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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탄핵 이후 다시 만날 세계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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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2·3 내란사태 핵심 피의자인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재적 의원 300명 중 204명의 찬성으로 가결된 뒤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일대를 가득 메운 시민들이 형형색색 응원봉을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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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삼 | 언론인



참 어리석었다. 솔직히 말하건대 불과 보름 남짓 전까지만 해도 윤석열 대통령이 어떻게든 임기 5년을 꾸역꾸역 채울 것이라 생각했다. 8년 전 경험이 있지만, 혹은 8년 전 경험이 있기에 더욱 탄핵은 쉽지 않다 여겼다.



물론 탄핵을 당할 만한 사유는 일찌감치 쌓이고 또 쌓였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며 삼권분립의 헌법적 가치를 훼손했고,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에 대통령이 외압을 가한 의혹, 자신의 배우자 주가조작, 공천 개입, 명품 가방 수수 등 각종 의혹에 대해 특검법을 반복적으로 거부했다.



이 밖에도 국정 운영의 최고 책임자로서 함량 미달의 사례는 차고 넘쳤다. 세상을 죄의 유무로만 따지는 검사 출신, 그것도 자신의 의도대로 재단하며 기소권을 무소불위로 행사한 특수부 검사 출신 대통령이 보여준 편협한 모습은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의 기능과 역할을 실종시켰고, 외교·안보 측면에서 한국을 궁지에 몰아넣었고, 민생 경제를 힘겹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핵이 쉽지 않다고 봤으니 짧은 견해의 소치일 따름이었다. 물론 국헌 문란의 친위 쿠데타 앞에서 벼랑 끝에 몰린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국민들의 역동적 에너지에 대한 믿음이야 당연했지만 말이다.



아마도 8년 전 탄핵 이후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 탓이었을는지 모르겠다. 당시 어떤 변화와 혁신도, 개혁도 가능할 것만 같았는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꿈꿨던 새로운 세상은 끝나버린 허망한 기억만 너무도 짙었다. 무엇보다 이번에도 또다시 준비하지 않고 급하게 만들어진 정부가 탄생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큰 탓이었을 테다.



돌이켜보면 8년 전 뜨겁게 타올랐던 촛불은 이번 계엄령에 대응할 수 있는 에너지와 가치를 안겨줬다. 헌정사상 첫 대통령 탄핵을 이뤄냈고, 그 열망 위에서 문재인 정부가 탄생하게 했다. 하지만 인수위원회 활동 과정을 생략하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그 변화와 혁신의 상징은 가졌지만 실질적 변화를 이뤄내는 데는 턱없이 미흡했다.



국정과제 중 특히나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큰 기대를 갖고 갈망했던 언론개혁은 약속과 달리 변화의 방향도, 주체도 없이 표류하기만 했다. 언론의 사회적 책임과 공공성을 높이려는 노력이나 의지 없이 제 사람 챙기는 수단으로만 쓴 것은 여느 정권과 다르지 않았다. 미뤄둔 방송법 개정은 다음 정권 들어서 한국방송(KBS)과 문화방송(MBC) 장악 시도로 이어졌다. 서울신문, 와이티엔(YTN)의 무원칙한 민영화 역시 문재인 정부의 언론정책 부재의 결과물이었다. 어설픈 미완의 검찰개혁은 역설적으로 검찰의 민낯을 드러나게 하는 데 성공했는지 모르지만 ‘정치적 괴물 대통령’ 탄생의 배경이 됐고, 지금까지도 사회 갈등, 정치 갈등의 크나큰 불씨가 됐다. 그저 적폐 수사의 반사이익으로 누릴 수 있었던 높은 지지율만 잔뜩 즐긴 것 아닌가 하는 혹평조차 동의할 만했다.



내란 비상계엄과 탄핵 이후 몇달 뒤면 우리는 또다시 인수위 없는 새 정부를 가져야 할 운명이다. 엄중한 시기다. 새로 출범하는 미국 트럼프 정부에 대한 대응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틀어지고 어긋난 러시아·중국과의 관계를 복원할 수 있는 노력 또한 소홀히 할 수 없다. 무역통상국가로서 수출과 수입을 활성화할 수 있는 무역선 다변화 노력이 절실하다. 중소상공인, 자영업자, 급여생활자 등 아우성이 그치지 않는 민생 경제를 회복할 실천적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높일 수 있도록 새로운 경제, 외교, 안보의 과제를 가져야 한다.



국회 앞에서 여러 세대를 아우르며 울려 퍼졌던 ‘다시 만난 세계’가 노래했듯 내란과 탄핵 이후 우리가 만날 새로운 세계에도 ‘특별한 기적’은 있을 리 없다. 친위 쿠데타를 막은 것, 내란 우두머리 대통령을 탄핵한 것은 분명히 국민과 민주주의의 승리다. 하지만 그 자체가 성과물은 아니며 우리 사회의 정상화일 뿐이다. ‘다시 만난 세계’에서 누가 집권하건 스스로 혁명 정부처럼 행세할 일 또한 아니다. 지금부터 미리 정치, 경제, 산업, 외교, 주거, 교육, 노동, 건강 등 모든 분야에서 정책적 과제를 세밀하게 실천적으로 가다듬고 준비해야 한다. 8년 전 탄핵 이후 겪었듯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게 한, 준비 없는 새 정부 출범은 한번으로 족하다. 혹여 오해가 있을지 몰라 덧붙이는 얘기지만 이러한 내용은 여야 모두에 해당되는 당부다. 대선 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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