등으로 내모는 무거운 현실이 있지만, 한 해의 끝자락에서 집어 든 책, 그 안에서 잠시나마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는 것도 방법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책 곁에서 캐럴 듣고 그림 보고 글 읽는 시간이 고단한 시간을 위로하고 서로의 마음을 잇는 온기어린 실타래가 되어줄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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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돼 누구나 흥얼거리는 크리스마스 노래 ‘고요한 밤 거룩한 밤(Silent Night)’은 제1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과 독일군이 이틀간 휴전 협정을 맺도록 한 인류애의 상징, 그 자체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캐럴로는 유일하게 유네스코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이 곡은 ‘작자 미상의 민요’로 전해졌으나 180년 만에 자필로 쓴 원고와 악보를 발견하면서 노래를 만든 장본인이 밝혀지게 된다. 그는 숱하게 거론된 베토벤도, 슈베르트도, 하이든이 아니었다. 요제프 모어 신부였다. 저작권 개념이 없던 시절이니 이같은 어마어마한 곡을 만들고도 신부는 그 어떤 금전적 보상도, 그에 걸맞은 명예나 공로도 인정받지 못했다.

신간 ‘나 기다렸어?’는 수년, 또는 수십 년간 겨울마다 우리 귀를 숱하게 단련시켜 준, 생명력 긴 노래 25곡에 대한 탄생 배경과 관련 일화를 전하는 책이다. “넌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잘 보내겠지”, “오늘 밤 신에게 감사해요” 등 서로 다른 크리스마스 노래마다 사랑을 속삭이거나 이별에 아파하는 낭만적인 문구가 자주 등장하는 점이 눈에 띈다. 마치 크리스마스의 기적처럼 마침내 당신을 그대로 만나게 돼 그래도 다행이라는 듯 멜로디마다 ‘그해 겨울’을 추억하게 만드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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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여 점의 도판으로 보는 신간 ‘크리스마스 북’은 그야말로 슥슥 읽히는 백과사전 같은 책이다. 스테인드글라스에 정교하게 그려진 예수 탄생의 밤으로 시작해 매년 크리스마스이브마다 산타클로스가 전 세계 하늘을 가로질러 선물을 배송하는 경로를 추적하는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의 일명 ‘노라드’ 특별 임무까지 무려 500년의 방대한 이미지 역사가 한 권에 담겼다.

예컨대 오늘날 장식물, 즉 크리스마스 머그잔, 티셔츠 등 수많은 물건에 새겨진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 ‘평화의 비둘기’는 원래 크리스마스와 아무 상관이 없었다. 피카소는 화가였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드로잉 했지만, 성경에서 예수가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을 비둘기에 빗댄 연관성이 더 오래 작용해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굵고 단순한 선이 상징인 팝아티스트 키스 해링이 그린 그리스도의 탄생 장면은 마치 만화처럼 생동감 넘친다. 해링이 종이 위에 분필로 그린 ‘무제(성탄)’에는 신바람 난 목사, 춤추는 것만 같은 마리아와 요셉, 흥에 겨워 보이는 동방박사, 환희에 찬 천사 등이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돼 등장하는데 종교화에 나타나는 요소 하나하나와 비교해 보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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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크리스마스는 어디에?’는 크리스마스 하면 늘 떠오르는 뻔하고 똑같은 인식을 완전히 뒤흔들며 독자를 낯선 세계로 안내한다. 딜런 토머스, 블레즈 상드라드, E.E. 커밍스, 브램 스토커 등 20세기 문학의 혜성과도 같은 시인과 소설가가 크리스마스를 주제 삼아 쓴 단편집으로, 무릎 탁 치게 만드는 작가들의 기발한 관찰력이 돋보인다.

미국 시문학의 실험적인 시작법을 추구한 E.E. 커밍스의 문학적 스타일이 두드러지는 도덕극 ‘산타클로스’는 도입부부터 강렬하다. 죽음과 산타의 대화로 구성된 이 작품은 그가 남긴 다섯 편의 극작품 중 가장 유명하다. 줄 것은 참 많은데 아무도 받지 않는 산타의 선물, 그것은 ‘이해’다. 죽음은 그런 산타에게 이해의 무의미함을 설득한다. 둘의 대화로 점진적으로 드러나는 이해는 사리를 분별하는 단순한 깨달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랑과 공감, 그리고 인간 본연의 순수한 감정을 인식하는 깊은 차원의 개념으로서 극의 핵심 메시지를 관통한다.

성난 군중에게 쫓기던 산타를 심판하게 된 아이가 건네는 천진난만한 말 한마디가 온전한 위로였다는 사실은, 그래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그 순간 ‘이해’된다. 아이는 산타에게 전했다. “(당신은) 산타클로스예요. 당신은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나 기다렸어?: 크리스마스 노래와 인문학의 흐뭇한 만남 / 김주절 지음 / 리듬앤북스

크리스마스 북 / 파이돈 편집부 지음 / 허윤정 옮김 / 을유문화사

크리스마스는 어디에? / 딜런 토머스, 블레즈 상드라르, E.E. 커밍스, 브램 스토커 지음 / 이나경, 조동신, 금희연 옮김 / 아도니스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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