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반발에 공론장 만들어 중재
개미 표심, 재계 설득 실용 리더십
30일 공청회... 연내 처리 물 건너간 듯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정책디베이트 '행복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상법 개정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발언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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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개미였고, 앞으로도 되돌아갈 휴면 개미 입장에서 보면 아쉬운 게 많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상법개정안 대국민토론 배틀 사회자로 전격 등판했다.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로까지 확대하는 민주당의 개정안을 두고 재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아예 공론화의 장을 마련한 것이다. 탄핵 정국 이후 불확실한 경제 문제를 챙기는 수권 리더십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정책을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지 않는 합리적 중재자 이미지까지 덤으로 챙기며 중도층 표심 공략에 나섰다는 평가다.
이재명 "주식시장 구조 논의할 때"
이 대표는 2시간 넘게 진행된 토론회 시작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어느 한쪽 편을 들기보다 1,500만 개미 투자자와 재계 경영진들의 공방을 경청하며 균형을 잡는 데 주력했다.
탄핵 정국 이후 불안정한 경제 상황에 우려를 표하며 토론회를 시작한 이 대표는 "대한민국 자본시장, 특히 주식시장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 깊은 논의가 필요한 시기"라고 운을 뗐다. "기업을 구성하는 주주가 부당하다고 느끼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주식시장과 기업을 믿고 자본시장에 투자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상법개정안 도입 필요성을 촉구했다.
민주당이 내놓은 상법개정안은 소액 주주의 권익 보호가 핵심이다. 이사가 직무를 수행할 때 회사뿐 아니라 주주의 이익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주주의 이익이 배제되는 것을 막자는 취지인데, 재계에서는 각종 소송이 남발될 수 있다며 반발해 왔다.
이 대표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기보다는, 사회자로서 양쪽의 의견을 수렴해 접점을 찾으려는 데 애를 썼다. 주주 측에는 "정부 측의 자본시장법 개정안도 그럴듯한 의견인데 반론이 있느냐", 경영진 측에는 "상장회사만 적용하는 것을 전제로 상법 개정을 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냐"고 의견을 구했다. 이 대표는 "입장이 다를 수 있고 이해관계가 충돌하지만 서로 합리적인 선을 지켜내면 합의선에 이를 수 있지 않겠느냐"며 의견교환을 독려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정책 디베이트Ⅱ '행복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상법 개정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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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남발" "주주 보호" 대립
양측의 입장은 첨예했다. 재계 측은 상법으로 규제를 하는 경우 수많은 비상장사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은 "상법은 2,500개 상장사 외에 100만 개 비상장사까지 적용돼 중소, 중견 기업이 어려움을 호소할 수 있다"며 "상법 개정으로 혼란이 예상돼 '기업의 경영을 법원에 맡기게 되고 판사님을 회장으로 모신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이에 주주 측은 이사회가 '회사' 이익만 우선시하는 경영진 탓에 주주들이 억울한 피해를 입는 상황을 더는 방치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명한석 참여연대 실행위원은 "장기투자자 입장에서 주주에 대한 보호장치가 없다는 게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윤태준 주주행동플랫폼 액트 연구소장도 "재계가 소액주주와 지배주주의 이해관계가 다르다고 말하는 게 안타깝다"고 꼬집었다.
양측의 의견을 묵묵히 듣고 나선 이 대표는 "기본적으로 주주의 이익이 회사의 이익이지만, 주주 중 극히 일부가 이와 충돌하는 게 논쟁의 출발점"이라며 "선의로 규제하려다 안 되니 법으로 봉쇄하자는 얘기가 나오고, 또 봉쇄로 생기는 문제가 있다는 반론이 나오는 등 고민이 많이 필요한 문제"라고 답했다. 어느 한쪽 손을 들어주지 않은 채 판단을 유보한 것이다. 민주당은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차원에서 상법 관련 공청회를 또 한 차례 열기로 했다. 불확실한 탄핵 정국에서 재계의 반발을 고려해 좀 더 논의를 묵혀두며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민주당이 공언했던 연내 처리도 물 건너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권우석 인턴 기자 kws68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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