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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 (금)

안중근 의거를 심리스릴러 스파이물로 만든 ‘하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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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영화 ‘하얼빈’. 씨제이이엔엠(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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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이토 히로부미(릴리 프랭키)는 부하에게 말한다. “내가 왜 조선 합병을 계속 미뤘는지 아나? 조선이란 나라는 수백년간 어리석은 왕과 부패한 유생들이 지배해왔지만 백성들이 제일 골칫거리다. 받은 것도 없으면서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다.”



한달 전만 해도 큰 감흥 없이 넘어갔을 대사가 마음에 꽂힌다. 하수상한 시절에 안중근 의사를 스크린에서 보는 건 평소와 조금 다른 결로 다가온다. 안중근이 쓴 글을 내레이션으로 옮긴 마지막 장면도 그렇다. “우리 앞에 어떠한 역경이 닥치더라도 절대 멈춰서는 아니 된다. 금년에 못 이루면 다시 내년에 도모하고, 내년, 내후년, 10년, 100년까지 가서라도 반드시 대한국의 독립권을 회복한 다음에라야 그만둘 것이다.” ‘독립권’을 ‘민주주의’로 바꾸면 지금의 이야기로 읽힌다.



안중근 의사와 동료들의 이야기를 그린 우민호 감독의 ‘하얼빈’이 24일 개봉한다. 1908년 함경북도 신아산 전투 승리에서 1909년 하얼빈 의거까지 1년여의 시간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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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얼빈’. 씨제이이엔엠(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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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산 전투에서 크게 승리한 독립군은 포로 처리를 두고 이견으로 대립하다. 포로라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된다는 안중근(현빈)의 주장대로 포로를 풀어준다. 하지만 이때 풀려난 모리 소좌(박훈)와 일행은 쉬고 있던 독립군들을 도륙하고, 안중근과 동료들 사이에서는 불신과 의심이 싹트기 시작한다.



‘하얼빈’은 안중근 의거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는 애국심을 바탕에 깔고 있지만, 감정으로 밀고 가는 영화는 아니다. 전투 1년 뒤 재회한 안중근과 우덕순(박정민), 김상현(조우진), 이창섭(이동욱), 이들을 이끄는 최재형(유재명) 등이 의거를 도모하며 하얼빈까지 가는 여정에서 동료를 의심하고 밀정을 찾아내는 스파이물의 긴장감에 안중근의 담담하지만 결연한 의지를 담아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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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얼빈’. 씨제이이엔엠(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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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눈에 띄는 건 ‘기생충’ ‘곡성’의 홍경표 촬영감독이 뽑아낸 화면이다. 신아산 전투에서 자신의 결정으로 인해 동료들을 잃은 뒤 방황하는 안중근이 얼어붙은 강 위를 걸어가는 모습을 멀리서 잡아낸 첫 장면부터 한겨울의 추위와 질척이는 흙탕, 육탄전의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모습을 생생한 질감으로 뽑아낸 전투 장면 등이 인상적이다. 제작진은 한국영화 가운데 처음으로 1.9:1의 아이맥스 포맷을 적용해 촬영했다. 또 블라디보스톡의 세기말적인 도시 분위기를 담기 위해 라트비아에서, 만주의 거대하고 황량한 사막을 표현하기 위해 몽골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했다. 기차와 안가 등에서 주요 인물들이 언쟁을 벌이고 서로를 의심할 때는 흑백의 대비로 깊이감을 뽑아내면서 고립무원의 불안감을 떨쳐내야 했던 독립군들의 내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차가운 의심과 배신으로 뒤엉킨 스파이물과 안중근이 고뇌와 슬픔을 안으로 삭이는 심리적 균열, 그리고 웅장하고 감각적인 화면이 쫀쫀하게 엮여 시너지를 내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한다. 특히 수도승이나 구도자처럼 보이는 안중근의 캐릭터는 그 자체로는 참신한 느낌이 있지만 화려한 볼거리의 대작에 어울리는 주인공의 카리스마까지는 도달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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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얼빈’. 씨제이이엔엠(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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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과 ‘남산의 부장들’, 김성수 감독의 ‘서울의 봄’ 등 역사와 현실의 소재를 좋은 작품으로 빚어온 하이브미디어코프가 제작했다. 제작비 300억원(추정치) 규모로, 씨제이이엔엠이 투자배급하는 올해 마지막 대작이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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