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1980년 8월 23일치 3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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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논설위원
윤석열과 전두환은 정치에 등판하는 모습부터 닮았다.
광주시민을 학살한 지 석달이 지난 1980년 8월23일, 조선일보가 1면과 3면을 털어 보도한 ‘전두환 육군대장 전역식’ 기사는 ‘인간 전두환’이라는 한자 제목으로 박제되어 우리 기억에 남아 있다. ‘살아 있는 권력에 맞서 싸우는’ 검찰총장 윤석열에 대해서는 여러 매체가 돌아가며 윤비어천가를 바쳤다. 반려견과 산책하는 사진, 운전기사와 순댓국 먹는 모습 등 소탈하고 서민적인 면모를 부각하는 기사가 많았다. 1980년의 한국과 2021년의 한국은 거의 다른 나라라고 할 수 있을 정도지만, 비정치인 출신 유력 대권주자를 향한 언론의 아부와 굴종에는 시공을 초월한 유사성이 있다.
정권을 잡는 과정도 비슷했다. 전두환이 군대를 이용했듯이, 윤석열은 검찰을 이용했다. 전두환의 희생양이 광주였다면, 윤석열의 희생양은 조국이었다. 정치의 영역에 검찰이 난입하여 법과 도덕을 뒤섞었고, 봉건시대 같은 연좌제로 멸문지화 수준의 처벌을 했다. 조국 일가가 잘못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검찰개혁을 저지하려는 정치적 의도에서 공권력을 과도하게 남용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검찰을 정치에 동원하는 걸 방치한 그 순간부터 윤석열의 쿠데타는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돌이켜보면 윤석열은 오래전부터 쿠데타를 꿈꾸었던 게 아닐까. 검찰총장 시절 ‘내가 만일 육사에 갔으면 쿠데타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증언(한동수 전 대검 감찰부장)부터, 대선 후보로서 “전두환이 정치는 잘했다”는 발언까지, 전두환과 쿠데타를 흠모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대통령 임기 5년이 뭐가 대단하다고, 너무 겁이 없어요”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난했던 말도, 이제 와 복기해보면, 본인의 권력은 영구권력일 거라고 믿었던 증거로 읽힌다.
윤석열에게 빙의해 보면 충분히 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전두환의 총과 윤석열의 법은 물리력의 차이가 있을 뿐, 사회를 지배하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치적 가운데 첫손에 꼽히는 것이 육사 하나회 척결인데, 하나회라는 권력의 빈자리를 검찰이 차지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총이 지배하던 사회가 가고 법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자 세상은 검찰의 것이 되었다. 자신들의 비리는 감추고 정적은 제거할 수 있다. 합법적으로!
법만큼 중요한 것이 말이다. 윤석열은 법에 이어 말까지 장악했다고 믿었을 것이다. ‘살권수’(살아 있는 권력 수사)라는 레토릭은 민주당 정부에서만 한시적으로 작동하는 기만적인 눈속임이라는 걸 알면서도 대부분의 언론은 찬양했다. ‘바이든’이라고 말했지만 ‘날리면’이라고 우기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해당 보도를 한 문화방송(MBC)을 징계했다. 계엄이 성공하고 합동수사본부가 수사 결과를 쏟아내기 시작하면 ‘서초동 편집국장’ 때 그랬던 것처럼, 언론을 내용적으로 장악하는 건 쉬운 일이라고 윤석열은 봤을 것이다.
게다가 대통령은 군대와 경찰까지 동원할 수 있다. 항명하면 자를 수 있는 권력이 있다. 역사적으로 친위쿠데타가 실패한 적이 별로 없는 이유다. 법과 말에 이어 총까지 가졌다고 생각하는 폭군이 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었겠는가. 본인과 아내의 범죄 혐의에 점점 조여오는 수사의 압박에서 벗어날 길은 쿠데타를 통한 영구집권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12·3 내란사태의 원인을 분석하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윤석열의 알코올 의존증이나 분노 조절 장애, 포악한 성향과 망상 같은 정신병리학적 접근이다. 윤석열이 대학 입학 이후 지적 성장을 멈춘 상태이고, 제멋대로 날뛰는 폭군이었던 사실은 분명해 보이지만, 개인적 특성을 강조하는 건 사태의 본질에 관한 인식을 방해하기 마련이다. 오히려 이런 정신병리학적 결함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 자리에 오르고 폭주할 수 있었던 구조적 원인을 찾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 구조적 결함의 핵심에 검찰과 언론이 있다. 검찰은 정권과 조직을 동일시하며 국민의힘 서초동 지부처럼 행동했고, 언론은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았던 윤석열을 칭송했다.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수사권과 기소권이라는 국가적 폭력을 1인 체제의 전유물인 양 자의적으로 사용한 검찰이 있었기에, 언론이 그런 검찰과 대통령을 견제하지 못했기에, 윤석열이라는 광인의 시대착오적 쿠데타 시도가 가능했던 것이다.
세상 만물이 그러하듯, 민주주의 역시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언제든 괴물이 나타나 한입에 먹어치울 수 있다.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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